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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Oct 18. 2022

파라과이에서 벌어진 '혁명' 혹은 '쿠데타' 사건  


오늘의 주제는 1891년 10월 18일 파라과이에서 일어났던 중요한 정치적 사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혁명이라 부를 수도, 아니면 쿠데타라 부를 수도 있는 사건인데요. 요약하자면 1890년 대통령 선거 이후 파라과이 자유당이 콜로라도당의 부정 선거를 주장하며 일으킨 군사적 움직임이었습니다. 


1891년 이전의 역사를 살펴보면, 파라과이에서 독립 전쟁 다음으로 중요한 사건은 아무래도 삼국 동맹 전쟁이었습니다. 1864년부터 7년 동안 이어진 전쟁에서 브라질-아르헨티나-우루과이 연합에 패배한 파라과이는 이후 정치적으로 큰 공백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그 빈자리에는 곧 보수와 진보 세력이 자리를 잡았고, 1887년 콜로라도당과 자유당이 창당되며 본격적인 정치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습니다.  


두 정당이 처음 맞붙게 된 건 1890년 대통령 선거에서였습니다. 선거에서 승리한 콜로라도당 후보 후안 구알베르토 곤잘레스(Juan Gualberto González)는 파트리시오 에스코바르에 이어 다음 임기를 이어나갈 예정이었는데요. 하지만 자유당은 선거가 콜로라도당의 사기와 부정 부패로 이뤄졌다고 주장하며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또 자유당 출신 빅터 솔러가 사전 협의에 따라 부통령직 자리를 맡아야 했음에도 거절당하자, 콜로라도 당을 향한 자유당 내부의 불만은 높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1891년 10월 18일 늦은 저녁, 몇몇 자유당 당원들이 파라과이 수도 아순시온에서 무장봉기를 일으키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이들은 거리를 다니던 전차를 탈취한 뒤 군사 학교로 침입해 여러 군 장교 및 군인들을 살해했습니다. 콜로라도 정권의 군사 핵심 장소를 공격해 무력화시킨 뒤,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고자 하는 계획을 실행에 옮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습적으로 벌어진 이 작전은 곧바로 대응한 경찰과 군 병력에 의해 저지되고 맙니다. 약 150명의 자유 당원들이 체포되어 구금당했고, 자유당이 일으킨 ‘혁명' 혹은 ‘쿠데타'는 실패로 끝나고 맙니다. 콜로라도 세력은 자유당의 공격을 대대적으로 비판했고, 이후 10년 넘게 지배 정당으로 정권을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남은 자유당 세력은 콜로라도 당에 대한 비판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1904년 혁명'  (La revolución liberal de 1904)에 성공하면서 이후 1940년까지 이어지는 '자유당 시대'의 역사를 이어나가게 됩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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