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발 전 발바닥 조치는 이제 일상이 되었다. 물집에 실을 꿰고 약을 바른 후 밴드를 덧댄다. 실제로 통증을 줄여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물집의 진물이 실을 통해 계속 빠져 나오는 장면을 상상하면 좀 나은 것도 같다.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다부동 전승비'를 만났다. 정확히는 이곳에서 한국군과 함께 전투를 치렀던 미 보병 27연대에 대한 '감사 기념비'다.
다부동 인근을 걸으면 이곳이 왜 전략적 요충지인지 절로 알게 된다. 사방이 산으로 막힌 가운데, 그 사이로 난 언덕길의 꼭대기가 다부동이다. 만약 북쪽에서 내려와 다부동을 넘는다면 이후 칠곡과 대구까지는 거침없이 내달릴 수 있다. 한국전쟁 최후의 방어선인 낙동강 전선이 왜 다부동 위로 그어졌는지, 이곳에서의 전투가 왜 그리도 치열했는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었다.
인근에 문을 연 식당이 있다. 근처에 공장이나 작업장이 많아 일찍부터 영업을 하는 듯하다.
주인 아주머니께 백반을 부탁드렸다. 물 대신 따뜻한 숭늉 한 그릇을 먼저 내어 주신다. 곡기의 감칠맛이 몸을 따뜻하게 데워 준다. 이윽고 커다란 쟁반 위에 각종 반찬과 함께, 키 큰 장정임을 배려하셨는지 공기밥 두 그릇을 담아 내어 주셨다. 주인 아주머니의 인심에 감사하다.
아주머니는 여행 중인 내 얘기를 들으며, '사람이 일단은 건강해야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래야 뭐든 할 수 있는 법이다. 둘째는 '욕심을 줄여야 한다'는 것. 말하자면, 건강하고 욕심을 줄이면 언제나 행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단순하지만 명확한 진리다.
아주머니는 배고픈 사람들에게 밥을 주는 일이 얼마나 좋은 일이냐고 하셨다. 작은 식당이지만, 문이 열릴 때마다 사람들이 돈 주러 들어오니, 그 또한 얼마나 행복한 일이냐는 말씀도 여운이 짙다.
밥 두 그릇을 뿌듯하게 비우고 아주머니와의 만남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 함께 사진을 청했다. 감사한 마음으로 식당을 나선다.
오늘의 경로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도 고민이다. <영남대로>의 저자처럼 영남대로의 자취를 충실히 따른다면 오늘은 구미시 도개면까지 가는 게 맞다. 하지만 어젯밤 고민했듯 아무리 지도를 뒤져봐도 도개면에는 적당한 숙소가 보이질 않았다.
도개면 면사무소로 전화를 걸었다. 현장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다. 하지만 예상대로 일반 숙박시설은 없다. 다만 한 군데, '신라불교 초전지(신라에 불교가 처음 전해졌던 곳)'에 전통가옥 체험관이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다행이구나 싶어 알아 보았지만 다음날 일정을 고려하면 위치가 애매했다. 수건이나 세면도구 일체를 본인이 준비해 와야 한다는 안내문도 마음에 걸렸다. 칫솔과 치약 말고는 내게 없는 물건들이다.
고민이 끝나지 않았지만 어쨌든 일단 과거 '서울 나들길'이 있던 지역인 구미시 옥계동 근처까지는 가야 했다. 우선 그리로 방향을 잡고 걷기 시작한다.
한 명이 겨우 지날 만한 터널 내 인도로 들어선다. 그나마도 난간이 휘어 있어 간신히 몸을 비집고 들어섰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국도를 빠져 나와 한적한 도로를 걷는다. 바람이 제법 쌀쌀한 날이다.
걷다가 행정구역 표지를 만나면 반갑다. 내가 움직이고 있다는 가시적 지표이기 때문이다. 오전 11시 50분경, 구미시 장천면으로 진입한다.
