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차 : 상주터미널 인근에서 점촌까지

2018년 12월 20일

by 김정환


잠자리는 편했지만 어제 무리한 탓에 아침부터 발이 너무 아프다. 7시쯤 일어나 뒤뚱거리며 준비를 마치고 나섰다.


터미널 근처라 일찍 문을 연 식당이 있다. 식당 벽에 명심보감류의 글이 가득하다. 선지해장국을 주문하고 글을 찬찬히 읽어 본다. '부모님의 은혜를 갚으라'는 글귀에 아침부터 콧등이 짠해졌다.



상주의 아침, 날이 흐린 건지 뿌연 건지 모르겠다. 예보는 오늘 하루 미세먼지가 많을 것이라 했다. 언젠가부터 찬바람과 미세먼지가 교대로 한반도를 덮는다. 걷기에는 무난한 날씨다.



짤막하게 동영상을 남기는 재미가 들어 출발하는 참에 오늘 일정의 고민을 남겨 본다. 문경읍까지냐 점촌까지냐? 일단은 점촌까지 가서 생각해 보기로 한다.



사적(史蹟)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내가 바로 길 건너 '상주임란 북천전적지'를 바라보고만 지나간다. 임진왜란 때 상주 북천변에서 벌어진 전투의 현장이다. 파죽지세로 북상하던 왜군 선봉대에 맞서 관군과 의병이 최초로 의미 있는 항전을 벌인 곳이다.


임진왜란 초반에 조선이 패배를 거듭한 데에는 전투력의 열세가 컸다. 당시 왜군은 엊그제까지 자기들끼리(일본의 '전국시대') 치고받았던 역전의 용사들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한 후 실전으로 단련된 병력이 고스란히 조선으로 쳐들어 왔으니, 오랫동안 평화에 익숙하던 조선은 당해낼 재간이 없었을 것이다.



지금 올라가는 길은 '경상대로'다. 이 지역에서 3번 국도를 부르는 이름이다. 이 3번 국도는 이날을 포함해 나흘 동안 내 여정의 동반자가 된다.



하지만 국도변을 걷는 건 별로 유쾌하지 않다. 쌩쌩 달리는 차들에다 주변에는 그다지 돌아볼 것도 없다. 마주 오는 차량을 의식하느라 맘 놓고 시선을 돌리기도 불안하다. 그러니 국도면으로 난 시골길이 있으면 조금 돌아가더라도 기꺼이 그 길을 택한다.


한 시간쯤 국도를 걷다가 기회를 틈타 잠시 벗어났다. 길가에 걸터앉아서 초코바를 먹는데 바로 앞에 쥐의 사체가 나뒹군다. 신경은 쓰여도 자리를 옮길 만큼은 아니다. 발이 참 빨갛구나 하는 생각뿐,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이 정도 일에 끄떡없을 만큼은 걸었다.



다만 오늘따라 걸음이 너무 무겁다. 어제 너무 무리를 했다. 몸이 힘들면 생각도 거기에 맞춰지는 법. 오늘따라 '그만둘까'싶은 생각이 자꾸 든다.


물론 심각하게는 아니다. 일종의 '전략'에 가깝다. 공연히 슬쩍 떠 보면서 그에 대한 반발력을 추진력으로 삼는 것이다. 이런 식이다. '그만둘까?' '야, 힘들다고 그만 두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 그렇게 다시 힘을 얻어 걷는 것이다.


다시 국도로 따라 한걸음 한걸음, 연명하듯 걸어가는 내 앞으로 휴게소가 나타났다. 한우 쇠고기를 파는 식당이다.


이른 점심삼아 국밥이나 한 그릇 먹을까 들어섰더니 신을 벗고 들어가는 구조다. 내 신발은 찍찍이를 풀고 지퍼를 내려야 벗을 수 있다. 순간적으로 귀찮아졌다. 게다가 일반 식사보다는 고기를 굽는 단체회식 분위기인 것 같아 그냥 돌아 나왔다.


그런데 왠지 내 모습이, 마치 돈이 없어 고깃집 문턱을 돌아 나오는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쓸쓸한 배경음악이 절로 흐른다.


쉬어가는 셈 치고 식당 앞 의자에 앉아서 왼발 둘째 발가락의 물집을 터드린 후 실을 꿰었다. 물이 잘 빠지고 금세 굳은살이 잡혔던 착한 물집이다.



식당 아래로 국도를 벗어나는 길이 있다. 오가는 차가 없어 여유로운 마음으로 시골길을 터벅터벅 걷는다.



가끔씩 철길을 만난다. 상주를 지나 함창, 점촌으로 이어지는 경북선이다. 어제 상주시로 진입할 때 보았던 무궁화호가 지나는 길이다.



통증이 심해 별다른 생각 없이 그저 걸었다. 심신이 지쳐 휴식이 필요할 즈음, 함창 초입의 이안면으로 들어선다.



