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축구 경기장 근처에 살면 생기는 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by 라티너리


아르헨티나와 축구


아르헨티나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주제가 있다.


바로 축구다.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만 무려 12개의 프로 축구 팀이 있으며 (서울에는 FC서울 한 팀..?), 아마추어 팀까지 합하면 그 수는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많다. 또한 20세기 축구 세계를 지배한 마라도나, 그리고 21세기 축구를 지배하고 있는 메시가 아르헨티나 출신이다. 한마디로, 축구와 아르헨티나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엎어지면 코닿는 곳, 모누멘탈 경기장


내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자취를 했던 셰어하우스는 도시 북쪽 벨그라노라는 동네에 위치해 있었다. 시끌벅쩍한 센트로에서 버스를 타고 약 45분 정도 떨어져있고, 주위에 공원들이 많아 여유가 넘치고 한적한 동네였다. 내가 이 벨그라노 동네에 셰어하우스를 구한 가장 큰 이유는, 가까운 학교와의 거리였다. 셰어하우스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약 10분! 매일 버스를 타고 다니기 귀찮던 나는, 학교에서 최대한 가까운거리에 있는 셰어하우스에서 살기로 결정한 것이다.



IMG_2974.JPG 학교에서 바라본 모누멘탈 경기장의 모습


그런데, 셰어하우스에서 가까운 건 단지 학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학교로 가는 길 도중에는 아르헨티나에서 유명한 축구 클럽 리버플레이트의 연고지 '모누멘탈' (정식 명칭은 Estadio Monumental Antonio Vespucio Liberti)이 위치해 있었다. 사실상 매일 이 거대한 경기장 근처를 지나갈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아르헨티나의 축구 문화를 가까이서 접할 수 있었다.



IMG_8541.JPG 리버플레이트 경기를 보러가는 아빠와 아들


리버플레이트의 홈구장 모누멘탈에서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면, 내가 살던 집 근처 동네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가장 먼저 볼 수 있었던 건 '리버플레이트' 유니폼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거리에 눈에 띄게 많아진다는 점이었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동네의 차분한 분위기는 사라지고 축제를 즐기는 분위기로 바뀐다. 사람들이 모여 리버플레이트 응원가를 부르는 모습이나, 가족들이 함께 경기를 보러 가는 경우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또한 거리에는 극심한 교통 체증이 시작된다. 모누멘탈 근처를 지나는 버스는 경기를 보러오는 사람들을 가득 실은채 거리를 지나고, 벨그라노 지하철역도 많은 사람들로 붐비게 된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모누멘탈에서 경기가 있는 날마다 경기장 주변 상점의 술 판매가 금지 된다는 것이다. 조그만 구멍가게나 대형마트에서는 술 판매 섹션을 천막으로 가린채,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므로 술 판매를 금지합니다'라는 문구를 써놓는다. 이는 워낙 극성맞은 아르헨티나 축구팬들의 돌발 행동을 막기 위해 술판매를 금지하는 법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기억에 남는 경기: (1) 아르헨티나 vs. 칠레


모누멘탈에서 열렸던 축구 경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 두 가지가 있다.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국가대표 경기, 그리고 남미 최대의 라이벌 클럽 리버플레이트와 보카주니어스의 경기였다.


모누멘탈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가장 시설이 좋은 경기장으로 꼽히기 때문에, 이곳에서 국가대표 경기가 많이 열리곤 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남미지역 예선전 경기 또한 거의 이 모누멘탈 경기장에서 열리렸다. 그리고 2017년 3월 27일, 내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산지 한달이 채 안됬을때 아르헨티나는 라이벌 칠레와의 중요한 일전을 앞두고 있었다. 이미 2015년 열렸던 코파아메리카 대회 결승전에서 칠레에 패배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던 뼈아픈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아르헨티나는 이 날 경기에서 복수를 하기 위해 벼르고있었다.


IMG_2963.JPG 아르헨티나 vs. 칠레 경기를 보기 위한 아르헨티나 팬들


이날 경기에는 약 55,000여명의 관중이 아르헨티나의 승리를 위해 경기장을 찾았다. 이들은 경기 시작 전부터 응원가를 부르며 분위기를 한껏 고조 시켰고, 경기장 주변 분위기를 축제 분위기로 만들었다. 사람들의 열띤 응원 덕분인지, 경기는 메시의 페널티킥 골로 아르헨티나가 1:0으로 승리를 했다. 경기가 끝난 뒤 분위기는 더욱 더 뜨거워졌고, 집에서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그날 경기에 대해 이야기하며 걸어가는 소리를 밤늦게 까지 들을 수 있었다.


기억에 남는 경기: (2) 리버플레이트 vs. 보카주니어스


IMG_0335.JPG 아침부터 리버플레이트를 응원하는 팬들


내가 잊을 수 없는 두번째 경기는 영원한 라이벌 리버 플레이트와 보카 주니어스 간의 경기였다. 두팀간의 경기는 이른바 아르헨티나의 '엘 클라시코'라고 불릴만큼 유명한 라이벌 매치다. 아르헨티나의 극성 축구 팬들의 돌발 행동에 대비해, 모누멘탈 경기장 주변에는 항상 경찰들이 배치되곤 하는데, 라이벌 보카 주니어스와 경기가 있는 날에는 동네에 특히 더 삼엄한 경비가 깔린다. 과거에는 경기가 끝나고 난뒤 양팀 서포터들의 무혈 충돌로 사람들이 죽는 사건까지 발생했기 때문에, 보카주니어스와 리버플레이트 팬들은 상대팀 경기장으로 원정 응원을 갈 수 없는 규칙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IMG_0343.JPG 경기장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


이 날 경기는 오후 5시에 예정 되었지만, 리버플레이트 팬들은 일찌감치 경기장 주변에 모여 자신의 팀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정오가 지나고 나자 사람들의 숫자는 점점 더 많아지기 시작했고, 거리에는 리버플레이트를 상징하는 빨강/하얀색들만 보일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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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껏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치뤄진 이 날 경기의 결과는, 원정팀 보카 주니어스의 승리로 끝이났다. 전반 38분 리버 플레이트 선수였던 이그나시오 페르난데스가 퇴장 당하면서 보카 주니어스가 경기의 주도권을 잡았고, 결국 두골을 몰아치며 2:1 승리를 거둔 것이다.


이날의 패배로 경기 시작전 보여주었던 열정적인 리버 플레이트 팬들의 열정적인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리버 플레이트가 승리해서 내심 축제 분위기가 이어지길 바랬지만, 그날 밤 집 주변은 다른날과 다르지 않게 조용히 지나갔다.


축구에 열정적인 사람들


아르헨티나 축구의 성지라 불리우는 모누멘탈 경기장 근처에서 살며,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어마어마한 축구 열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월드컵 직후, 아니면 국가 대표팀의 좋은 결과가 뒷받침 되어야만 '반짝 흥행'이 되는 우리나라의 K리그 와는 달리, 아르헨티나 축구 리그는 시즌 내내 사람들의 클럽에 대한 사랑과 축구에 대한 열정이 지속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관심과 열정이 '아르헨티나 출신 축구스타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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