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 난데없는 봉변을 당했다. 한참 자고 있는데 날카로운 소리에 번쩍 잠이 깼다. 얼떨떨하여 무슨 소리였는지도 모르겠다.
꿈이었나, 다시 잠을 청하는데 또 같은 소리가 어둠을 찢듯 울려댄다. 이건 절대 옆방이나 위아래에서 들리는 소리가 아니다.
불을 켜고 영문을 몰라 프런트에 전화를 걸었다. 무슨 소리가 들린다고 말하는 중에도 소리는 신경질적으로 반복되었다.
곧 사건의 전말이 밝혀졌다. 한 취객이 내 방을 자기 동행이 있는 방으로 알고 초인종을 눌러댔던 것이다.
그렇게 놀라 달아난 잠은 좀체 돌아오지 않았다.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났다. 평소보다 조금 늦은 편인 9시 반쯤에야 숙소를 나섰다.
어젯밤 배회했던 동성로 거리를 지나서 약전 골목으로 향한다. 같은 자리에서 찍은 사진으로 밤과 아침의 분위기를 비교해 본다.
약전 골목으로 들어섰다. 서울 제기동에 있는 약령시처럼 이곳에도 한약재를 파는 곳이 모여있다. 역사가 1658년부터라니, 유서가 꽤 깊다.
대구 약령시는 본래 대구읍성 안에 있었다. 그러다가 구한말, 성 안쪽으로 상권을 확대하려던 일본인들과 죽이 맞은 당시 대구군수 박중양이 1906년 성벽을 철거하자 1908년에 현재의 남성로(성이 있던 남쪽 길)로 이전했다. 대구 약령시에는 한국 근대사의 굴곡이 담겨 있는 셈이다.
대구에는 특색 있는 길이 많아 흥미롭다. 약령시 골목에 이어 오토바이 골목으로 들어선다. 이곳은 본래 하천이었는데, 1953년 복개공사가 이뤄진 후 오토바이 가게들이 들어섰다.
일부러 시장을 골라 걷는 건 아니다. 가급적 영남대로의 흔적을 따르는 중이다. 자료에 의하면, 대구를 가로지르는 영남대로는 지금의 약령시와 오토바이 골목, 원대오거리를 지나 팔달교를 향했다.
어제 산 찐빵으로 허기를 달래며 걷다가 원대 지하차도를 건너 아침을 먹을만한 식당을 발견했다. 굴국밥 전문점이다. 따끈한 굴국밥 한 그릇에 몸이 편안해졌다.
국밥도 좋았지만 반찬으로 나온 풋고추가 아주 싱싱하고 아삭했다. 아주머니께 물으니 창원에서 직거래해 오는 고추로, 가격은 다소 비싸지만 맛이 좋아 계속 손님들께 내놓는다고 하신다. 그 또한 주인장의 인심임에 틀림없다.
원대 오거리를 지나 팔달시장으로 향하는 길은 야트막한 건물들로 이어진 구시가의 느낌이 남아있다. 그 길의 끝에 팔달시장이 나타난다.
팔달시장 위로 대구지하철 3호선이 지나간다. 오전 햇살이 강했지만 철길이 만들어 놓은 그늘을 따라 편히 걸을 수 있었다.
이제 팔달교에 이르렀다. 팔달교는 영남대로와 대구를 잇는 진출입로의 하나로,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팔달진 나루터가 있던 곳이다.
팔달진 나루터를 소재로 삼은 시(詩)가 있다. 조선 초기의 문신 서거정은 대구의 10가지 모습으로 대구십영(大丘十詠)을 읊었는데, 그중 제 8영이 팔달진에서의 이별 풍경을 노래한 '노원송객(櫓院送客)'이다.
官道年年柳色靑
관도(영남대로)는 해마다 버들잎이 푸르고
短亭無數接長亭
주막은 무수히도 늘어서 있구나
唱盡陽關各分散
이별 노래 다한 후에 뿔뿔이 헤어지니
沙頭只臥雙白據
술병들만 쌍을 이뤄 모래밭을 뒹구네
왼쪽은 팔달교의 사진이다. 오른쪽은 옛 사람들이 이별의 노래를 불렀던, 팔달진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강변이다.
팔달교를 넘어서자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학교, 병원 등 신도시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곳은 팔거천을 끼고 개발되어 대구 시내와는 독립된 주거공간의 분위기가 짙다. 현재는 행정구역상 대구광역시 북구지만 과거에는 경상북도 칠곡군이었다.