함창으로 진입하는 길은 1.6km에 달하는 직선 도로다. 차로 달리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아픈 발을 끌고 뻔히 보이는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 건 정말 힘들다. (7일차, 구미시 장천면 진입 직후 참조)


그러고 보면 나는 변화와 기대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공무원 생활을 하는 친구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자기 자리의 건너편에 자기의 10년 후, 그 건너편에 20년 후의 모습이 앉아 있는데 그걸 보고 있으면 때로 가슴이 콱 막힌다는 것이다.


물론 안정과 예측가능성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삶이 더없이 좋을 것이다. 나는 아니다. 그런 내게, 이런 직선도로는 그리 반가울 것이 없다. 차라리 오르막일지언정 굽이굽이 돌아가는 언덕길이 낫다.



버스정류장에는 어르신용 전동의자가 마련되어 있다. 정류장에서 마을까지 편히 들어가시라는 용도로 추정된다. 혹은 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간 어르신이 잠시 주차(?)해둔 것일 수도.



그나마 옆으로 넓게 트인 논의 눈맛이 시원하여 잠깐씩 위안을 얻는다.



함창 읍내로 들어서자 함창중고등학교가 나온다. 동네 분위기에 비해서는 캠퍼스 구조물이 상당히 모던하다.



학교 주변에는 정겨운 모습의 가게들이 눈에 띈다. 타일을 이용한 '함창문구'의 간판도 정말 옛날식이다.



근처의 '학생사'는 일종의 잡화상이다. '카메라 대여'나 '교련장비'가 학생사의 오랜 역사를 귀띔한다.



이러한 '올드감성'을 겨냥한 카페도 있었다. 언뜻 안쪽을 들여다보니 손님은 대개 나이 든 아저씨들이다. 말하자면 올드감성이기보다는 정말 '올드'한 분위기다.



'진약국' 건물 역시 타일로 마감한 예전 스타일이다. 그 와중에도 모서리를 궁굴리고 약간 돌출시킨 창틀이 세련되어 보였다. 약국 유리 밖으로 보이는 구충제 광고도 재미있다. "사랑하는 아이들 밥 주면 뭐해요 기생충이 다 먹는데", 내가 부모라도 정말 사 먹이지 않을 수 없겠다.



점심때지만 함창읍내는 고즈넉하다. 이 길이 함창읍의 가장 번화한 길이다.



갑자기 짜장면이 당겨 중국집으로 들어섰다. 짜장면과 군만두를 한꺼번에 시켜 먹은 건 20대 중반 이후 처음인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식사량이 줄었는데, 지금은 하루 종일 걷고 있으니 짜장과 만두 세트도 거뜬하다.


사실 이 집은 '짬뽕 전문점'이었다. 혹시 국물 맛이라도 볼 수 있을까 여쭈자 굴짬뽕국물 한 그릇을 가져다주셨다. 국물 맛이 깊다. 짜장면도 맛본다. 과연 '짬뽕 전문점'이라는 간판에 믿음이 갔다.



점심을 먹고 나니 두시 반쯤 되었다. 문경읍까지 가겠다는 생각은 이미 버렸다. 다만 내일의 일정을 한 걸음이라도 벌기 위해 점촌 어디쯤에서 잘 것인지 고민하면서 걷는다.


오른쪽으로 '상지여자상업고등학교'가 보인다. 학교 입구에는 졸업생의 9급 공무원 합격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이런 시골에서 상업고등학교를 나와 국가직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다만, '고졸취업 성공시대'라는 플래카드의 문구는 공무원시험 합격 축하의 내용과 맞지 않는다. '고졸취업 성공'을 외치려면 학교 교육이 취업에 직결된다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상업고등학교의 커리큘럼과 공무원 시험과는 별 관계가 없지 않은가. 아마 저 학생은 졸업 후에 공시족으로서 많은 노력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성과를 모교가 날름 낚아 채는 건 보기에 민망하다.


비슷한 경우가 내 모교에도 있었다. 2009년, 김연아가 세계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에서 역대 최고점으로 우승하자 '고려대가 김연아를 낳았다'는 전면광고가 났다. 당시 김연아는 입학한지 한 달도 되지 않았다.



함창과 점촌은 바로 붙어 있다. 그 경계 어디쯤에 '밀면, 오리, 닭칼국수'를 내세운 식당 간판을 보았다. 식당의 저의를 알기 힘들다. 나라면 오리집에서 굳이 밀면을, 밀면집에서 굳이 닭칼국수를, 닭칼국수집에서 굳이 오리를 주문할 것 같지는 않다.


아마 식당 주인은 낚싯대를 여러 개 드리운다는 생각으로 메뉴 다각화를 노렸겠지만 안타깝게도 손님들은 '메뉴'만이 아니라 '식당'까지 보는 존재다. 물고기가 아닌 것이다.


