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에 나는 중3이었다. 그해 우리학교에도야간 자율학습이 생겼다. 중3이 무슨 야자냐 싶겠지만 고입선발고사, 이른바 '연합고사'가 있던 시절이다. 그렇지만 종일 공부만 하기에 열 여섯은 스태미너가 넘쳤다. 수업이 끝나면 흙먼지 속에서 축구 한 두게임은 뛰어 주어야 비로소 숨을 고르며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렇게 눅진한 땀내를 말리던 어느 날, 1분단 창가 자리에 앉아 초저녁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이어폰에서 무한궤도의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가 나왔다. 무한궤도는 그 전년도 대학가요제에서 연주의 시작과 함께 "얘네가 대상"일 줄 알았던,전설의 명곡 <그대에게>의 주인공이었다.
장엄한 전주가 잦아들면 보컬 신해철은 이렇게 읖조린다.
흐린 창문 사이로 하얗게 별이 뜨던 그 교실
나는 기억해요 내 소년시절의 파랗던 꿈을
때마침 교실 창밖으로 별이 떠올라 있었다. 노을이 옅게 묻은 저녁 밤하늘과 흐린 창문, 교실, 별, 그리고 소년... 신해철은 자신의 회상 속에서 바로 이 순간을 노래하고 있었다. 그 놀라울 만한 일치에, 나는 노래 속으로 급히 빨려들어갔다.
노래는 삶의 의미를 물었다. 땀냄새 덩어리에게 아직 그런 고민은 생소했지만 노래가 전하려는 정서만큼은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정서는 감수성의 영역이니까. 그렇게 더듬더듬 화자의 이야기를 따라, 노래는 어느덧 죽음을 앞둔 생의 마지막 시점에 이르렀다.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때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나 지나간 세월에 후횐 없노라고
그 때나 지금이나 가요는 사랑타령이다. 하지만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에서 신해철은 차분히 삶과 죽음을 직시하고 있었다. 웅장한 전주는 노래의 주제를 암시하는서곡이다. <그대에게>의 시작이 그대를 향하는 힘의 발산을 보여줬다면,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의 전주에는 내 안으로 수렴하는 성찰의 묵직함이 담겼다.
그 때 신해철의 나이가 스물 둘이었다. 고작 스물 두 살 대학생이 '생이 끝나갈 때 너는 후회 없이 살았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고 노래하고 있었다. 해철이형은 인생을 너무 앞당겨 살았던 것일까. 형의 깊은 뜻을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아직 어렸지만 땀내와 감수성은 쩔었던 89년의 어느날이, 마치 '하늘과 야자와 별과 시'처럼 오래 오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