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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Aug 18. 2022

수많은 암살 사건이 벌어졌던 1990년 콜롬비아 선거


20세기 후반 콜롬비아 ‘폭력의 역사’는 이미 여러 번 다뤘습니다. 정부, 마약 카르텔, 혁명군, 민간 군사조직까지 엮이며 유혈 사태가 난무하는 사건들을 겪었는데요. 오늘의 이야기는 그것의 연장선으로, 한 유명 대통령 후보가 암살당한 사건입니다. 


일어나선 안 될 비극적인 암살을 당한 정치인은 루이스 카를로스 갈란 (Luis Carlos Galán)이었습니다. 원래 기자로 활동하던 갈란은 정치에 뜻을 가지고 정치계에 입문했고, 1979년엔 새로운 자유주의 (Nuevo Liberalismo)라는 이름을 가진 새 정당을 직접 만듭니다. 기존에 있던 자유당 (Partido Liberal)의 관료화와 당원들의 혁신 부재를 이유로 새로운 당을 세웠던 건데요. 정치에 열정적이었던 그는 1982년 1986년 대통령 선거에도 나서면서 콜롬비아 주요 정치인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한편 갈란은 자신의 세 번째 도전인 1990년 선거에도 출마했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 부정부패 척결을 외치면서 대중들의 지지를 얻었고, 1990년 대통령 선거 유력 당선 후보로 조심스럽게 예측됐습니다. 다만 그를 위협하는 게 있다면, 바로 카르텔 세력의 살해 위협이었습니다. 평소 카르텔의 잔인함을 비판했던 그였기에, 카르텔은 갈란의 당선이 자신들에게 잠재적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본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1989년 8월 4일, 메데인에서는 갈란의 목숨을 노린 테러가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갈란은 여기에 굴복하지 않았고, 계속해서 선거 캠페인을 이어나갔습니다. 


선거 유세 중인 갈란 (사진 자료: centro nacional de memoria historica)


갈란을 노린 암살 사건은 결국 1989년 8월 18일 벌어지고 맙니다. 당시 갈란은 소아차 (Soacha)라는 도시에서 선거 유세를 하고 있었습니다. 8시에 가까워진 늦은 저녁, 선거장은 그의 모습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굉장히 복잡했고, 갈란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여전히 유세 중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그의 주변에서 기관총 소리가 울리며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맙니다. 갈란을 노린 암살자가 무차별적으로 총을 쐈고, 갈란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목숨을 잃게 됩니다. 


갈란 후보의 암살을 주도한 인물들은 바로 메데진 카르텔 세력이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대로, 자신들의 생계를 위협하던 갈란을 없애고자 했던 계획이 실행된 것이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곧바로 콜롬비아 전역에 알려지며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보고타에서 치러진 장례식 당일엔 지지자를 포함한 백만 명에 가까운 일반 국민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갈란의 안타까운 죽음은 당시 콜롬비아에서 벌어지던 테러 공격이 얼마나 만연해 있었는지 보여주는 부분이었습니다. 


한편 1990년 선거에선 유달리 많은 암살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대중들의 비판과 미국의 압박을 받은 카르텔들이 상황이 불리해지자 더 많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테러를 일삼았기 때문입니다. 콜롬비아에서는 갈란 외에도 대통령 후보로 출마할 예정이었던 하이메 프라도가 1987년 암살당했고, 애국 연합당의 호세 안테케라는 공항 폭탄 테러로 1989년 목숨을 잃게 됩니다. 같은 해 11월에는 자유당 출신의 세사르 가비리아가 타고 있던 비행기가 공격당해 107명이 사망했지만, 가비리아는 겨우 목숨을 건지며 결국 1990년 새로운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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