3시쯤 되어 점촌 시내로 들어섰다. 미세먼지는 다 날아갔는지 햇살이 쨍쨍하다.



우체국에서 여분의 짐을 누나네 집으로 부쳤다. 누나의 집은 내가 사는 아파트 바로 옆동이다. 속옷 여벌과 스마트폰 충전기, 다 쓸 것 같지 않은 파스 여러 장, 무엇보다 여행 첫날 기세 좋게 사서 읽었던 <영남대로> 책을 담아 보내버렸다. 한 번씩 차량을 이용하는 작가의 변칙과 결별하고 온전히 도보에만 의지하여 나만의 길을 짚어 온지 오래다.



점촌 중심부로 접어드는 길에 미싱가게가 있다. 일제의 잔재임을 모르지 않지만 '재봉틀'보다는 '미싱'이라는 이름이 입에 착 붙는다. 어법을 따지기 앞서 정서가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어르신께서 낡은 미싱을 살펴보고 계신다. 옛날 우리 집에도 어머니가 쓰시던 저런 미싱이 있었다. 사진을 찍다가 또 울컥하고 말았다.



점촌 중심가로 접어든다. 점촌은 자전거 국토종주를 하면서, 또 법륜스님이 이끄는 정토회 '깨달음의 장' 수련을 오가며 제법 낯을 익혀 둔 곳이다.



점촌의 중심부에는 '문화의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보행로를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아 천천히 거닐기 좋다. 예전에 모터사이클을 타고 포항으로 가던 길에 이 곳의 '솔베이지'에서 팥빙수를 먹은 적이 있는데, 자신이 바로 이 거리 조성의 주역이었다는 솔베이지 사장님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주인장의 개성대로 운영하는 카페로 들어섰다. 다른 곳에서 흔히 보지 못했던 메뉴 '바나나 파르페'를 주문했다.


이 곳의 바나나 파르페는 이번 여행의 세 번째 별미다. 처음엔 달콤한 휘핑크림이 바나나를 감싸더니 그다음에는 빙수, 마지막으로는 씨리얼이 깔린 디저트가 나온다. 먹어 들어갈 때마다 새로운 재미가 있다.



다시 일정을 고민해 본다. 4시 15분이니까 아직 한두 시간은 더 걸을 수 있다. 하지만 숙소가 애매하다. 점촌을 벗어나면 문경에 이를 때까지 묵을 곳이 적당치 않다.


결국 오늘은 이곳 점촌에서 마무리하기로 한다. 그렇게 마음을 먹자 갑자기 피로가 몰려온다. 잠시 팔짱을 낀 채로 눈을 붙였다.


눈을 뜨니 그새 어둑해졌다. 점촌역 근처에 있는 무인텔을 예약하고 카페를 나선다. 주인분과 바나나 파르페에 대한 얘기를 잠깐 나눴다. 예상했던 대로, 주인장이 자유롭게 시도하는 만드는 과정에서 탄생한 작품이었다.



숙소로 가는 길 '문화의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밝히는 전구들이 예쁘게 달렸다.



'무인텔'은 처음이다. 차고지 위에 방이 있고, 방문 앞에 정산 시스템이 있어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고 방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용법을 알지 못해 두리번거리다가 전화로 안내를 받고서야 방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방에 월풀 욕조가 있어 몸을 데웠다. 목욕이 끝날 때쯤 물속에서 양말과 속옷을 빨아, 잘 마를 수 있도록 방안 곳곳에 널어놓고 저녁을 먹으러 다시 점촌 거리로 나섰다.


아까 들렀던 카페 옆에 동네 빵집이 있다. 특히 '고구마빵'이 맛있다. 이 빵을 사기 위해서라도 점촌에 다시 갈 용의가 있다.



거리는 한산하다. 날씨가 추워서이기도 하겠지만 지방 소도시의 저녁 풍경은 대개 비슷하다.



요리안주와 술을 파는 곳에서 목살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잘게 썬 목살구이와 감자튀김까지, 저녁 한 끼로는 충분하다. 목살이 조금 탄 것이 아쉬웠지만 맥주 한 잔을 곁들이자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식사가 되었다.



숙소로 돌아와 자리에 누웠다. 이제 내일이면 문경새재를 넘는다. 이번 도보 종주의 최대 고비다. 새도 쉬어 넘어간다 해서 '새재', 한자로 '조령(鳥嶺)'이다. 심리적으로 새재를 넘으면 이번 여정도 '꺾일' 것 같다.


출발할 때 전체 일정으로 보름 가량 예상했는데 오늘이 벌써 9일째다. 지도상으로 문경은 서울과 부산의 중간쯤이니 생각보다 오래 걸린 셈이다.


하지만 부산에서 문경까지는 강을 따라, 혹은 산을 넘어오느라 상대적으로 발걸음이 더뎠다. 반면 문경새재를 넘으면 서울까지는 비교적 평지가 이어진다. 한결 속도가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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