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주제는 이전에 많이 다뤄지지 않았던 나라, ‘푸에르토리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푸에르토리코 하면 ‘데스파시토’가 제일 많이 알려져 있지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많은 스토리가 숨겨져 있는 나라기도 합니다. 특히 매년 7월 27일은 ‘호세 셀소 바르보사의 날’로 제정됐는데, 오늘은 푸에르토리코의 이 특별한 공휴일이 지정된 이유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풍요로운 항구’라는 뜻을 가진 이 나라에서 7월 27일이 공휴일이 된 건 ‘호세 셀소 바르보사’ (José Celso Barbosa)라는 인물과 연관이 있습니다. 의사였던 바르보사는 푸에르토리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막 독립한 1900년대 초부터 올바른 의료 보건 제도가 도입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또 그는 국가 설립 초기 정치, 행정, 교육 시스템에도 관여하며 나라의 틀이 잡히는데 많은 기여를 한 인물이었습니다.
사실 이렇게만 들으면, ‘나라를 사랑하는 뛰어난 인물이었구나!’ 정도로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더 많은 존경을 받게 된 건, 그의 성장 배경과 관련이 있습니다. 1857년 평범한 한 가정에서 태어난 바르보사는 학구열이 뛰어났지만, 당시 분위기는 누구나 공부를 할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19세기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푸에르토리코에서는 인종 차별이 만연해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르보사는 아프리카계 후손이었고, 피부색 때문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꿈이었던 의사가 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미시간 의과 대학에 진학했고, 그곳에서 어려운 의대 과정을 마치고 당당하게 의사가 됐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미국에서 의학 학위를 딴 최초의 푸에르토리코 인으로서, 차별을 이겨내고 자신의 꿈을 이뤄낸 인물로 이름을 남기게 된 겁니다.
푸에르토리코에서 돌아온 바르보사는 단순히 의료 부문에서만 활동하지 않았습니다. 평소 사회 운동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직접 행동으로 나서 인종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한 사례로, 그가 신문에 실었던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네그로! 네그로! 네그로! 좋습니다! 우리는 네그로 (흑인)인 게 자랑스럽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푸에르토리코의 백인보다 열등하지 않으며, 그들과 똑같이 푸에르토리코에 헌신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정치 분야에서도 상당한 재능을 보인 인물이었습니다. 1898년 푸에르토리코가 막 스페인 지배로부터 벗어났을 당시, 식민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푸에르토리코가 미국 연방제로 들어가는 것을 찬성했습니다. 미국 세력이 워낙 지배적이었으므로, 거기에 대항하기보다 차라리 가까워져 실리를 챙기는 것이 이익일거라 판단했던 겁니다. 그는 분리주의 대신 연방 정부를 추진했고, 그 목적을 위해 푸에르토리코 공화당을 창당하며 정치계의 주요 인물로 등극하게 됩니다.
'바르보사의 날'로 지정된 7월 27일은 그의 출생일입니다. 푸에르토리코 정부는 특별히 그의 공로를 인정해 이 날 자체를 공휴일로 만들어버린 것이었습니다. 한 국가에서 특정 인물의 생일을 국경일로 정하는 건 흔치 않은데, 그만큼 바르보사가 중요한 인물이었다는 걸 반영하는 부분입니다. 매년 7월 27일엔 그를 추모하기 위한 기념식이 고향 바야몬에서 열리며, 그의 생가는 푸에르토리코 문화 연구소와 박물관으로 탈바꿈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 장소가 됐습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