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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Nov 20. 2022

'멕시코 혁명'이 일어났던 결정적 이유


멕시코에서는 매년 11월 두 개의 중요한 날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11월 1월과 2일에 있는 ‘망자의 날', 그리고 두 번째는 11월 20일에 있는 ‘혁명의 날’입니다. 1910년부터 십 년 동안 이어진 멕시코 혁명은 20세기 초 멕시코 정치와 사회를 뒤바꾼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멕시코 혁명이 시작된 계기는 30년 동안 이어졌던 포르피리오 디아즈의 독재로 볼 수 있습니다. 디아즈는 임기 기간 동안 연임, 중임을 허용하는 헌법 개정을 두 번이나 진행하며 사실상 멕시코의 왕으로 군림했고, 멕시코 정치계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그의 횡포가 계속되자 프란시스코 마데로라는 정치인이 나서 디아즈의 독재에 반대 목소리를 냈고, 1910년 대통령 선거에 나서 디아즈 시대를 끝내고자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마데로는 선거에서 패배했고, 미국으로 망명을 떠나게 됩니다. 하지만 미국에 머무는 동안에도 그는 디아즈에 반대하는 세력을 결집시켰고, ‘민주주의 재수립’과 ‘무제한 대통령 임기 폐지’ 내용이 담긴 산루이스포토시 계획 (Plan de San Luis Potosí)을 선포해 본격적인 멕시코 혁명을 이끌었습니다. 멕시코 북부에서 시작된 혁명은 판초 비야, 사파타 같은 역사적 인물들이 이끌며 더욱 거세졌고, 마데로는 1911년 11월 디아즈를 몰아내고 새 멕시코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혁명에 참여했던 소작농들이 마데로에게 바란 건 ‘토지 개혁'이었습니다. 디아즈는 대농장 주주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며 소작농이 갖고 있던 땅을 빼앗았고, 여기에 원주민까지 야만인으로 취급하며 힘없는 자들을 억업했습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소작농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길 바랬지만, 정작 크리오요 출신이었던 마데로는 이들의 상황에 공감하지 못하며 개혁을 외면하게 됩니다. 결국 혁명이 미진하게 끝날 분위기로 흘러가자 소작농들을 대표했던 판초 비야와 사파타는 또 다른 반란을 일으켰고, 혁명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 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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