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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환 Feb 26. 2022

[노래공감] 무한궤도,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1989년에 나는 중3이었다. 그해 우리학교에도 야간 자율학습이 생겼다. 중3이 무슨 야자냐 싶겠지만 고입선발고사, 이른바 '연합고사'가 있던 시절이다. 그렇지만 종일 공부만 하기에 열 여섯은 스태미너가 넘쳤다. 수업이 끝나면 흙먼지 속에서 축구 한 두 게임은 뛰어 주어야 비로소 숨을 고르며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렇게 눅진한 땀내를 말리던 어느 날, 1분단 창가 자리에 앉아 초저녁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이어폰에서 무한궤도의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가 나왔다. 무한궤도는 그 전년도 대학가요제에서 연주의 시작과 함께 "얘네가 대상"일 줄 알았던, 전설의 명곡 <그대에게>의 주인공이었다.


 장엄한 전주가 잦아들면 보컬 신해철은 이렇게 읖조린다.


 흐린 창문 사이로 하얗게 별이 뜨던 그 교실

 나는 기억해요 내 소년시절의 파랗던 꿈을


 때마침 교실 창밖으로 별이 떠올라 있었다. 노을이 옅게 묻은 저녁 밤하늘과 흐린 창문, 교실, 별, 그리고 소년... 신해철은 자신의 회상 속에서 바로 이 순간을 노래하고 있었다. 그 놀라울 만한 일치에, 나는 노래 속으로 급히 빨려들어갔다.


 노래는 삶의 의미를 다. 땀냄새 덩어리에게 아직 그런 고민은 생소했지만 노래가 전하려는 정서만큼은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정서는 감수성의 영역이니까. 그렇게 더듬더듬 화자의 이야기를 따라, 노래는 어느덧 죽음을 앞둔 생의 마지막 시점에 이르렀다.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때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나 지나간 세월에 후횐 없노라고


 그 때나 지금이나 가요는 사랑타령이다. 하지만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에서 신해철은 차분히 삶과 죽음을 직시하고 있었다. 웅장한 전주는 노래의 주제를 암시하는 서곡이다. <그대에게>의 시작이 그대를 향하는 힘의 발산을 보여줬다면,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의 전주에는 내 안으로 수렴하는 성찰의 묵직함이 담겼다.


 그 때 신해철의 나이가 스물 둘이었다. 고작 스물 두 살 대학생이 '생이 끝나갈 때 너는 후회 없이 살았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고 노래하고 있었다. 해철이 형은 인생을 너무 앞당겨 살았던 것일까. 형의 깊은 뜻을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아직 어렸지만 땀내와 감수성은 쩔었던 89년의 어느 날이, 마치 '하늘과 야자와 별과 시'처럼 오래 오래 남았다.   






무한궤도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https://youtu.be/tQFbMlYoN2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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