장천면으로 접어들자마자 길게 뻗은 직선 도로를 만났다. 도보 여행자에게 이런 길은 반갑지 않다. 변화와 다양성에 대한 기대가 적어지기 때문이다. 소실점은 좀체 다가오지 않고, 지루함에 발의 통증은 배가된다. 맥이 풀려 잠시 버스정류장에 앉아 한숨을 돌렸다.
지루한 길의 끝에 마을이 나타났다. 벽돌건물이 인상적인 오상중학교에는 점심시간인지 학생들이 학교 안팎을 오가고 있었다.
장천면 면사무소 주변의 번화가(?)를 지난다. 딱 사진에 보이는 저기까지다. 이 곳을 벗어나면 길은 다시 휑한 들판으로 빠져 나간다.
물론 아무 것도 없는 들판을 터벅터벅 걷다 문득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여행은 아무래도 다양한 문물을 접할 때 재미가 있다. 새로운 자극이 새로운 생각을 촉발하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장천면을 지나 옥계동까지 약 8km구간은, '오가는 차도 없는데 도로는 참 잘 닦였다'는 냉소 어린 기억이 대부분이다.
물론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그 길 위에도 내가 알지 못하는 인문 또는 자연지리적 특색들이 수없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날 내겐 지독한 발바닥 통증을 견디며 그저 걷고 또 걸어야 할 '과제'였다.
그런 중에도 천생산성은 이 길을 걷지 않았더라면 알지 못했을 유적이다. 저 멀리 산의 능선이 평평한 것이 심상치가 않다. 도로 표지에 '천생산성'이라 되어 있어 검색해 보았다.
지금 걷고 있는 구미지역은 삼국시대 신라의 서북쪽 끝자락이다. 천생산성은 고구려, 백제에 대비해 신라시대에 처음 축성되었다고 하니 꽤 유서가 깊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에는 필요성이 약해져 방치되었다가, 임진왜란때는 곽재우 장군이 이 곳에서 왜적과 싸웠다고 전한다.
천생산성의 모습. 저 멀리 평평한 능선 부분이다.
천생산성 외에는 버려진 승용차, 플라스틱 똥장군 정도가 이 길에서 만난 전부다. 건너편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는 분들과 가볍게 목례를 나눈 게 그나마 의미있는 기억이다.
왼쪽 : 아무도 없는 외진 곳에 버려진 자동차는 왠지 섬뜩하다. 오른쪽 : 형태상 똥장군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용도는 미상이다.
저 멀리로 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오늘 거쳐가야 할 옥계동이다. 장천면을 벗어날 때부터 보이기에 금방 도착할 줄 알았더니, 한 시간 넘게 걸었는데도 아직 한참이다. 뻔히 보면서 다가가지 못하니 심신이 더욱 지쳤다. 결국 인근 벤치에 다리를 높이 걸치고 드러 누웠다. 나도 모르게 '에구구구' 앓는 소리가 새어 나온다.
여기서부터 다시 한 시간 정도를 걸어서야 옥계동에 들어섰다. 아파트가 밀집된 신도시 느낌이다. 한켠으로는 아파트 단지가, 길 맞은편으로는 상가 건물이 늘어섰다.
여기도 경기가 좋지 않은 건 매한가지다. 곳곳에 빈 상가가 보인다. 하나의 상가에 수많은 부동산 번호들이 붙어 있다. 장사는 되지 않고, 경쟁은 치열하다.
일단 밥을 먹어야 했다. 황태요리를 하는 곳이 있어 들어섰다. 1인이 먹을 수 있는 황태요리가 무엇이 있느냐고 묻자 주인 아저씨는 '황태정식'이 있다고 했다. 수지가 맞지 않아 메뉴에서는 뺐는데, 원하는 손님이 있으면 내어 주신다고 했다.
감사한 마음으로 황태정식을 부탁드렸다. 황태구이는 양념과 조화가 잘 됐고, 같이 나온 황태국은 그것만도 제법 푸짐했다.
계산을 하고 나오며 주인 아저씨께 길을 여쭈었다. 예상대로, 도개면 방향으로는 정말 아무것도 없다는 말씀이다. 차라리 김천 방향으로 가다가 상주쪽으로 올라가는 게 어떠냐고 제안하신다.
