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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Jul 30. 2022

무려 50년 넘게 이어졌던 멕시코의 '카스트 전쟁'

멕시코의 잘 알려지지 않은 전쟁에 대한 이야기 


오늘의 주제는 멕시코에서 일어났던 기나긴 전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보통 멕시코 하면 멕시코 혁명이나 알라모 전투는 잘 알려져 있는 반면, 유카탄 반도에서 50년 넘게 벌어진 '카스트 전쟁 (Guerra de Castas)'은 소개된 경우가 극히 드뭅니다. 멕시코 역사, 특히 남부 지역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오늘은 이 카스트 전쟁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고자 합니다. 


먼저 전쟁이 벌어진 원인을 알기 위해선 1840년대 멕시코의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멕시코는 독립 이후에도 인종에 따라 엄격한 계급 사회를 유지해 나갔습니다. 식민지 시절에는 페닌술라르 (스페인 본토 출신)가 계급의 최상위권을 차지했다면, 멕시코 독립 이후에는 크리오요 (멕시코에서 태어난 스페인 사람)가 그 자리를 차지했던 겁니다. 바로 밑에는 원주민과 크리오요 (혹은 백인)가 섞인 메스티소가 있었고, 최하위층에는 각자 부족을 이루고 살아가던 마야 원주민들이 있었습니다. 멕시코 독립운동은 자유와 평등을 외쳤지만, 현실은 계급 사회를 그대로 이어나가며 인도의 '카스트 제도'와 똑같은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멕시코에서 계급 사회가 가장 심각했던 곳은 남부 유카탄 반도였습니다. 유카탄 반도는 원래부터 상당히 많은 마야 원주민이 거주하고 있던 지역이었고, 그들은 주로 공동 소유 경작지에서 농사일을 하며 소소하게 경제적 활동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유카탄 정부에서 마야 원주민들의 소유지를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특히 1830년대 사탕수수 붐이 일어나면서 많은 크리오요들이 유카탄 반도로 이주해왔고, 그들은 아시엔다 (Hacienda)라 불리는 대규모 농장을 세워 마야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봐도 불공정한 상황이었지만, 정부나 교회 그 누구도 자신들을 보호해주는 존재가 없었기 때문에 마야인들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아시엔다에 들어가 일하게 됐습니다. 이들에게 주어진 일은 말도 안 되게 어려웠고 겨우 생계를 유지할 정도의 낮은 임금만 받았기 때문에, 사실상 노예와 다름없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카스트 전쟁을 묘사하는 그림 (사진 자료: historiando)


1840년대 중반. 참다못한 마누엘 안토니오 아이 마야 부족장은 원주민들의 노동 환경을 개선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유카탄 정부의 대답은 오히려 그를 체포하고 공개 사형시키는 식이었습니다. 자칫하면 폭동으로 번질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공포 정치를 실현해 원주민들을 억압하려 한 것이었습니다. 1847년 7월 30일. 결국 참았던 마야인들의 분노가 폭발하며 카스트 전쟁이 터지게 됩니다. 이 날 마야군 지도자 세실리오 치(Cecilio Chi)는 대농장 주주들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마야인이 아닌 사람들을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며 꽤나 공격적인 방식으로 유카탄 반도 도시들을 하나씩 점령해 나갔습니다. 이 전쟁에 '카스트'란 이름이 붙은 이유도, 결국 불공정했던 계급 사회를 뒤엎고자 한 마야인들의 열망과 복수심이 담겨있었기 때문입니다.


금방 끝날 것만 같던 전쟁은 소모전으로 이어지다, 50년이 훨씬 지난 1901년이 돼서야 끝을 맺게 됩니다. 1901년 멕시코 연방군은 현대화된 군대들을 앞세워 마야인들의 중심지 찬 산타크루즈 (Chan Santa Cruz)를 점령했고, 전쟁을 사실상 끝내게 된 것입니다. 전쟁이 남긴 상처는 참혹했는데, 결과적으로 25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고 마야 커뮤니티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킨타나루 (Quintana Roo) 주로 합병되고 맙니다. 그런데 슬픈 사실이 하나 더 있다면, 전쟁이 끝난 뒤에도 마야 원주민들에 대한 억압이 계속됐다는 점입니다. 특히 새로운 주지사로 임명된 이그나시오 브라보는 많은 마야인들을 괴롭혔는데, 오죽하면 사람들은 정글이 많았던 유카탄 반도를 "녹색 지옥 (Infierno Verde)"으로 이름 붙여 당시 상황을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차별과 억압의 역사 속에서 살아오던 마야인들은 100년이 훨씬 지난 2021년이 돼서야 멕시코 정부 (암로 대통령)의 공식적인 사과를 받게 됐지만, 그들의 사회 경제적 수준은 여전히 멕시코에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상황입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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