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오늘은 상주까지 40km가 넘는, 그야말로 100리 길을 내달려야 한다.
7시 반쯤 숙소를 나섰다. 아직 어스름한 거리에 가게들이 하나둘 문을 연다.
갈 길이 멀수록 계획이 필요하다. 이른바 중간목표, '서브 골(sub-goal)'이다. 10시 반까지 고아읍, 12시 전후 선산. 그러면 오전 목표는 달성이다. 고아읍을 향해 부지런히 북상한다.
걸은지 한 시간쯤 지나 아침을 해결하러 편의점에 들어섰다. 평소 기름기나 칼로리가 부담스러워 라면은 잘 먹지 않지만, 몸 고생의 장점은 신체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먹고 싶은 건 뭐든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밥을 먹고 다시 한 시간정도 걸어 고아읍에 도착했다. 어제 여기가지 올까(제1안), 구미 시내에서 묵을까(제2안)로 고민했던 곳이다.
길 건너로 특이하게 생긴 건물이 보인다. 딱정벌레 같기도 하고 밤톨 같기도 하다. 가만 보니 성당이다. 잠시 쉴 겸 성당 마당으로 들어섰다.
10시 반에 미사가 있는지 신자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나도 참례하고 싶지만 오늘은 그럴 수가 없다.
벤치에 앉아 발을 주무르며 보니 성당 앞에 전동 휠체어와 배달용 오토바이가 서 있다. 상징적인 장면이다. 예수님은 항상 병들고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신다고 했다.
예전에 읽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가난한 교인이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휘황하게 잘 지은 교회건물에 들어가려다 제지당했다. 문 앞에 주저앉아 울고 있자니, 예수님이 나타나 '왜 울고 있느냐'고 물으셨단다.
"교회 안에 들어가지 못한 게 창피하고 슬퍼서 웁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괜찮다, 나도 여긴 한 번도 못 들어가 봤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걷기 시작했다. 오래지 않아 저 앞으로 선산이 보인다. 오전 목표는 무난히 달성할 것 같다. 선산읍성 남문 앞에 도착한 시간이 11시 반쯤이었다.
선산읍성 남문의 누각이 '낙남루'다. 조선시대에 읍성을 석성으로 쌓으며 축조되었고, 이후 소실되었으나 구미시가 2002년부터 9년에 걸쳐 중건했다.
낙남루 건너편에 갑오동학농민전쟁의 전투지였음을 알리는 기념비가 서 있다. 보통 동학농민전쟁에 대한 관심은 '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에서 시작해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을 위시한 전라도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당시 동학농민전쟁은 전라도만이 아닌 전국 단위의 봉기였다. 선산의 동학농민전쟁 재조명처럼, 지역마다 향토의 역사를 발굴하고 홍보하는 일은 우리의 역사를 더 생생하고 풍부하게 하는 일이다.
선산읍성에서 선산읍내로 들어가는 길이 '중앙로'다. 읍내 풍경이 정겹다.
바로 근처에 '선산전통시장'이 있다. 시장 안쪽 2층에는 젊은 분위기로 새롭게 단장한 식당가가 들어섰다. 얼마 전 SBS의 <골목식당>에 소개되었던 대전의 '청년구단'과 컨셉이 비슷하다. 청년 창업을 지원하고 전통시장의 분위기를 개선해 보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물론 차이도 있다. 대전의 청년구단은 정부의 지원에 힘을 얻었던 데 비해 이곳은 이마트의 '노브랜드 상생스토어'가 들어오면서 조성됐다.
식당가는 개장 초반이라 아직 한산했다. 한 곳에 들어가 '찹쌀수제비'를 주문했다. 미역 북엇국에 찹쌀 새알심을 듬뿍 넣었는데, 6천 원으로 든든하게 먹을 수 있었다. '찹쌀수제비'라는 이름이 실제 음식의 특성을 잘 담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나름대로 적당한 이름이 없을까 고민했는데, 이 지역에서는 그냥 찹쌀수제비로 부른다고 했다.
12시 15분경 식당을 나서 상주 방면으로 향한다. 자못 비장하다. 일단 이 길로 들어선 이상 반드시 상주까지 가야 한다. 중간에는 일정을 멈출래야 멈출 곳이 없다.
상주까지는 28km가 남았다. 오전에 15km를 걸어온 피로감이 만만치 않지만 이미 각오한 일이다. 중부내륙고속도로 선산 휴게소를 중간목표로 정하고 걷는다.
