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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Jul 18. 2022

아르헨티나에서 유대인 대상 테러가 자주 일어났던 이유


1994년 7월 18일. 평화로웠던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에서 예상치 못한 폭탄 테러가 발생했습니다. 아르헨티나-이스라엘 친선협회 건물 (AMIA)을 노린 공격으로, 85명이 사망하고 300명이 부상당한 끔찍한 사건이었습니다. 폭탄 테러는 곧바로 이스라엘과 중동의 관계를 악화시켰고, 아르헨티나 정치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오늘은 왜 이 폭탄 테러가 아르헨티나에서 일어났으며, 사건을 일으킨 배후는 누구였는지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AMIA 폭탄 테러 (사진 자료: World Jewish Congress)


이야기에 앞서, 아르헨티나 이민 역사에 있어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습니다. 이전 글에서 유독 많은 수의 이탈리아와 스페인 이민자들이 아르헨티나로 넘어온 사실을 설명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때 빼먹은 것이 있다면, 바로 유대인들의 이민 역사입니다. 19세기 말 아르헨티나로 건너온 다양한 사람들 중에선 유대인들의 숫자도 상당수를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현재 아르헨티나엔 약 24만 명 정도의 유대인들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는 중남미에서 가장 큰 유대인 커뮤니티로 알려져 있습니다.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살펴봤을 , 유대인 커뮤니티가 가장  형성된 곳은 온세 (once) 지역이었습니다. 특히 그들은 온세 지역의 의류 상권을 장악하며 자신들만의 세력을 형성했고, 그곳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교민회, 상조회를 세우며 아르헨티나계 유대인 문화의 중심지로 삼았습니다. 1994 일어난 폭탄 테러는 바로  온세 지역에 있는 유대인을 노린 공격으로, 특히 아르헨티나-이스라엘 친선협회 (AMIA-Argentine Israelite Mutual Association) 대상으로 진행됐습니다. 2 전인 1992년에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나며 22명이 사망한 사건이 벌어졌는데, 이번에도 유대인을 대상으로  범행이 일어나며 3지대인 아르헨티나가 이스라엘-중동 갈등의 중심지가 돼버린 것이었습니다.


유대인 커뮤니티가 형성된 온세 지역


보통 이 정도 규모의 사건이 발생하면 쉽게 범인이 누군지 밝혀지기 마련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약고나 다름없던 이스라엘-중동 사이의 관계를 이야기하며 중동 테러 단체를 이번 사건의 배후로 지목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AMIA 테러 사건은 오랜 시간 범인이 잡히지 않은 채 미스터리로 남았습니다. 아무래도 비밀리에 계획된 사건이었고, 범인조차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누구인지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몇몇 사람들이 이 사건을 계획한 유력 용의자 선상에 올랐지만, 정확한 물증을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오랜 시간 미궁에 빠져있던 사건은 국제 테러 관련 전문가 알베르토 니스만 (Alberto Nisman) 검사의 활약으로 결국 어느 정도 실마리가 풀리게 됩니다.


우선 니스만 검사는 AMIA 사건의 배후로 헤즈볼라를 지목했습니다. 참고로 헤즈볼라는 레바논에 본거지를 둔 시아파 무장투쟁 조직으로, 이란의 지원을 받아 중동 지역에서 군사 활동을 펼친 집단이었습니다. 니스만 검사는 이들이 1980년대부터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 같은 국가에 비밀리에 진출했고, 비밀리에 유대인들을 공격하기 위한 테러리스트 네트워크를 구축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또 끈질긴 조사 끝에 레바논 출신의 헤즈볼라 요원 이브라힘 후세인 베로가 자폭테러범이었음을 밝혀냈으며, 아르헨티나에 있는 이란 대사관이 사건을 주도했다는 점도 찾아내게 됩니다.


알베르토 니스만 검사 (사진 자료: bbc)


사건은 이렇게 헤즈볼라에 소행으로 종결되는 듯싶었습니다. 유가족들도 그의 노력 덕분에 어느 정도 진실을 알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런데, 니스만 검사가 또 다른 문서를 깜짝 발표하면서, AMIA 테러 이야기는 아르헨티나 정치 문제로 퍼져나가게 됩니다. 2013년 당시 아르헨티나의 크리스티나 대통령은 이란과 함께 더욱 구체적인 조사를 위한 MOU를 체결했는데, 니스만은 이를 두고 "이란과 아르헨티나의 무역 관계를 개선하는 대가로 AMIA 사건에 이란의 개입 혐의를 은폐하려 했다"라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티나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비난한 니스만 검사는 2015년 자택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는데, 크리스티나 대통령이 자살로 발표한 죽음이 이후 부검 끝에 타살로 밝혀지며 아르헨티나 정치계는 더욱 시끄러운 국면을 맞이했습니다. AMIA 테러 사건은 중남미 최대 유대인 커뮤니티가 있는 아르헨티나에서 헤즈볼라가 벌인 사건으로 종결되는 듯했지만, 니즈만 검사의 죽음과 아르헨티나 정치 문제가 뒤섞이면서 더욱 복잡한 이슈로 역사에 남게 됩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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