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티너리 Oct 25. 2022

그레나다에서 매년 추수감사절을 보내게 된 이유


카리브 바다에는 그레나다라는 조그만 섬나라가 있습니다. 아래로는 베네수엘라와 트리니다드토바고, 그리고 위쪽으로는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이 있는 곳에 위치해있는데요. 영국 식민 지배를 받아 영어를 공용어로 쓰지만, 프랑스 지배 아래 있었던 적도 있어 프랑스어 크레올어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레나다 문화 중 한 가지 흥미로운 건 미국에서 지내는 추수감사절 (Thanksgiving Day)을 똑같이 기념한다는 점입니다. 그레나다가 미국처럼 영어를 쓰긴 하지만, 영국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조금 의아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다만 그레나다에서는 매년 10월 25일을 추수감사절이자 국가 공휴일로 정하고 있어 매년 11월 네 번째 목요일 추수감사절을 지내는 미국과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그레나다 역사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레나다 추수감사절이 생겨난 이유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1974년에서야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그레나다는 이후 정당들과의 세력 다툼, 그리고 사회주의에 기반한 혁명 운동이 일어나며 정치적으로 불안해지게 됩니다. 특히 그레나다 혁명이 일어나는 동안 쿠바 정부가 군사적 지원을 해주는 등 그레나다 정치에 깊게 개입하면서 미국 레이건 정부의 눈에 띄게 됩니다.


1983년. 그레나다의 정치 불안 사태는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됐습니다. 그러자 미국은 동부 카리브 국가 기구 (Organisation of Eastern Caribbean States)의 지원 요청, 미주기구(O.A.S.) 헌장 28조에 언급된 "평화를 위협할 수 있는 상황"을 근거로 군사 개입을 시작했습니다. 베트남 전쟁 이후 첫 군사 작전이었던 그레나다 군사 개입은 1983년 10월 25일 공군과 해군의 공습을 시작으로 상륙 작전이 이뤄졌고, 약 7천 명이 넘는 군사력을 바탕으로 단 4일 만에 침공 작전을 끝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그레나다에선 이전 민주 정부가 회복됐고, 혁명당을 지원했던 쿠바 군대는 수 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피해를 입은 뒤 그레나다를 떠나게 됩니다.


한편 전쟁 이후 그레나다에 머물던 미국 군인들은 지역 주민들에게 추수감사절과 그 의미에 대해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러자 주민들은 그레나다에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준 감사의 표시로 조촐하게나마 추수감사절을 준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들은 완벽하진 않았디만 칠면조, 감자 요리를 만들었고, 미국 군인들이 그레나다에서 추수 감사절을 갖도록 그들을 초대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는 추수 감사절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지만 적어도 그것이 당신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우리에게 추수 감사절은 당신이 온 날이라는 것을 알기를 바랍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후 그레나다 정부는 미군이 개입을 시작한 10월 25일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이 날을 추수감사절로 정하게 됩니다. 결국 그레나다의 추수감사절은 이름만 같을 뿐, 의미와 유래도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레나다는 국가 공휴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할 만큼 미국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미국의 군사 개입은 좋지 않게 끝난 여러 중남미 국가와는 조금 다른 역사적 케이스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루과이의 첫 대통령은 누구였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