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티너리 Oct 24. 2022

우루과이의 첫 대통령은 누구였을까?


300년 가까이 스페인 지배를 받은 우루과이는 다른 남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1800년대 초부터 독립운동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웃 국가인 브라질에게 잠시 통치당하며 독립이 미뤄지게 됐고, 1828년이 돼서야 주권을 가진 국가로서 완벽한 독립을 이루게 됩니다.


국가를 건설해가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일은 정부를 꾸리는 일이었습니다. 많은 독립 영웅들이 대통령 후보로 거론됐지만, 역대 최초 대통령 자리는 호세 프룩투오소 리베라 (José Fructuoso Rivera)가 맡게 됐습니다. 1830년 10월 24일. 우루과이 의회는 리베라를 대통령으로 선출했음을 공식 발표했고, 이후 그는 1834년까지 총 4년 동안 임기를 맡게 됩니다.


집권 초기, 리베라 정부는 그의 강력한 라이벌인 라바예하 (Lavalleja)와의 경쟁 구도로 정치적 혼란에 휩싸이게 됩니다. 라바예하는 그와 초대 대통령직을 두고 대결했던 인물로, 패배 이후에도 여러 번 반란을 시도한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리베라는 경험 많은 군인이자 정치인답게 많은 위협을 이겨냈고, 정권을 유지하며 자신의 정치 세력을 확대해 나갔습니다.


리베라는 자신의 대통령 임기가 끝난 뒤에도 우루과이 정치에 깊게 관여했습니다. 정치적 영향력이 컸던 리베라는 자신이 지지해 대통령 자리에 오른 2대 대통령 마누엘 오리베 (Manuel Oribe)와 충돌하며 내전을 벌이게 됩니다. 1838년 10월 리베라는 오리베를 무찌른 뒤 그를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망명 보냈고, 3대 대통령으로 다시 한번 취임하게 됩니다. 양측이 충돌하는 동안 리베라의 지지자들은 빨간색 완장을, 오리베의 지지자들은 흰색을 완장을 차면서, 훗날 우루과이 대표 정당이 되는 콜로라도 (Colorado)와 블랑코스(Blancos) 파벌이 처음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1840년대에 이르러서도 리베라는 여러 번 내전에 휘말렸고, 전투에서의 승리, 패배, 망명과 복직을 여러 번 반복하다 1854년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가 대통령직을 맡는 동안 한 가지 저지른 실수가 있다면 바로 살시푸에데스 학살 (Masacre de Salsipuedes)을 저질러 차루아족을 말살시킨 것이었습니다. 1831년. 우루과이 차루아족과 완만한 관계를 유지했던 리베라는 백인들의 세력을 확고히 하기 위해 살시푸에데스 캠페인을 기획했고,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차루아족 사람들은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콜롬비아의 또 다른 마약왕 오토니엘의 최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