그러다 내 여정이 흥미로웠던지, 서울까지 걷는 건 일종의 도전같은 것이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자 '군대를 두 번 갈 수는 없으니'(군대에서는 행군을 한다는 뜻) 좋은 생각이라며 격려하셨다.
길가에 동네 빵집이 있다. 체인점이기는 하나 구미시 안에만 있다고 한다. 이런 곳은 언제나 흥미롭다. 빵 두 개를 사서 곳간을 채웠다. 이 역시 다음날까지 든든한 간식거리가 되어 주었다.
이제 오늘 일정의 결론을 내려야 할 시간이다. 스타벅스에 앉아 지도를 펼쳐놓고 시간과 거리를 가늠해 본다.
<영남대로>의 경로를 따르지 않는다 해도, 일정을 고려하면 내일 경상북도 상주까지는 가야 한다. 여기서 상주는 길에 따라 50~60km 거리. 그러므로 내일 부담을 줄이려면 오늘 최대한 걸어 두는 게 좋다.
오전에 검색해 보았던 신라불교 초전지는 제외했다. 이미 오후 4시가 다 되어 가는데 남은 거리는 여기서부터 20km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두 가지 안이 나온다. 제1안은 경북 선산 아래의 고아읍까지다. 고아읍에서 상주까지는 34km가량이니 내일 일정에 큰 무리는 없다. 단, 여기서 고아읍까지가 14km로 만만치 않다.
제2안은 오늘은 구미종합터미널 근처에서 자고 내일 상주까지 올라가는 것이다. 1안에 비해 오늘의 부담은 적으나, 내일 무려 45km가량을 주파해야 한다.
결론을 내렸다. 내일 일정이 걱정되지만, 일단 오늘은 구미에서 자기로 한다. 고아읍까지 쉬지 않고 걸어도 3시간 반은 걸릴텐데 해가 곧 지는 마당에 상당한 무리다. 체력을 비축하는 셈치고 오늘은 구미 시내로 향한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마치 오늘 일정이 거의 다 끝난 것 같다. 하지만 모텔이 밀집된 구미종합터미널까지는 아직 8km도 더 남았다. 방심하기엔 이르다.
노을을 마주하며 시내로 들어서는 산호대교를 건넌다. 아래로 낙동강이 흐른다.
다리 반대편에 엘지 디스플레이 공장이 보인다. 낯이 익다. 자전거 국토종주 때 바로 이 다리 아래로 낙동강변을 따라 내려갔기 때문이다.
다리를 건넌 후 강변 도로를 걷기 지루해 아파트 단지가 보이는 안쪽으로 접어들었다. 해가 지는 낯선 동네, 아파트 앞 마트에서 마침 김종환의 '사랑을 위하여'가 흘러나왔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해질녘 나그네의 객수(客愁)에 젖었다.
구미 시가는 국가산업단지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공업지대는 도시 외곽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지만, 구미는 공업지대가 도시의 중심이고 바깥으로 주택가와 부대시설이 자리하고 있다. 시내인 동시에 공업 단지의 사잇길을 더듬어 간다.
금오공업고등학교를 지나자 '금오공과대학교', '경운대학교', '구미대학교' 세 대학의 간판이 동시에 보였다. 이곳은 경북 산학융합지구 구미지구 내의 산학융합캠퍼스들이다. 한 자리에서 여러 대학의 간판을 동시에 보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송정분수공원 근처까지 왔다. 성탄절을 맞아 구미시 장로총연합회가 세운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가 보인다. 이제 오늘의 여정도 거의 마무리되어 간다.
인터넷을 검색하다 근처 모텔 한 곳에 대한 리뷰를 읽었다. 세탁기가 있다니 잘 되었다. 속옷이야 매일 욕조에서 빨면 되지만 겉옷류는 아무래도 세탁기를 사용하는 게 낫다. 이곳으로 마음을 정하고, 일단 사우나를 찾았다.