다행히 어제보다 날이 풀렸다. 한낮의 포근한 햇살을 등으로 받으며 시골길을 걸어 나간다.
실은 출발하기 전에 서울-부산과 부산-서울을 놓고 제법 고민을 했다. 서울-부산은 북서 계절풍을 등지고 내려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낮 시간 내내 햇볕을 마주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부산-서울은 그 반대다.
고민 끝에 차라리 바람을 마주하기로 했다. 추운 게 낫지, 햇볕을 안고 걸으면 눈살을 찌푸리느라 주위를 돌아보기 힘들 것 같았다. 다행히 오늘은 바람도 온화하고 등까지 따뜻하니 걷기에는 더할 나위가 없다. 다만 그 거리가 너무 긴 게 함정이다.
구멍가게에서 물 두 통을 사고 근처 정자에 앉아 발바닥에 붙여 둔 밴드가 제대로 있나 확인한다. 뜻밖에 발톱이 깨져 피가 나 있다. 이 정도면 느낌이 있었을 법도 한데 발바닥 통증이 워낙 심해 알아채지 못했다. 다행히 큰 상처는 아니다. 발가락을 밴드로 감으니 거뜬했다.
물집뿐만 아니라 이날은 발바닥 전체의 고통이 매우 심했다. 평발이긴 하나 그것 때문에 불편을 느껴본 적은 지금껏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발바닥 안쪽의 통증이 영 거북하다. 수시로 신발을 벗고 발을 주물러주는 수밖에 없다. 도무지 익숙해지진 않는다.
길은 중부내륙고속도로를 오른쪽으로 바라보면서 북쪽으로 이어진다. 인적이 드물다. 길가의 낡은 집은 그나마도 폐가가 된 곳이 많다.
그런데도 초등학교가 있다. 학교가 유지될 만큼의 아이들이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의 오지다.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니 '대원저수지'가 나타난다. 고속도로 선산휴게소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호수같은 곳이 보이는데, 바로 이 저수지다. 그렇다면 여기서 선산휴게소도 멀지 않을 것이다.
드디어 선산휴게소 아래에 도착했다. 이 휴게소는 내게 제법 추억이 있는 장소다. 2015년 김해외국어고등학교로 반 년 가량 출강하면서, 매번 저 난간 앞에서 기지개를 켜고 스트레칭을 했다. 그러던 곳에 걸어서 왔다니, 그 감흥을 사진으로 남기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 목표는 '용포성당'이다. 이렇게 중간목표를 정하며 걷는 게 상당히 도움이 됐다. 마라톤 선수도 마음속에 중간목표를 정하고 구간구간 달린다고 들었다. 목표가 있어야 집중할 수 있고 지치지 않을 수 있다.
선산에서 상주로 올라가는 길의 좌우에는 양지바른 곳에 쓴 가족묘가 곳곳에 눈에 띈다. 말하자면 선산(善山)에는 선산(先山)이 많다.
중부내륙고속도로 아래로 오르막길이 나타난다. 이제 곧 행정구역상 상주시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길은 전혀 예상치 못한 험로였다. 가도 가도 끝없는 오르막이다.
어느 순간 결국 웃통을 벗고 숨을 헐떡일 지경이 되었다. 아까 분명히 머리 위로 지나가는 고속도로 밑을 지났는데, 어느새 고속도로가 한참이나 아래로 보일 정도다. 방심하다 불의타를 맞았다.
게다가 보행을 더 힘들게 한 것은 끊임없이 오가던 건설차량들이다. 상하행을 막론하고 쉼 없이 레미콘, 덤프트럭이 먼지를 말아 올리면서 지나간다. 도대체 이 시골에 무슨 대규모 공사장이 있기에 이러나 싶다.
고갯길의 정상에 가까워서야 비로소 이유를 알게 됐다. 아스콘과 레미콘 공장이 모여 있다. 바로 이곳으로 건설차량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공장 진입로를 지나자 조용해졌다. 마침 고개 정상도 지척이다. 버스 정류장이 있어 어제 산 빵을 뜯어먹으면서 한숨 돌렸다. 언덕길만 40분가량을,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이, 온갖 건설차량의 먼지를 뒤집어쓰고 올라온 터라 기진맥진이다.
몸이 식기 전에 다시 출발한다. 그나마 이제부터는 내리막이라 수월할 것이다. 출발하자마자 상주로 진입한다는 표지가 나타난다. 상주시 낙동면이다.
