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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Nov 18. 2022

파나마가 미국에게 '파나마 운하'를 건네준 이유


1903년 11월 18일. 파나마에서는 역사를 바꾼 중요한 조약 하나가 맺어집니다. 이른바 ‘헤이-뷔노 바리야 조약’ (Hay–Bunau-Varilla Treaty)에서 파나마는 미국이 자신의 영토에 속한 파나마 운하를 통치하도록 허용한 것입니다. 그 대가로 파나마는 천만 달러의 즉각적인 보상금과 함께 1912년부턴 매년 25만 달러를 추가로 받게 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한 국가가 다른 나라에게 영토의 일부를 내어주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아무리 상대가 우방국이라 할지라도, 영토를 내어주는 건 주권을 침해하는 심각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900년대 초 파나마는 주권을 걱정하기보다는 콜롬비아로부터의 독립이 더 절실한 상황이었습니다. 미국은 콜롬비아 영토에 속했던 파나마 운하 건설과 운영을 맡겠다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했고, 다음 전략으로 파나마 독립을 도운 뒤 파나마 운하를 손에 얻으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미국은 콜롬비아가 ‘천일 전쟁' (1899-1902)으로 정신이 없는 틈을 타 파나마를 지원했습니다. 1903년 11월 3일 파나마는 콜롬비아로부터 독립한 신생 국가임을 선언했고, 2주 뒤엔 ‘헤이-뷔노 바리야 조약’을 맺어 미국에세 파나마 운하 운영권을 내어주게 됩니다. 미국은 그토록 원하던 파나마 운하를 얻었고, 파나마는 초기 국가 건설에 필요한 금전과 미국의 군사적 보호를 받았기에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조약이었습니다.

미국 측 대표 존 헤이와 프랑스 출신 파나마 측 필립 쟌 뷔노 바리야 이름을 따 붙여진 이 조약은 총 34개 항목으로 구성됐습니다. 제1항과 2항에는 파나마의 자유를 보장하고 미국의 파나마 운하 건설과 독점 운영에 동의한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었고, 이후에는 선박들의 세금 문제나 “필요할 경우 언제든 미군 함대가 파나마 운하 보호를 위해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라는 내용도 담겨있었습니다.


조약이 맺어질 당시까지만 해도 파나마 국민들은 내용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미국에 유리한 내용이 많다는 걸 깨달았고, 특히 주권 침해 문제에 대해 불만을 갖게 됩니다. 파나마 운하 반환 문제는 1960년대부터 조금씩 언급되기 시작했고, 오랜 시간이 걸린 1999년 12월 31일에야 미국은 파나마에게 운영권을 넘겨주게 됩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 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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