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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Oct 02. 2022

멕시코에서 10월 2일마다 추모 행진이 벌어지는 이유


이전 ‘멕시코 1968’  글에서는 대규모 학생 운동과 함께 일어났었던 ‘틀라텔롤코 학살’ (Masacre de Tlatelolco) 사건에 대해 잠깐 언급한 바 있습니다. 1968년 7월부터 시작된 학생 운동은 두 달 넘게 이어지고 있었는데, 이를 총으로 무자비하게 진압해버린 사건이 멕시코 시티 틀라텔롤코에서 벌어진 것입니다. 이는 10월 2일에 벌어졌으며, 매년 이 날이 되면 멕시코에서는 추모 행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1968년 10월 2일 당시, 틀라텔롤코 트레스 쿨트라스 광장에서는 약 만 명의 학생들이 모여 시위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목적은 거의 40년 가까이 정권을 유지해온 제도혁명당 (PRI)에 대항하기 위해서였는데요. 또 이들은 멕시코 올림픽 개최에 쓴 예산을 차라리 사회 복지에 써달라고 외치며 정부를 압박했습니다.


저녁 6시. 광장 근처 아파트 빌딩에서 시위대 학생들이 있는 곳으로 총이 발사되기 시작했습니다. 빨간빛을 내뿜으며 나오는 총알 앞에서 광장에 있던 많은 학생들이 쓰러졌고, 도망치는 그들을 향해 군인과 경찰이 진압을 시도하며 인명 피해는 더욱 커졌습니다. 정확한 희생자들의 숫자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약 200명에서 300명 정도가 이 날 목숨을 잃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건 발생 직후, “왜 발포를 시작했는가?”에 대한 조사가 시작됐습니다. 그러자 경찰 관계자들은 시위대 중 무장한 사람들이 총격전을 시작해 대응 사격을 했을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학생들의 도발에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정당한 대응을 했을 뿐이라고 발표한 것입니다. 90년대가 되서야 사건의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 조사단이 꾸려지긴 했지만, 누가 최초의 발포를 명령했으며 어떤 사람들이 연루되어 있는지는 여전히 파악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흔히 중남미 역사에서 ‘더러운 전쟁’을 이야기할 때 칠레나 아르헨티나 군부 정권에 포커스가 맞춰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번 틀라텔롤코 사건도 멕시코 버전의 더러운 전쟁의 일부로 칭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미국 정부의 문서가 공개되자, CIA 간접적으로 개입해 멕시코 정부를 지원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멕시코 1968년은 반정부 시위가 가장 강했던 때였지만, 틀라테롤코 사건을 기점으로 제도혁명당을 기반으로 한 정권은 계속해서 권력을 유지하게 됩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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