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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환 Aug 18. 2022

[오늘의 私설] 노화의 직시, 삶의 윤곽을 그리는 일


 집에 돌아와 정리를 하는데 문득 거실 베란다 문이 열려 있었다. 들어올 때만 해도 분명히 닫겨 있었으내가 연 것이 맞다. 그런 아무리 생각하도 창을 밀어낸 기억이 나질 않았다.


 작년부터 손톱을 깎으려면 인상을 써야 했다. 노안이 온 것이다. 어릴 때 어머니는 나를 불러 바늘귀에 실을 꿰어달라 하셨다. 눈이 침침하다던 어머니의 말씀을 이제야 이해한다. '침침하다'니, 어쩌면 어감마저 그렇게 흐리고 답답한지.


 나이가 들면 신체와 인지능력에 변화가 온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안다'는 말은 쓰임새가 너무 넓어서, 그저 들은 것도 안다고 여기곤 했다. 노화는 그렇게 들어서만은 알 수가 없는 것이었. 거기에는 시야의 해상도가 떨어진다는 불편만이 아니라, 존재를 흔드는 탄식의 정서가 스며있었다.


 받아들여야 하나?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세월이 더디다고 멈춘 것은 아니듯, 세상이 흘러가는데 나 혼자 자리일 리 없다. 더러 나이에 비해 동안인 사람도 있겠지만 겉보기로 자신을 속이면 안 된다. '동안이세요'라는 말의 참뜻은 '늙으셨네요'다.


 마음 한 구석은 버티고 싶다. '받아들인다'는 말은 어쩐지 패배적이고 수동적으로 들린다. 그렇지 않다.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할 수 있는 용기야말로 나이듦의 정수이자, 꼰대로 굳지 않았다는 증거다. (線) 한계인 동시에 가능성이다. 자신의 윤곽선그릴 있다면 남은 물감으로도 충분히 멋을  더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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