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티너리 Jul 21. 2022

차코 전쟁의 진정한 승리자는 누구였을까?

파라과이와 볼리비아의 운명을 건 전쟁


남미 대륙 지도를 보면, 두 나라가 바다로의 접근성이 없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바로 파라과이와 볼리비아입니다. 파라과이는 처음부터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가로막아 바다가 없었고, 볼리비아는 태평양 전쟁에서 칠레에게 패하며 해안가 영토를 빼앗겼습니다. 옛날부터 바다는 교역의 핵심 역할을 하는 중요한 전략지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이 두 나라는 ‘내륙국가’ (landlocked)가 되면서, 남미 대륙 내에서도 발전의 기회를 얻지 못한 역사를 갖게 됐습니다.


바다가 가로막힌 볼리비아와 파라과이 (자료: 구글맵)


1932년 6월. 파라과이와 볼리비아는 경제권을 두고 피할 수 없는 전쟁을 벌였습니다. '차코 전쟁'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삼국동맹 전쟁, 태평양 전쟁과 더불어 남미 현대사에서 일어났던 가장 큰 전쟁으로 꼽힙니다. 당시 차코 지역은 정확한 영토선이 그어지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두 나라 모두 야금야금 자신들의 땅을 늘려 나가는 중이었습니다. 파라과이는 주요 산업인 마테차 생산을 늘리기 위해 차코로 진출했고, 볼리비아는 석유와 더불어 대서양으로 진출하기 위한 길을 찾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서서히 긴장감이 높아지던 두 나라 간의 갈등은 결국 폭발했고, 황량하고 메마른 차코에서 전쟁이 시작되고 맙니다.


금방 끝날 것 같았던 이 전쟁은 3년 동안이나 지속됐습니다. 양쪽에서 약 15만 명의 군이 참여했고, 외국 용병까지 고용해 치열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흥미로운 내용이 많지만, 이 글에서는 전쟁 과정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루지 않고자 합니다. 이미 인터넷에 수많은 전투에 대한 정보가 잘 정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대신 전쟁을 마무리하기 위해 맺어진 양국 간 평화 협정, 그리고 전쟁이 남긴 것들에 대해 좀 더 초점을 맞추고자 합니다. 마침 오늘의 주제도 휴전 협정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차코 전쟁은 1938년 7월 21일 휴전 협정을 맺으며 공식적으로 마무리됩니다. 주요 전투 자체는 1935년에 끝났지만, 양쪽이 모두 인정할 수 있는 협정 내용을 담기 위해 오랜 기간이 걸린 셈입니다. 가장 흥미로운 건 두 나라가 협상을 단독으로 진행한 것이 아닌, 국제적인 개입이 많이 이뤄졌다는 점입니다. 가장 먼저 두 나라 사이의 경계선을 정하기 위해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미국, 페루, 우루과이가 참여했습니다. 두 나라 모두 형평성에 대해 불만을 갖지 못하도록 꽤 많은 나라가 중재자 자격으로 평화 협정 과정에 참여한 것입니다. 이 나라들은 파라과이에게 75%나 되는 영토를 차지하게 했으며, 반대로 볼리비아에겐 파라나 강 사용을 허락해줬습니다. 사실 볼리비아에게는 아쉬운 결정이었지만,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습니다. 결과만 놓고 본다면 볼리비아가 파라과이 보다 더 큰 피해를 입었고 전쟁에서 패한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입니다.


평화 협정에 서명하는 모습 (사진 자료: 위키피디아)


한편 중재를 맡았던 나라 중에서 가장 눈에 띈 나라는 아르헨티나였습니다. 아르헨티나는 평화 협정 행사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맺어지도록 지원했고, 두 나라 사이에 평화를 적극적으로 이끈 아르헨티나 외무장관 카를로스 라마스 (Carlos Saavedra Lamas)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 하기도 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자신들의 일이 아니었음에도 남미 지역의 평화를 위해 노력했다는 점에서 많은 국가들의 찬사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국제 정치에서 100% 사심 없는 지원은 있을 수 없습니다. 아르헨티나가 차코 전쟁 평화에 기여한 것도, 파헤쳐 보면 다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당시 파라과이에는 아르헨티나의 많은 기업과 사업가들이 목축업, 마테차, 토바코 산업에 많은 자본을 투자했던 시기였습니다. 만약 전쟁에서 파라과이가 진다면, 아르헨티나 사업가들도 많은 피해를 볼 것이 불 보듯 뻔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는 동안 아르헨티나는 자국 기업을 위해 알게 모르게 파라과이를 지원했고, 평화 협상 과정에 있어서도 파라과이에 유리하게끔 여론을 형성했습니다. 심지어 파라과이가 차지하게 된 차코 지역에도 많은 아르헨티나 기업이 진출하게 되면서, 금전적 이득을 얻는 결과를 갖게 됩니다. 정리해보면 차코 전쟁은 당사자들의 경제와 인명 피해는 컸던 반면, 이웃 나라는 기회를 틈타 이익을 챙긴 결과를 가져온 셈이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콜롬비아 독립은 ‘꽃병'이 깨지며 시작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