비교적 편안하게 내리막을 걷는다. 왼편으로 절이 보이는데, '빙의 전문 퇴마연구소'라니 흥미롭다.
하지만 붓다의 가르침과 빙의 치료 또는 소원성취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궁금하다. 붓다의 가르침은 고통이 집착에서 비롯된다는 깨달음, 그러므로 중도의 수행을 통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퇴마나 소원성취는 기복신앙의 산물이지 붓다의 가르침과 직접 관계가 있지는 않다.
하긴, 창시자의 가르침과 종교의 가르침이 다른 건 불교만이 아니다. 예수님도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쳤지, '나를 믿으면 자식을 대학에 붙여주겠다'고 약속하지는 않았다. 가르침과 믿음은 때로 별개의 문제다.
행정구역상 상주로 들어섰고, 제법 많이 걸어왔다고 생각했는데 표지판은 아직도 상주시내까지 16km가 남았다고 외친다. 오늘처럼 발이 아픈 날에는 아무래도 기운이 빠진다.
그나마 이색적인 풍경에 잠시 위안을 얻었다. 저 멀리로 산비탈을 깎아 만든 다락논이 장관을 이룬다. 이곳에서는 '다락논'이라 부르지만 사전상으로는 '다랑논'이라 하며, 경상남도 남해에서는 '다랭이논'이라고도 한다.
보통 다랑논은 높은 산지에 만들어진다.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산세는 비교적 완만한 편이라 다랑논이 크게 발달하지는 않았다. 그런 만큼 우리나라에서 다랑논을 만나기란 흔치 않은 일이다.
필리핀 북부 바나우에의 다랑논 사진이다. (출처 : 문화일보)
드디어 중간목표지점인 용포성당에 도착했다. 이곳은 사제, 즉 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성당인 '공소'다. 신부가 상주하는 성당은 '본당'이라 부른다. 소속은 천주교 안동교구 상주지구다.
1966년에 세워졌다는데, 그러고 보니 종탑과 종의 양식도 옛날식이다. 요즘은 명동성당에서도 종소리를 녹음해서 틀지 실제로 종을 치지는 않는다. 왠지 이곳은 아직도 종을 쳐서 신자들을 부를 것 같다.
멀지 않은 곳의 '낙동농협 용포출장소'도 문이 닫혀 있었다. 신문이 꽂혀 있는 걸로 보아 종일 그랬을 터였다. 계단에 맘편히 앉아 아픈 발을 주물렀다. 입구 옆 통로 안쪽에는 소변기가 재치 있게 자리 잡았다.
인근에 초등학교 건물로 추정되는 곳에서는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다. 아마도 폐교를 활용한 관광시설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여기까지 오는 내내 보아 온 것이 폐가, 공소, 문 닫힌 농협 등이었기 때문이다.
근방에는 소를 키우는 축사가 많다. 상주 시내 근방에 다다를 때까지 이 길의 좌우로 축사들이 계속 이어졌다.
동지가 코앞이라 해가 짧다. 상주까지 남은 거리는 12km다. 이제 곧 깜깜해질 것이다. 사진 한 장을 찍고 서둘러 걷는다. 4시 40분. 하늘에는 달이 절반을 조금 더 채워 올랐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해는 완전히 졌다. 말 그대로 일모도원(日暮道遠)이었다. 해는 지는데 갈 길은 멀다.
그 와중에도 개들은 부지런히 짖어댄다. 축사가 있어 보안에 더 신경을 썼기 때문인지, 어두운 길섶의 곳곳에서 시도 때도 없이 개들의 위협이 튀어나왔다. 상당한 스트레스다.
핸드폰 손전등을 켜고 걷는다. 어두운 시골길, 소똥 냄새, 개 짖는 소리, 이 길에 대한 기억은 그 세 가지다.
한 가지 더 있다. 이 동네 차들은 정말 최선을 다해 질주한다. 밤길에 어딜 그리 급히 가시는지, 승용차건 트럭이건 좁은 시골길을 쌩쌩 달리는 통에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렌즈를 가리고 찍은 것이 아니다. 6시 30분, 길에서 찍은 사진이다.
드디어 저 멀리로 상주 시내의 모습이 가물가물 보이기 시작한다.
지나던 차 한 대가 멈춰 서서 내게 '시내 방향으로 가느냐'며, 타라고 하신다. '일부러 걷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 인사했다. 아닌 게 아니라 이 길에서 그러한 호의는 정말 고마웠다.
