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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Oct 17. 2022

콜롬비아에서 벌어진 '1000일 전쟁' 이야기


1899년 10월 17일. 콜롬비아에서는 이른바 ‘1000일 전쟁’ (Guerra de los Mil Días)이 시작됩니다. 콜롬비아의 위대한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즈가 쓴 백 년의 고독에도 배경으로 언급된 이 전쟁은 콜롬비아에서 벌어진 최악의 내전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오늘은 1902년 11월까지 이어졌던 바로 이 ‘1000일 전쟁'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먼저 이 전쟁은 콜롬비아 자유당과 보수당 사이에 벌어진 갈등으로 인해 벌어졌습니다. 배경을 살펴보면, 콜롬비아는 독립 이후 자유 무역을 외친 커피 농장주 세력의 자유당과 교회 세력을 기반으로 한 보수당이 충돌하며 많은 내전을 겪었습니다. 또 이들은 단순히 정치 이념뿐만 아니라 국가 정치 시스템에 있어서도 강력한 중앙 정부를 원했던 보수 세력, 각 주가 자치성을 갖는 연방제도를 원했던 진보 세력이 대립하며 갈등을 이어나갔습니다.


끊임없이 싸우던 두 세력은 1898년 선거를 기점으로 관계가 더욱 악화됩니다. 선거에서 승리한 보수당 출신 산클레멘테 대통령은 갑자기 악화된 건강을 이유로 부통령 마로킨에게 잠시 자리를 물려줬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부통령 마로킨마저 사임을 결정하자, 자유당 측은 새로운 선거를 요구했습니다. 보수당이 지배적이던 의회는 이를 즉시 기각했고, 자유당 내부 급진주의자들은 전쟁을 일으키기로 결정합니다.


산탄데르 주 소코로에서 처음 시작된 이 전쟁은 사실 자유당 내부에서도 우려가 많았습니다. 자유당 내 평화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군사 세력이 압도적이지 않은 점과 전쟁 과정에서 나오게 될 많은 사상자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파올로 비야르가 이끄는 급진 세력은 전쟁을 밀어붙였고, 결과적으로 3년 동안 이어진 전쟁으로 십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게 됩니다.


전쟁은 1902년 니어란디아 조약 (Treaties of Neerlandia)을 맺으며 멈추게 됩니다. 결과적으로만 봤을 때 전쟁의 결과는 보수당의 승리로 끝난 듯 보였습니다. 자유당은 페랄론소, 팔로네그로 전투에서 크게 패배했고 보수당이 제안한 평화 조약 문서에 서명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쟁 과정에서 소규모 게릴라 전투가 벌어지며 보수당 또한 많은 피해를 입었고, 만약 전쟁이 장기전으로 이어졌다면 보수당에서 더욱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건 뻔한 일이었습니다. 결국 평화 협정 이후 보수당이 30년 동안 정권을 장악하긴 했지만, 전쟁은 양측 모두 피해가 컸던 '승자 없는 비극적인 내전'으로 기록됩니다.



(**카톡 오류로 인해 10월 15일, 16일 글은 추후에 기회가 되면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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