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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Aug 21. 2022

멕시코 독립을 위해 모든 재산을 기부한 레오나 이야기


미국 역사를 배우다 보면, ‘건국의 아버지들’ (Founding Fathers)이 독립에 가장 많이 기여한 인물들로 설명됩니다. 이후 역사가들은 ‘여성들도 각자의 위치에서 미국 혁명을 도왔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시작했는데요. 대표적인 인물로는 아비가일 아담스, 마르사 워싱턴, 낸시 하트 같은 인물들이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멕시코에도 독립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주며 존경받게 된 인물들이 있습니다. 흔히 이달고 신부가 제일 많이 알려져 있지만, 레오나 비카리오 (Leona Vicario)도 독립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한 여성으로 부각되기 시작했습니다. 1845년 8월 21일 레오나가 5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당시 대통령이었던 산타 아나는 그녀가 조국을 위해 세운 공로를 기념하여 국가 장례식을 치르기까지 했는데요. 오늘은 국내엔 잘 알려지지 않은 레오나 비카리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먼저 비카리오는 1789년 멕시코시티에서 태어난 크리오요 였습니다. 그녀의 풀네임은 María de la Soledad Leona Camila Vicario Fernández de San Salvador으로 꽤나 긴 편입니다. 스페인 출신의 부유한 상인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당시 보통의 여성들과는 다르게 고등 교육을 받을 기회를 얻었고, 일찍이 자유주의에 기반한 정치 철학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레오나 비카리오의 동상 (사진 자료: dondeir)


멕시코에서 독립운동이 시작되자, 비카리오는 그녀의 위치에서 독립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시작했습니다. 워낙 열정적으로 활동한 덕분에 그녀는 비밀 독립운동 조직이었던 로스 과달루페스 (Los Guadalupes)에 가입됐고, 그곳에서 독립군들을 위한 정보원, 혹은 스파이 역할을 했습니다. 또 그녀는 가족으로부터 물려받은 막대한 재산을 기꺼이 기부해 독립군들의 의약품, 식량과 같은 경제적 지원을 위해 썼습니다. 한 때 스페인 군에게 체포됐다 겨우 탈출한 경험이 있었음에도, 그녀는 그녀의 조국 멕시코가 독립을 이룰 때까지 꾸준하게 활동을 펼쳤습니다. 


레오나의 흥미로운 이력이 있다면, 바로 멕시코 최초의 여성 저널리스트였다는 점입니다. 그녀는 총 대신 펜으로 독립운동에 기여한 인물이었는데요. 독립 기간 동안 레오나는 '엘 일루스트라도르 아메리카노', '세마나리오 패트리오티코 아메리카노' 신문에 글을 기고하며 멕시코 독립의 중요성을 널리 알렸던 유일무이한 여성 중 한 명이었습니다. 


멕시코에서 레오나가 보여준 헌신은 한 개인이 어떻게 엄청난 차이를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가부장제와 식민 지배가 특징인 사회에서 태어났지만, 레오나의 독립심과 결연함은 멕시코의 독립을 이끄는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용감하고 지적인 모습을 보여준 그녀의 행적은 훗날 많은 존경을 받았고, 멕시코 정부는 2020년을 레오나 비카리오의 해 (Año de Leona Vicario)로 지정했고 조국의 빛나는 어머니 (Benemérita Madre de la Patria")란 이름을 붙여 그녀에 대한 존경심을 표했습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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