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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Dec 13. 2018

군사정권을 대하는 아르헨티나의 자세



1983년 12월 13일, 군사 정권을 몰아내고 민주주의 절차를 통해 당선된 아르헨티나의 라울 알폰신 (Raul Alfonsin)은 대통령의 권한으로 특별법을 발휘했습니다. 


그는 아르헨티나의 실추된 민주주의의 가치를 회복시키기 위해 1976부터 1983년까지 활동했던 군 관련자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는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이에 따라 법령 157/83호에는 "군사 정권에 연루된 책임자들에게 죄를 선고해야 할 필요성"이 명시되었으며, 쿠데타를 일으켜 민주 정부를 전복시킨 반란죄를 묻는 법이 통과되었다.



암흑기


이웃나라 칠레가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군사정권 손에 넘어갔듯이 1976년 아르헨티나 또한 비델라가 이끄는 쿠데타로 군사정권이 집권하게 됩니다. 바로 아르헨티나 민주주의의 암흑기가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군부정권은 집권하자마자 선동죄를 이유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정치인들을 강제로 추방시키거나 살해했습니다. 또 진보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예술인, 학생, 시민사회 활동가들을 몰래 납치해 고문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범죄의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납치된 자들을 헬기에 싣고 바닷속에 그들을 강제로 빠뜨렸습니다. 이렇게 목숨을 잃거나 실종된 아르헨티나 시민만 무려 30,000여 명이었으며, 이들은 단지 다른 정치 이념을 가지고 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희생당해야만 했습니다. 



민주주의를 회복시키려는 노력들


알폰신 대통령의 특별법은 다시 회복된 아르헨티나 민주주의에 상징하는 바가 컸습니다. 알폰신 대통령은 군 당국과 확실히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고, 군 관계자들을 처벌하길 원하는 아르헨티나 시민들의 요구를 적극 반영했습니다. 이에 따라 아르헨티나는 군사 정권을 경험했던 다른 중남미 국가들보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군부 독재의 책임을 묻는데 앞장서게 됩니다. 


3월 24일, 오벨리스크 앞 행진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들이 적극 발휘되어 처벌을 가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바로 앞선 글에서 소개했던 엘살바도르의 '엘 소모테' 사건 책임자들이 그러했듯이, 군 관계자들은 법의 그물을 교묘히 피해 가며 자신들이 받아야 할 법적 책임을 회피했기 때문입니다. 


한편 아르헨티나에선 정부 이외에도 많은 시민사회들이 조직됐고, 지속적인 목소리를 내며 군 관계자들의 책임을 물었습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쿠데타가 일어난 3월 24일을 "진실과 정의를 기억하는 날" (Day of Remembrance for Truth and Justice)이라는 이름의 공휴일로 지정했습니다. 실제로 이날이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도시 곳곳을 행진하며 그날의 아픔을 추모하고, '다시는 아르헨티나에 군부 독재가 부활하지 않도록!', '30,000명을 기억하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그날의 아픔을 기억하고 추모하고 있습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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