발이 너무 아파 중간중간 걸터앉아 발을 주물렀다. 물집성 통증과는 결이 다른, 골격과 근육계통의 피로 및 저림 탓에 걷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어두운 시골길에는 시선을 돌릴 만한 것도 없다 보니 온전히 내 발걸음과 통증에 집중하게 된다. 키스를 할 때 눈을 감는 건 시각을 차단해 촉각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똑같은 원리인데 지금은 반갑지가 않다. 이제나 저제나, 이 길이 얼른 끝나기만을 바라면서 걷고 또 걸었다.
드디어 축사 밀집지대와 산길을 벗어났다. 이제 상주 시내로 곧장 난 직선 도로를 걷는다. 이 길만도 1.4km에 달한다.
저 앞으로 철길이 보인다. 철길 너머부터 시내다. 가까이에 경북선이 지나는 상주역이 있다.
건널목으로 다가가자 기차의 진입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기찻길을 건너면 상주 시내다. 7시 반쯤 되었다. 여기까지 12시간 동안 42km가량을 걸었다. 마라톤이 얼마나 위대한지, 오늘에야 절절히 실감했다.
숙박을 위해서는 상주종합터미널 부근으로 2km 이상 더 가야 한다. 그나마 사람 사는 모습들이 보여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었다. 식당 앞에서 엄마를 돕는 아이의 모습도 천진하다. 아이의 발에 엄마의 신발은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
조금 더 걸어보려 했지만 도저히 안 되겠다. 일단 눈앞에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섰다. 순대국을 먹는 동안 신발을 벗고 의자에 발을 걸쳤다. 좌우에 손님이 없긴 했지만 좋은 매너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발이 너무 아팠다.
그래서 사람은 경험이 필요하다. 지하철에서 틈새를 비집고 빈 자리로 달려드는 아주머니를 손가락질하는 건 아직 몸이 건강하다는 증거다. 아이를 낳고 나이가 들어, 서 있기조차 힘든 때가 되면 비로소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청년보다는 노인이 '노오인'에게 자리를 더 양보하는 것이다.
식당을 나오면서 종업원 아주머니께 '발을 얹고 있어 죄송했다'고 하자 괜찮다고 하신다. 헌데 구미에서 여기까지 걸어온 길이라는 얘기에도 별로 놀라는 눈치가 아니어서 조금 서운했다. 아마도 구미라면 평소 차를 타고 다닐 것이기에 별로 멀게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서울로 따지자면 '동탄 신도시에서 강남역까지 걸어왔다'정도가 될 것이다. 차로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거리다. 백리길의 진가는 걸어 봐야 안다.
다리를 절며 상주종합터미널 근처로 향한다. 약국에 들러 물집을 터뜨릴 때 쓸 사혈침, 소독약, 밴드, 파스 따위를 샀다. 계산을 하려는데 국토종주 중임을 알아챈 다른 약사가 '이걸 드셔 보시라'며 앰플을 권한다. 당장 내일부터 근육통이 한결 덜하고 걷기도 수월할 것이라 했다. 남은 일정이 대략 일주일, 하루에 두 개씩 먹는 셈 치고 14개를 구입했다.
이후 아침저녁으로 복용했지만 뚜렷하게 힘이 솟는다거나 몸이 편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아마 발의 통증에 비해 근육계통의 무리는 크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종일 걷다 보니 실감하지 못했을 뿐, 실은 도움이 되었을 수도.
상주는 자전거 도시로 유명하다. 그도 그럴 것이 상주시내는 지대가 평탄하고 넓은데다 길도 직선으로 잘 닦여 있다. 학생들은 자전거 위에서 핸드폰을 아주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드디어 상주종합터미널 근처에 도착했다. 적당해 보이는 모텔에 방을 얻었다. 어지간하면 근처 카페에서 오늘 일정을 정리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았다.
결국 씻고 나와 그대로 오늘 일정을 마무리한다. 오늘 대략 44~45km가량을 걸었다. 내 인생에서 하루 동안 걸은 최장 거리다.
목욕을 하고 보니 왼쪽 두 번째 발가락에 물집이 통통하게 잡혔다. 실을 꿰어 물을 빼냈다.
발바닥의 물집은 이제 뚫어도 물이 잘 나오지 않는다. 굳은살이 되어 가는 것일까.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은 여기저기 참 잘도 들어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