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7월 28일은 페루의 독립 기념일로, 큰 규모의 퍼레이드와 축제가 벌어지는 날입니다. 이 날은 1821년 산마르틴 장군이 독립을 선포한 걸 기념하기 위해 제정됐는데요. 스페인어로는 Fiestas Patrias, 혹은 Fiestas Nacional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오늘은 독립 기념일을 맞아, 페루의 독립 과정 역사를 간단하게 알아보고자 합니다.
이야기에 앞서 한 가지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면, 페루는 남미에서 스페인 지배가 가장 강력했던 곳 중 하나였던 점입니다. 과거 잉카 제국이 있었던 곳이고 노동력도 풍부했기 때문에, 스페인은 페루 부왕령을 식민지의 중심지로 삼아 세력을 확대해 나갔습니다. 때문에 1810년 아르헨티나, 파라과이에서 독립운동이 막 시작됐을 때에도 페루는 독립보다도 오히려 스페인 충성 주의자들이 집결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페루에서도 독립에 대한 열망이 조금씩 꿈틀대기 시작했습니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특히 페루 남부 위 타크나, 완차코, 쿠스코 같은 지역에서 스페인에 대항한 저항이 컸습니다. 아무래도 북쪽 지역보다 남부에 있단 광산에서의 노동 환경이 좋지 않았고, 더 많은 차별과 억압을 받아왔던 게 표출됐기 때문입니다.
페루의 스페인 지지자들은 1820년대까지 크리오요와 원주민들의 반란을 나름 잘 막았습니다. 특히 1811년 벌어졌던 와끼 전투 (Battle of Huaqui)는 스페인 군이 군사적으로 월등하다는 걸 보여준 결정적인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또 이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아르헨티나에서 부터 번져오는 독립 세력을 초기에 진압할 수 있었습니다.
스페인이 지배적이던 형세는 결국 산마르틴 장군이 아르헨티나, 칠레를 차례로 정리한 뒤 페루로 넘어오며 바뀌게 됩니다. 그는 페루 해방 원정대 (Liberating Expedition of Peru)라는 이름으로 군대를 조직했고, 페루 파라카스에 상륙한 뒤 빠른 속도로 리마에 입성했습니다. 그가 진군하는 동안 스페인 군들은 산 마르틴에 적수가 되지 못했고, 결국 리마를 떠나 산악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됩니다.
1821년 7월 28일.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산 마르틴 장군은 페루의 독립을 공식적으로 선포했습니다. 역사에선 이 날 산 마르틴 장군의 연설을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순간부터 페루는 국민들의 의지와 신이 수호하는 정의에 따라 자유와 독립을 이뤘음을 선포한다. 조국 만세! 자유 만세!, 독립 만세!”
다만 독립 선언이 페루의 완벽한 독립을 의미한 건 아니었습니다. 산 마르틴 장군은 또다른 독립 영웅 볼리바르와 만나 남은 스페인 잔당 세력을 어떻게 물리칠지 논의했습니다. 결국 후닌 전쟁 (1824년 8월), 아야쿠초 전쟁 (1824년 12월)을 겪고 나서야 페루는 더욱 완전한 독립을 이루게 됩니다.
(하지만 스페인은 그 이후에도 페루에 미련이 남았고, 1879년 파리 협의 때까지 페루를 공식적인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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