그 길의 초입에서 처음 보는 대학과 마주쳤다. '드론 조종자 과정'이 있다 하여 호기심이 일었다. 건물 하나로 된 대학인 줄 알았으나, 이후 구미에서 같은 이름의 대학 캠퍼스를 만났다. 이곳은 일종의 대학 별관인 셈으로, 정식 명칭은 '경운대학교 대구교육관'이다.
대학 홍보물을 살펴본다. 이러한 지방 사립대에서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의 '자율개선대학' 선정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자율개선' 바로 아래 등급인 '역량강화'부터는 정원이 감축되고 정부 지원금 또한 제한되기 때문이다.
지도를 확인하면서 가급적 직선으로 경로를 잡아 북상한다. 대구 지하철 3호선 태전역 아래를 지난다.
흔히 대구에는 미녀가 많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금호강을 건너 칠곡으로 향하는 이 동네에 미녀가 많다고 느꼈다. 물론 확인되지 않을, 개인적인 느낌이다.
점심때가 되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한치 짬뽕'을 한다는 집이 있어 들어섰다. 하지만 지금은 메뉴에 없었다. 대신 차돌박이 짬뽕을 주문했다.
이번 여행 3대 맛집 중의 두 번째가 바로 이곳이다. 국물맛이 깊으면서도 고소했다. 한두 점 구색만 갖춘 게 아니라 차돌박이가 듬뿍 들어갔고 다른 재료들도 넉넉하다. 가격은 일반 짬뽕보다 다소 높은 9천 원이지만 그만한 가치를 하는 맛이었다.
계산을 하면서 잘 먹었다는 인사를 드렸다. 서빙을 보는 분은 아마도 주인집 따님인 듯한데, 이 분도 상당한 미인이었다. 국물을 직접 내시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차돌박이 짬뽕은 느끼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은 걸 자부심으로 삼고 계셨다. 그러다 잠깐 나의 여행 얘기가 나왔다.
무슨 일인가 싶었는지 주방에서 어머니로 보이는 분이 나오신다. 부산에서부터 먹어 온 음식 중 제일 맛있었다고 하자 "영광입니다" 하신다. 쑥스럽고 무안하다. 다음에 꼭 다시 와 보고 싶다는 인사를 남기면서 식당을 나섰다.
맛있는 음식, 짧지만 유쾌했던 교류로 기분이 좋아졌다. 아이스크림으로 입가심을 하며 계속 걷는다. 길은 칠곡 네거리를 지나 점차 대구의 끝자락을 향한다.
길의 중간중간에 병원과 요양병원들이 자주 보인다. 지방의 주거 중심 동네에 나타나는 특색이라 하겠다.
칠곡 성당과 칠곡 향교를 지난다. 이제 거의 대구의 끝까지 올라왔다.
드디어 대구광역시를 벗어난다. 여기부터는 경상북도 칠곡군이다.
지금껏 걸어왔던 경북대로지만 칠곡군으로 들어서자 갑자기 분위기가 달라졌다. 우선 화물차 통행량이 많아졌다. 길가로는 타이어 판매 업체나 중고 자동차, 각종 설비 업체들이 늘어서 있다.
상용차 통행이 많은 건조한 도로, 한낮의 햇볕, 어수선한 도로변을 지나면서 급격히 피로감이 몰려왔다.
실은 아까 팔달교를 건널 때부터 조짐이 있었다. 왜 이리 피곤한가 되짚어봤더니 원인은 간밤의 그 초인종 사건이다. 지난밤 잠을 제대로 못 잔 것이 오후의 피로감으로 돌아온 것이다.
도저히 더 이상 걸을 수가 없다. 결국 길가에 보이는 버스 정류장 벤치에 벌렁 드러누워버렸다. 모자를 뒤집어쓰고 팔짱을 낀 채 눈을 감는다. 그 상태로 십여 분 잠이 들었다.
잠깐 눈을 붙였을 뿐인데 한결 개운하다. 초코바를 하나 먹고, 물을 마시고, 다시 채비를 갖춰 길을 떠난다.
오늘의 목적지는 칠곡군 가산리의 모텔이다. 가는 길에 '다부동 전적 기념관'이 있어 들러 보고는 싶지만 시간상 무리다. 국도변은 해가 지면 오래 걸을 수가 없다. 시간은 3시를 지나고 있는데 5시 반이면 길은 이미 어둡다. 숙소까지는 12km가 남았다.
