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주제는 쿠바의 잘 알려지지 않은 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흔히 쿠바 하면 체 게바라, 카스트로, 호세 마르티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데요. 오늘 소개할 나르시소 로페스 (Narciso Lopez)는 이들보다 훨씬 앞선 1800년대 초중반 쿠바 독립에 앞장선 인물이었습니다.
이전 글에서 언급해드렸듯이, 쿠바의 독립은 다른 중남미 국가들보다는 다소 늦은 1902년에 이뤄졌습니다. 1898년 일어났던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스페인이 패배하면서 독립 국가가 된 것인데요. 하지만 쿠바는 이미 1820년대부터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진 곳 중 하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르시소 로페스는 꾸준하게 쿠바를 해방시키기 위한 싸움을 벌인 인물이었습니다. 베네수엘라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던 그는 원래 스페인 군대에 속한 군인이었고, 시몬 볼리바르의 독립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싸웠습니다. 이후엔 쿠바로 넘어가 그곳에서 군인 경력을 쌓아가기 시작했는데요. 그러던 도중 쿠바에서 반스페인 감정이 강해지자 그들과 연합했고, 반란군의 지도자로서 스페인을 몰아내고 미국과 가까워지기 위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1848년 쿠바 정부를 전복시키려 했던 계획은 사전에 발각되며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로페스는 미국으로 도망간 이후에도 꾸준히 쿠바를 위한 싸움을 계속했습니다. 특히 그는 미국의 영토 확장 주의를 합리화하는 단어 “매니페스토 데스티니” (Manifest Destiny)를 만든 오설리번과 뉴욕에서 만나 쿠바의 해방을 옹호해달라는 여론전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로페스는 총 4번이나 쿠바 원정을 떠났지만 모두 실패했고, 1851년 8월 31일에는 스페인 군에 포위되어 결국 체포되기에 이릅니다. 다음날인 9월 1일. 스페인 사법부는 자신들을 계속해서 괴롭히던 로페스를 사형시키기로 결정했고, 그렇게 그는 단두대에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나르시소 로페스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대표적인 필리버스터로 이름을 남겼습니다. 당시엔 해외에서 승인되지 않은 전쟁에 가담한 용병들을 필리버스터 (filibuster)라 불렀는데, 의회에서 벌어지는 무제한 토론을 가리키는 지금과는 꽤나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던 단어였습니다. 로페스는 미국의 지원을 받은 필리버스터로, 이후 니카라과에서 윌리엄 워커 같은 필리버스터가 활동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로페스가 유명한 또 다른 이유는 현재 쿠바 국기와 연관이 있습니다. 쿠바의 국기는 세계의 파란색 줄, 두 개의 하얀색 줄, 그리고 빨간색 삼각형 안에 별이 들어간 모양을 하고 있는데, 로페스가 이 국기 모양을 직접 디자인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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