사실은 구미시내에 들어서면서부터 배가 아팠다. 사우나에서 옷을 벗자마자 급하게 화장실로 달려갔다. 어젯밤에 경로 탐색을 하면서 평소보다 맥주를 조금 많이 마셨더니 종일 뱃속에서 끓었던 듯하다.
목욕을 마치고 인근 롯데리아에서 저녁을 먹은 후, 다이소에 들러 물집 처치용 실을 한통 사서 숙소로 향했다.
가는 길에 카페같은 분위기의 통닭집이 눈에 띄었다. 이름이 '교촌통닭'이다. 잘 알려진 '교촌치킨'과는 다른, 이 지역 고유의 브랜드인 듯하여 신기하게 살펴 보았다. 치킨을 좀 사갖고 들어갈까 했지만 방금 치킨패티가 들어간 햄버거를 먹은데다, 목욕탕 들어갈 때의 복통이 생각나 그만 두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곳이 '교촌치킨'의 발상지다. 권원강 교촌에프앤비 회장이 이곳에서 처음 '교촌통닭'이라는 이름으로 장사를 시작했고, 그래서 여기가 '1호점'이다.
현재 교촌치킨은 전국에 1,000개 내외의 매장을 거느린 국내 최대의 치킨 프랜차이즈다. 그러니 여기는 나름대로 치맥의 성지인 셈인데, 알았더라면 맛이라도 볼 걸 그랬다. 이 날은 인테리어 산뜻한 현지 통닭집으로만 여겼다.
구미종합터미널 건너편 골목 안으로 모텔이 빼곡하다. 경쟁탓인지 가격도 3만 원으로 매우 저렴했다. 이 정도 시설에 이 가격이면 최고의 가성비다.
그런데 빨래를 하러 세탁기가 있는 옥상으로 올라갔다가 불현듯 내 안의 부끄러움과 만났다. 누군가가 먼저 세탁물을 담고 있었다. 외국인 노동자다.
나 : "얼마나 걸릴까요?"
외국인 노동자 : "40분 정도요. 이따가 빨래 넣어 드릴까요? (옆의 바구니에 내 빨래를 담아놓고 가면, 자기 빨래를 꺼낼 때 내 것을 넣고 세탁기를 돌려 주겠다는 뜻)"
나 :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짧지만 이 대화는 한국어로 진행됐다. 최초 나의 질문부터 한국어였고, 상대방의 답변도 그랬다. 그런데 고백하자면, 처음 질문을 하려던 찰나의 순간 내 안에 깃든 '문화적 권력의식'을 느꼈다.
아마 상대방이 '존'이나 '스미스'류의 백인이었다면 "얼마나 걸릴까요?"와 "How long does it take?" 사이에서 좀 더 고민했을 것 같다. 하지만 상대방이 외국인 노동자라는 걸 알고, 아주 잠깐 멈칫하기는 했지만 내 입에서는 한국어가 나왔다.
부끄럽지만 그 찰나의 '멈칫'을 문장으로 구체화해 보면 다음과 같다 : '당신은 우리나라에 일하러 온 사람이니 응당 한국어를 하겠지. 내가 당신에게 한국어를 쓰는 건 당연하고, 당신도 내 말에 맞춰 한국어로 답을 해야 마땅할 것이야'
존이나 스미스를 대하는 것과 다른, '니띤'이나 '압둘'을 대하는 내 안의 이중성에 놀랐다. 평소 문화 사대주의적 태도를 비판하고 평등한 인간애를 중시하던 나다. 딱 한 캔 사갖고 들어온 맥주마저 썼다.
아까 다이소에서 산 실을 군데군데 매어 빨래를 널고 잠자리에 든다. 이런 용도로 쓸 줄은 몰랐지만 요긴하다. 방 안에 빨래용 줄을 거는 건 삼랑진의 여관에서 얻은 아이디어다. 내일은 40km가 넘는 강행군이기에 일찍 출발해야 한다. 아침까지 빨래가 잘 마르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