국도를 따라 걷더라도 크게 돌아가지 않는다면 가급적 지방도나 일반 도로를 택한다. 이 날도 5번국도(이 근방에서는 '경북대로'라 부른다) 중간중간 옆으로 빠져 사람들의 흔적이 더 많은 길을 짚었다. 대구시 인근이라 그런지 소규모 공장들이 많이 보였다.
마을의 끝자락, 여기부터는 선택의 여지없이 국도를 따라 걷는다. 대구를 벗어나 칠곡으로 이어지는 5번 국도 구간은 영남대로와 거의 일치한다.
오늘 일정을 마치려면 고갯길인 '소야고개'를 넘어야 한다. 어제 대구로 향하는 길에 넘어야 했던 산등성이들처럼, 오늘도 저 멀리로 능선들이 겹겹이 넘실댄다.
산 사이로 난 길이라 평지보다 빨리 해가 진다. 건너편으로 조금씩 산드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이 부근이 산지라는 건 고라니들이 근처 논밭을 뛰어다니는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녀석들은 나와 꽤 멀리 떨어져 있었음에도 인기척을 느꼈는지 빠르게 달아났다.
노란 원 안으로 펄쩍펄쩍 뛰어가는 두 마리 고라니가 보인다. 화살표는 이들이 뛰는 방향이다.
재빠르게 도망가던 고라니 사진을 찍은지 채 5분도 안되어 저 앞에 낯선 파란색 마대자루가 눈에 띄었다.
도로변을 걷다 동물의 사체를 만나는 건 상당한 스트레스다. 그러다 보니 저 앞에 사체로 추정되는 물체가 있는지, 늘 탐지하며 걷게 되었다. 만약 '그렇다'는 판단이 서면, 그때부터 눈의 초점을 흐리거나 최소한의 시선만 주면서 현장을 벗어나기 위해서다.
처음에 파란색 마대자루는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자 자루 바깥으로 두 개의 발굽을 가진 다리가 삐죽 나와 있다. 필경 고라니다. 놀랄 정도는 아니었으나 상상력을 자극했다. 도시에 살다 보면 한 번 보기도 어려운 고라니가 여기에는 이토록 흔하다.
소야고개를 향해 길은 조금씩 경사를 높여 간다. 도로 왼편으로 '굿당' 간판이 보였다. 전문적으로 굿을 벌이는 곳이다. 전국 곳곳에 있다는 얘기는 들었으나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다.
체력과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한 번 들러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굿판 중에 부정탄다며 냅다 꾸짖음을 당할지도 몰랐다.
드디어 소야고개의 정상이다. '다부원 앞'이라는 표지가 나타난다. 건너편에는 편의점과 휴게소가 있다. '원'이라는 이름에 비추어 볼 때 근처에는 옛날 관리들이 숙박이나 휴식을 취하던 원(院)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상당한 고갯길이다. 한 고비 쉬어 갈 숙소가 필요했을 위치다.
가산면으로 접어들자 저 멀리로 길이 교차하는 입체적 풍경이 펼쳐진다. 이곳 다부리 일대로 중앙고속도로가 남북을 가르고, 5번 국도에서 빠져나간 호국로가 동서 방향으로 지난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다부동 전적기념관이 있다. 1950년 8월, 이곳 다부동 일대에서 낙동강 전선을 두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양측 합산 3만 4천 여명의 사상자를 내었고, 남한과 유엔군이 이곳을 지켜낸 결과 북한군의 대구 방향 진격을 저지할 수 있었다.
역사적 관점에서 흥미로운데다 아버지께도 몇 차례 말씀을 들었던 곳이다. 아버지는 한국전쟁에 소위로 참전, 무공훈장을 수훈하셨던 용사였다. 하지만 이미 해가 저물었다. 다음을 기약하며 걸음을 재촉한다.
산속 국도는 금세 어두워졌다. 가로등도 하나 없는 국도를, 쌩쌩 달려오는 차들을 마주하며 대략 3km를 더 걸어가야 오늘의 숙소가 나온다.
일몰과 함께 기온도 급격히 떨어졌다. 볼일이 급하여 후미진 곳으로 숨어들었다. 그래도 오는 차들의 시선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최대한 볼일을 보지 않는 듯 당당히 섰으나, 내가 무엇을 하는지는 금세 드러났을 것이다. 추운 날씨에 발밑으로부터 풍성한 김이 확 올라왔다.
