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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Dec 19. 2018

아르헨티나 판 '국가 부도의 날'


2001년 12월 19일, 경제 위기로 국민들이 폭동을 일으키자 아르헨티나 정부는 이를 제압하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했습니다. 당시 아르헨티나 정부는 국민들의 폭동이 국가적 위기를 초래하는 위협으로 판단했고, 계엄령이라는 최후의 카드를 꺼내 사회 질서를 유지할 것임을 밝혔습니다.  


아르헨티나를 소용돌이로 빠뜨린 경제 위기의 원인은 과한 재정 적자였습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경제 위기를 막기 위해 공공 기업의 민영화까지 진행했지만 효과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실업률은 20%까지 도달했고, 생산성까지 감소하며 1999년에는 GDP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게 됩니다. 여기에 외채는 더 이상 갚을 수 없는 지점까지 도달하면서 결국 아르헨티나는 국제통화기금 (IMF)에 구제 신청을 하게 됩니다.


2001년 아르헨티나 경제위기 당시 거리 시위의 모습 (actorpolitico.com)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의 분노를 산 코랄리토 (Corralito)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코랄리토는 스페인어로 펜스를 의미하는데, 말 그대로 정부는 모든 은행 거래를 중지하고 돈을 뽑지 못하게 펜스를 친 상황을 묘사한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돈을 은행에서 더 이상 돈을 찾지 못하자 크게 분노했고, 이는 곧바로 대규모 폭동이 벌어지는 도화선으로 작용했습니다. 


분노한 수 만 명의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모두 다 떠나라! (Que se vayan todos!)를 외치며 정부를 비난했습니다. 몇몇 과격주의자들은 상점의 유리창을 부수고 안에 있는 모든 물건들을 약탈하기까지 했습니다. 12월 19일 계엄령이 선포됐음에도 국민들의 격렬한 시위는 이틀 동안 계속됐고, 이로 인해 약 22명의 사망자와 수백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게 됩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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