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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Oct 20. 2022

과테말라에 찾아왔던 '10년 동안의 평화' 이야기


역사가들은 과테말라 정치 역사에서 가장 평화로운 순간으로 1944년에서 1954년 사이를 꼽습니다. 과테말라 사람들은 ‘평화의 10년’, ‘황금시대'라 말하며 이 순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건, 1944년 10월 20일 벌어졌던 과테말라 혁명이 성공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이었습니다.


1944년 이전의 과테말라 역사는 ‘독재의 시대’나 다름없었습니다. 1898년 집권했던 마누엘 에스트라다 카브레라는 무려 22년 동안 대통령 자리를 유지했고, 미국 유나이티드 프루츠 컴퍼니에게 많은 경제적 특권을 주는 대신 노동자들이 처했던 열악한 상황은 무시해 많은 원성을 샀습니다. 또 1931년부터 13년 동안 과테말라를 통치했던 호르헤 우비코는 미국 기업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한편, 원주민들에게는 땅을 빼앗는 등 차별적인 정책을 펼쳤습니다. 자신 스스로를 히틀러나 무솔리니와 비교할 만큼, 파시스트적인 성향을 공개적으로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1944년. 과테말라에서는 우비코 정권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했고, 그는 같은 해 7월 페데리코 바이데스를 비롯한 아리다, 피네사에게 대통령 자리를 넘겨주며 사임하게 됩니다. 세 명이 나라를 통치하는 군부 삼두 정치 체제는 곧 민주적인 대통령 선거를 시행할 것을 약속했으나 이를 어겼고, 결국 군부, 학생, 노동자들로 이뤄진 혁명 연합은 10월 20일 새벽 다시 한번 전투를 벌여 군사 정부의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군사 정권이 물러난 뒤, 과테말라 국민들은 10월 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주역 후안 호세 아레발로를 새로운 대통령으로 선출했습니다. 많은 기대를 받았던 만큼 아레발로는 여러 사회 개혁 정책을 실시했고, 특히 문맹 퇴치 캠페인을 통해 교육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급진적인 이념보다는 온건한 사회민주주의 시스템을 받아들이면서, 점진적인 절차를 통해 과테말라의 변화를 가져온 인물이었습니다.


총 스무 번이 넘는 쿠데타 시도에도 살아남은 아레발로는 1951년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혁명을 이끌었던 또 다른 지도자 하코보 아르벤스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차기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그는 토지 개혁 정책을 통해 빈곤에 시달리는 농업 노동자들에게 땅을 재분배했고, 법령 900호를 통해 유나이티드 프루츠 컴퍼니가 확보할 수 있는 땅을 제한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미국 기업의 심기를 건드리게 됐고, 결국 1954년 미국의 지원을 받은 쿠데타가 일어나며 과테말라의 평화로운 민주주의 시대는 10년을 넘기지 못하고 막을 내리게 됩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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