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두 번째 학사 학위를 받았다. 정확히 말하면 두 번째와 세 번째다. 학위증에는 문학사(심리학)와 신학사(신학) 두 가지 전공이 나란히 적혀 있다. 이로써 나는 세 개의 학사(정치학사, 문학사, 신학사)와 한 개의 석사학위(정치학석사) 소지자가 되었다.
자랑과는 거리가 멀다. 정치학도 또래보다 늦게 공부했는데 심리학과 신학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만학(晩學)이었다. 코로나 때는 그나마 마스크 덕을 보았다. 마스크를 벗게 되자 강의실에서 나오는 학생들이 내게 반사적으로 인사를 했다. 몇몇 교수님은 나를 조용히 불러 '호칭을 뭐라고 하면 좋겠냐'고 물어보셨다. 오늘 학위증을 받으러 가자 '본인이 직접 오셔야 된다'기에 빙긋 웃었다.
만학이 창피하지는 않았지만 간혹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거지' 싶을 때가 있기는 했다. 그럴 때면 공자님 말씀을 떠올렸다. "子曰 十室之邑 必有忠信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 : 만약 열 집이 모인 마을이 있다면 그중 나만큼 진실하고 믿음직한 사람은 반드시 있을 것이지만 나만큼 배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 나도 배움을 좋아하는[好學] 사람이었다. 이걸로 뭘 어떻게 해 보겠다는 생각은 없어도, 그저 새롭게 배우는 심리학과 신학이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그런데 신기도 하지, 그저 '호학'했을 뿐인데 '뭘 어떻게 해 보고싶다'는 마음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배운 것들이 파지직 파지직 엉겨붙으면서다. 심리학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방법, 그리고 힘든 마음을 돕기 위한 여러 가지 도구를 배웠다. 신학에서는 이성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끄트머리의 사고, 거기에서 피워낸 지고(至高)의 가치들을 배웠다. 두 영역이 얽히자 심리학에 신학적 영성을 접목하여 심리학의 효용과 신학의 구체성을 높이는 쪽으로 생각의 덩어리가 공처럼 뭉쳐지기 시작했다. 이곳 브런치에 '心神일원론'(지금은 '心神'으로 줄였다)이라는 컨셉으로 올리는 단편들의 시작이었다.
이 생각 뭉치는 어디로 굴러갈까? 아쉽게도 학부 4년은 덩어리가 구르기엔 다소 짧았다. 조금 더 살을 붙이면 확실히 방향을 잡겠지 싶어 올해는 지금까지 배운 심리학과 신학을 총정리해 볼 계획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심리학 석사로 혹은 신학 석사로, 아니면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데굴데굴 눈덩이처럼 커져갈 것이다. 그렇게 나의 '호학'이 쓸모를 더해 가길, 하나의 마무리와 함께 희망하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