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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Jul 23. 2022

빠르게 훑어보는 니카라과 현대 역사 이야기


‘40년 동안 이어진 니카라과의 세습 정치 이야기’ 글에서 니카라과 ‘소모사 가족’에 대해 설명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1930년대부터 1979년까지 총 세 명의 소모사 대통령이 세습에 가까운 정치를 해온 내용이었습니다. 독재자에 가까웠던 소모사는 국민들의 지지를 잃었고, 결국 반대 세력인 산디니스타에게 권력 자리를 내줬습니다. 오늘은 이 니카라과 역사 이야기의 연장선으로, 소모사 이후 권력을 잡은 산디니스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1961년 7월 23일. 니카라과에서는 소모사 정권에 대항하기 위한 이른바 ‘산디니스타 조직’ (FSLN: Frente Sandinista de Liberación Nacional)이 새로 만들어졌습니다. 공식적인 이름은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입니다. 시기만 보면 중남미 전역에 혁명 바람이 불었던 때로, 특히 쿠바 혁명의 영향을 많이 받아 생겨난 조직이었습니다. 쿠바 바티스타 독재 정권이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에 의해 무너졌던 것처럼, 산디니스타도 소모사 정권을 무너뜨리는 일을 꿈꿨는데요. 마르크스 이념을 바탕으로 '아래에서 위로의 혁명'을 꿈꾸며 니카라과 전역에서 조금씩 정치 활동을 늘려나갔습니다.


아구수스토 산디노 (사진 자료: 위키피디아)


한편 '산디니스타라'는 특정 이름이 붙게 된 이유는 니카라과 역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산디니스타는 실제 존재했던 아우구스토 산디노를 추모하고, 그의 철학을 따르기 위해 붙여졌습니다. 1920년대 미국이 니카라과를 잠시 점령했던 시절, 산디노는 압도적인 미군 화력에도 굴복하지 않고 니카라과의 해방을 위해 싸운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미국 제국주의에 대항하며 저항의 아이콘이 됐고, 니카라과 국민들의 높은 지지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활약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바로 반사회주의를 외치던 아나스타시오 소모사였습니다. 니카라과 엘리트와 미국의 지지를 받은 그는 산디노를 몰아내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했고, 결국엔 그를 암살하기에 이릅니다. 1961년 창설된 산디니스타란 조직의 이름은 억울하게 죽은 산디노를 기억하고, 잔혹했던 소모사에게 복수하기 위한 의미를 담은 이름이었던 겁니다.


산디니스타 조직 설립 초기, 구성원 대부분은 변화를 꿈꿨던 젊은 사람들로 이뤄졌습니다. 다만 산디니스타 타도를 외쳤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진 조직이었기 때문에, 결집력이나 리더십은 크게 발휘되지 못했습니다. 설립 초기 영향력은 아쉬운 부분이 있었지만, FSLN은 포기하지 않고 정당을 꾸려 꾸준히 활동을 이어나갔습니다. 특히 정당을 기반으로 세력을 키워나갔다는 점은 애초부터 게릴라 조직으로 시작된 쿠바 혁명 과정과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정당들과 연대하는 방식으로 소모사를 위협했고, 정치 시스템을 최대한 존중하는 선에서 자신들의 목표를 위해 노력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들의 정치적 행보도 좀 더 공격적으로 바뀌게 됩니다. 특히 1974년 일어난 '마나구아 지진'은 산디니스타 조직이 총과 무기를 들어 게릴라 활동을 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지진 이후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는 사이, 소모사는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해외 원조 자금의 상당수를 빼돌렸기 때문입니다. 산디니스타 게릴라 조직은 더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세력이 확대됐고, 결국 1979년 창립 28년 만에 소모사 대통령을 몰아내는 데 성공하게 됩니다.


젊은 시절의 다니엘 오르테가 (사진 자료: washington post)


산디니스타가 정권을 잡은 이후, 니카라과는 중남미의 다른 사회주의 정부와 비슷한 역사를 걷게 됩니다. 정권 초기에는 나름 민주주의를 존중하고 경제 성장도 이뤘지만, 시간이 갈수록 위기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특히 니카라과는 미국 레이건 대통령의 지원을 받은 소모사 잔당들이 산디니스타 정부에 대항하면서 더욱 혼란에 빠지는 형국으로 가게 됐습니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산디니스타 시대는 워낙 복잡하고 다양한 관점이 있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글이 하나  필요할 정도입니다.) 중요한 , 혁명을 성공시킨 이후의 산디니스타도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하며 국민들의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특히 산디니스타 출신의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은 헌법을 바꿔 4선에 성공하고 오랜 시간 권력을 쥐어 잡고 있는 모습인데, 이는 소모사와 별반 다를바 없는 느낌입니다. 정치 성향에 따라 산디니스타 정권에 대한 의견은 나뉘겠지만, 어찌됐건 그들은 아직까지도 주요 세력으로 남아 니카라과 정치를 이어나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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