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비정상 회담에서 전 세계 군대 제도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각국의 징병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멕시코 크리스티안이 소개한 “뽑기" 에피소드가 특히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멕시코에서는 만 18세가 되면 남자들이 검은색 vs. 흰색 공 뽑기 추첨을 통해 군대를 가느냐 마느냐가 결정되는데, 순전히 ‘운’으로 군대 운명이 결정되는 게 신기한 부분이었습니다.
멕시코에선 전체 비율 중 약 60%가 군면제를 받는다고 합니다. 열 명 중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면제를 받기 때문에 군대를 가는 비중이 더 낮은 건데요. 안 갈 확률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한국인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뽑기로 일 년 군생활 여부가 결정되는 건 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한편 멕시코에선 이 같은 제도에 대해 큰 반발이 없다고 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군생활 강도가 높지 않기 때문입니다. 40% 확률에 걸려 군대를 간다 해도 우리나라처럼 화생방, 사격, 유격 같은 훈련을 하는 게 아닌 주말 사회봉사 형식으로 일을 한다고 합니다. 군 복무지만, 사실상 주말 출퇴근 형식인 겁니다. 다만 베라크루스와 같은 주에서는 해군이 있기 때문에, 흰색 검은색 말고도 파란색 공을 뽑기에 추가해 파란 공이 나올 경우 해군에서 근무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멕시코에서 의무 군 제도가 실시된 건 1940년 8월 19일 의무 병역법 (Ley del Servicio Militar Obligatorio)이 통과되면서부터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뒤 중립 입장을 지켰던 멕시코는, 카리브/대서양 해역에서 독일군의 잠수함 공격이 빈번하게 발생하자 조금씩 위기의식을 느꼈습니다. 멕시코 정부와 의회는 멕시코가 2차 세계대전에 휘말릴 수도 있겠다는 예측을 했고, 결국 8월 19일에 이 법을 발표합니다. 2년 뒤에는 이 법안이 실질적인 실효성을 가지게 되면서, 멕시코의 모든 남성들은 법적으로 의무 군입대를 하게 됩니다.
참고로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에도 멕시코는 한국 전쟁에도 참여한 경력이 있습니다.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약 10만 명 규모의 멕시코 군인들이 한국 전쟁에 참여한 걸로 알려져 있는데요. 다만 이들은 미국 대대에 속해 역사에 알려져 있지 않다가, 최근에야 주목을 받게 됐습니다. 한편 멕시코 헌법에는 여전히 군 복무를 ‘의무’라고 명시하고 있지만, 이후에는 멕시코가 전쟁에 관여하는 횟수가 줄어들며 군 복무 관련 규정이 완화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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