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私설] "쌤, 철학을 왜 배워야 하죠?"
수강생 중에 진지한 녀석이 있어, 하루는 ‘철학은 대체 왜 배워야 하느냐’고 질문해 왔다. 오가다 던지는 질문이 아니었다. 무려 A4용지 절반 정도의 분량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왔는데, 요는 고도의 과학기술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플라톤의 이데아론처럼 허무맹랑(녀석의 표현에 따르면)한 이론에 머리를 싸매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나도 동감한다. 어디 그 옛날의 플라톤 뿐인가. 플라톤의 이데아론이 허무맹랑하다면 현대의 철학 이론들은 당최 무슨 소리를 하는지부터 모르겠다. 지난 달만 해도 프랑스의 철학자 자끄 라캉의 책, <세미나 11>을 펼치고서는 불과 두세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여 내가 한글을 떼기는 한 건지, 참담한 좌절과 자책을 맛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은 배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용에 대한 평가는 둘째치고, 적어도 철학은 생각의 범위를 확장시켜 주기 때문이다. 생각이란 근육과 같아서 늘 쓰는 정도에 머물면 그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가 없다. 무거운 바벨을 들어올려 이두박근을 키우듯이, 철학을 통해 골치를 앓아 봐야 생각의 근력을 키울 수 있는 것이다.
우선 철학은 수평적으로 생각의 폭을 넓혀 준다. 식사 메뉴가 하나 늘면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생각도 마찬가지다. 늘 머물던 생각의 공간에서 한 뼘 더 나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한결 여유롭게 사고의 마당을 거닐 수 있다. 선택과 운신의 범위가 넓은 상태, 그것을 '자유'라고 부른다. 즉 철학을 통해 우리는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나아가 철학은 생각을 수직적으로 끌어올려 준다. 수직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본질을 뽑아 낸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한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가 열 가지라면 두 사람이 공유하는 가치는 그보다는 적다. 사람이 점점 많아질수록 공유되는 가치의 수는 줄어들겠지만, 그러고도 끝내 남은 것이 바로 진, 선, 미와 같은 본질적 가치다. 철학은 그러한 상승 과정을 탐색한다. 그러므로 철학을 통해 우리는 좀 더 고귀한 인간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철학은 '공부'보다 '하기'로 받아들이라고 녀석에게 권하고 싶다. 그저 하나의 바벨로 여긴다면 철학을 대하는 마음도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그렇다면 플라톤의 허무맹랑함도 라캉의 난해함도 한 번쯤 들어올려볼 만한 가치가 있다. 바벨 자체의 유용성보다는 그것으로부터 확장되고 강화될 생각의 근육을, 자유와 고양됨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바벨에도 용도가 아주 없지는 않다. 개썰매를 타고 인류 최초로 남극을 정복했던 아문센은 중간중간 썰매를 끌던 개를 잡아 에너지를 얻었다. 그와 같이 플라톤의 주장도 열심히 들었다 내렸다 하는 중에, 때로는 거기서 현실을 개선하는 데에 제법 괜찮은 아이디어를 얻거나, 하다 못해 뭔가 있어 보일(?) 수도 있다. 이러나 저러나 철학을 배울 이유는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