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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Jul 19. 2022

그 많던 아르헨티나 원주민들은 어디로 간 걸까?


아르헨티나는 중남미 지역에서 백인 비율이 높은 국가 중 하나입니다. 바로 이전 글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적극적인 이민 장려 정책을 통해 유럽 이민자를 많이 받아들인 결과였는데요. 문화 양식도 자연스럽게 유럽을 따라가며 도시 지역은 유럽과 비슷한 모습을 띄게 됐습니다.


이에 반해 아르헨티나 북부 팜파스 (초원) 지역의 풍경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특히 차코 주는 자신들의 문화와 전통을 고수하고 살던 원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과이쿠루 (Guaycuru) 그룹에 속해있는 필라가, 모코비, 토바 같은 세부 부족들이 차코 지방에 흩어져 살고 있었던 건데요. 그들은 드넓은 팜파스 초원에서 가축을 키우거나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고, 또 오랜 기간 자신들만의 언어와 종교 (샤머니즘)를 믿으며 각자만의 전통을 지켜왔습니다.


빨간색 국경선으로 표시된 엘차코 주 (사진 자료: 구글맵) 


하지만 1870년대부터 아르헨티나에 국가라는 개념과 정체성이 확립되면서, 원주민들의 생활 방식에도 큰 변화가 찾아오게 됩니다. 이전에는 아르헨티나가 확실한 국가 체계가 잡히지 않아 원주민들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면, 이제는 그들에게 스페인어를 쓰고 경제 수익에 따른 세금을 요구하기 시작했던 겁니다. 여기에 유럽을 따라잡기 위한 근대화를 실시하고 백인 우월주의 사상이 더해지며, 원주민들에 대한 차별 정책도 만연하게 됩니다.


1924 7 19. 차코 주에 있는 나팔피 (Napalpi) 마을에선 결국 일어나지 말아야  사건이 벌어지고 맙니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차코 정복 통해 자유롭게 살고 있던 원주민 부족들을 특정 구역에서만 생활할  있게 했습니다. 미국이 인디언 보호 구역을 만든 것과 정확히 일치한 정책으로, 아르헨티나도 기존 원주민들의 땅을 빼앗아 이민자들에게 나눠주는 정책을 폈던 것입니다. 심지어 아르헨티나 정부는 당시 면화를 생산해 팔던 원주민들에게 15%라는 높은 세금을 요구했고, 참을 만큼 참아온 원주민들은 여기에 불만을 저항을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소총으로 무장한 경찰, 목장주 (ranchers)들이 원주민들을 진압했는데, 이른바 나팔피 학살 (Masacre de Napalpi) 벌어지게  것입니다. 당시 아르헨티나 지역 신문에 쓰인 사건 기록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7월 19일 오전 9시경 경찰들은 원주민들을 향해 발포를 시작했고, 공황 상태에 빠진 그들은 하나둘씩 쓰러졌다. 약 5,000발이 넘는 총알은 400명이 넘는 원주민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경찰들은 살아있는 원주민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총을 멈췄고, 사신들은 거대한 무덤에 버려지거나 불태워졌다. 그들은 잔인한 방법으로 원주민들을 죽였는데, 심지어 고환과 귀를 잘라 전투의 전리품으로 전시할 정도였다.


당시 보호구역에 있던 원주민들은 남성보다 여성과 어린이가 많았다고 합니다. 아마 경찰이나 목장주들도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원주민들을 완전히 제거할 생각으로 모두를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역사가들은  사건이 ‘성별이나 연령을 존중하지 않고 모두를 살해한 가장 비겁한 이었고, 아르헨티나 근대화 과정에 있어 가장 어두운 역사로 보고 있습니다.  


마크리 전 아르헨티나 대통령과 만난 펠릭스 디아즈 대표 (사진 자료: 위키피디아)


나팔피 학살 이후에도 토바 원주민들은 계속된 차별과 불평등, 빈곤 같은 문제로 어려움을 었습니다. 학살 사건도 1954년이 돼서야 아르헨티나 정부가 공식적으로 잘못을 시인했고, 점령 지역에 대한 원주민의 권리를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2010 인구 조사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전국에는  12 명이 조금 넘는 토바 (Toba) 부족 들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차코 지역에만 13,000). 이는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원주민 커뮤니티로 알려져 있으며,  (Qom) 언어를 쓰기 때문에 쿰족이라는 이름도 갖고 있습니다. 현재 원주민들은 어느 정도 자치성을 확보불공정한 일이 있을 때마다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자신들의 문화를 지속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노력 중에 있습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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