가산면의 국도변은 정말 어둡다. 인적은커녕 가로등도 하나 없다. 동영상을 보면 조금 더 실감이 날 것이다.
드디어 저 아래로 불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숙소까지는 멀지 않다. 일단 저녁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국밥집으로 들어섰다.
내가 특별히 국밥을 좋아해서 국밥을 자주 먹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 도로변의 식당 중 절대다수는 국밥 아니면 해장국이다.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아마 80% 가까이 되지 않을까 싶다.
쇠고기 국밥은 맑거나 붉거나의 두 종류다. 이곳은 육개장과 유사한 '얼큰붉은형'이었다. 국물맛이 깊었다. 만약 조미료를 쓰지 않고 이 맛을 구현했다면 상당한 내공이다.
그런데 국밥을 먹는 내내 육개장 사발면이 생각났다. 주인장의 노력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농심이라는 회사의 저력을 새삼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육개장 사발면을 먹어 오면서도 육개장 맛이라고 딱히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에야 비로소 그들의 노력에 탄복하였다.
밥을 먹고 나오니 곧 저 아래로 숙소의 불빛이 보인다. 순간 진심으로, 정말 진심으로 세상에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내내 추위와 허기, 암흑에 시달렸는데 이제 배도 부르고 숙소도 가깝다. 기본적인 욕구의 충족만으로도 인간은 충분히 만족스러울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아마도 그걸 잊고 사는 건, 평소 기본적인 필요의 부족에 시달려 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숙소인 '꿈의 궁전'은 국도변에서 안쪽으로 조금 들어간 곳에 있다. 지도상으로는 너무 외진 곳이어서, 아까 전화로 영업을 하시는지 미리 확인을 해 두었던 터다.
숙소를 검색하다 보면 '꿈의 궁전'이라는 이름을 정말 많이 볼 수 있다. 그 말에서 풍기는 미묘한 뉘앙스가 숙박업소의 이름으로 제격이기 때문일 것이다.
방을 청하면서 욕조가 있느냐고 묻자, 달방(주로 인부들이 연속 숙박으로 잡아놓고 묵는 방)으로 쓰는 1층에만 욕조가 있고 침대방인 2층부터는 없다고 한다. 며칠 전 삼랑진 달방에서의 기억이 떠올라서 목욕을 포기하고 침대방을 쓰겠다고 했다. (2일차 마지막 부분, 3일차 첫 부분 참고)
그런데 내내 나를 '아재'라 부르시던 아주머니께서 고마운 제안을 한다. 1층 욕조에 물을 받아 놓을 테니 1층에서 목욕을 하고 2층에서 자라는 말씀이다. 예전에도 대학생 두 명이 걸어서 국토종주 중이라며 들른 적이 있다고 했다.
2층에서 옷을 갈아입고, 아직 남아있던 청도 반시 몇 개를 종이컵에 담아 1층으로 내려가면서 주인 아주머니께 드렸다. 그런데 욕실에 들어서니 귤 세 개와 두유가 놓여 있다. 욕조 안에 몸을 담그기 전, 마음부터 따뜻해져 온다.
오늘 걸은 거리는 약 28km다. 목욕을 마치고 아까 식당 근처 편의점에서 사 온 맥주를 마시며 내일 일정을 구상한다.
그런데 <영남대로>를 읽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책의 일정을 따른다면 내일의 목적지는 구미시 도개면이다. 헌데 해당 장의 마지막 페이지에 '택시를 불러 숙소로 향했다'고 쓰여 있다. 반칙이 아닌가? 걸어서 영남대로를 종주하기로 해 놓고는 차량을 이용하다니!
황급히 지도를 열어 조사해 보았더니 정말 도개면에는 숙소가 하나도 없다. 도보로 이동할 만한 인근 지역에도 이렇다 할 숙소가 보이질 않았다. 숙박을 위해서는 차량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사정도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래서는 아니되었다. <영남대로> 저자의 목적은 옛길 탐방이지만, 나의 목적은 영남대로를 참고하되 '부산역에서 서울역까지' 온전히 걸어서 주파하는 것이다. 단 1미터라도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건 용납할 수 없다. <영남대로> 저자와는 목표가 다른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다양하게 경로를 탐색했지만 답이 잘 나오지 않는다. 그러다 '어떻게든 되겠지', 벌렁 드러누웠다. 어쩌면 내일부터는 온전히 내가 길을 개척하며 나아가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