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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Aug 20. 2022

러시아 권력 2인자가 멕시코로 망명을 가게 된 이유는?


1940년 8월 20일. 멕시코시티에서는 유명한 러시아 혁명가 한 명이 암살당합니다. 한때 레닌의 유력한 후계자로 알려졌던 레온 트로츠키가 괴한의 공격을 받고 다음날 목숨을 잃게 됐는데요. 오늘의 이야기는 트로츠키라는 인물, 그리고 그가 멕시코 망명을 택하게 된 내용을 다루고자 합니다.


먼저 트로츠키는 1917년 일어났던 러시아 혁명에서 붉은 군대를 이끈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지원 덕분에 볼셰비키 혁명은 성공으로 끝났고, 트로츠키는 2인자 자리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레닌이 병으로 건강이 악화되며 후계자를 고를 때쯤, 트로츠키와 스탈린이 계승자에 적합한 인물로 거론되기 시작했는데요. 지식이나 경험은 트로츠키가 훨씬 많았지만, 권력 욕심이 많았던 스탈린은 라이벌 트로츠키를 서서히 몰아내기 시작합니다.


1924년 레닌이 세상을 떠난 뒤, 결국 다음 후계자 자리는 스탈린이 차지하게 됩니다. 반면 트로츠키는 순식간에 경계 대상으로 전락하여 주요 정부직에서 물러났고, 나중에는 강제로 추방까지 당합니다. 처음 터키로 망명을 갔던 그는 이후 프랑스, 노르웨이 같은 여러 나라들을 거치며 스탈린을 비판하는 활동을 계속했고, 1937년엔 '배신당한 혁명'이란 책을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스탈린은 트로츠키를 추방시킨 뒤에도 성에 안찼는지, 그를 암살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는 NKVD라 불리는 에이전트를 통해 트로츠키 제거 작전을 여러 번 시도했는데요. 그러자 트로츠키는 더 이상 유럽에서 생활이 어렵다고 판단해 대서양을 건너기로 결정했고, 그의 최종 목적지는 멕시코가 됐습니다. 당시 유일하게 트로츠키에게 환영의 입장을 보였던 건 멕시코 카르데나스 대통령이 유일했기 때문입니다. 


멕시코 코요아칸에 위치했던 트로츠키의 집 (사진 자료: cityseeker)


한편 멕시코 내에선 트로츠키를 받아주는 것에 대해 찬반 논쟁이 일었습니다. 특히 우파 입장에서는 그를 위험인물로 간주했고, 내각 내에서도 유럽과의 외교관계가 악화될 것을 우려하며 그의 망명을 우려했습니다. 그럼에도 카르데나스 대통령이 그를 받아들인 이유는 순전히 인도적으로 그를 수용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멕시코에 안정적으로 정칙 한 트로츠키는 유명화가 디에고 리베라, 프리다 칼로와 가깝게 지내며 멕시코에서 새롭게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하지만 스탈린은 멕시코에까지 비밀 조직을 보내 트로츠키를 암살하려 했습니다. 1940년 5월 새벽 4시, NKVD는 트로츠키의 집을 급습했지만 이를 먼저 눈치챈 그의 아내 나탈리아 덕분에 겨우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러나 같은 해 8월, 평소에 신뢰하며 가깝게 지내던 스페인 공산주의자 메르카데르의 공격을 받게 됐고, 한 때 혁명을 이끌었던 트로츠키는 멕시코에서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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