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이 뜨거워 잠을 설쳤다. 그 와중에 대학시절 잠깐 만난 사람이 꿈에 나타났다. 아침을 먹으면서 TV를 보는데 거기에도 나왔다. 내가 예지몽을 다 꾸어본다.
즉석북어국에 즉석밥과 삶은 달걀을 넣어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어제 산 사과가 후식으로 제격이다.
나설 채비를 하다 보니 오른쪽 발목이 눈에 띄게 부어있다. 오른쪽 발바닥의 통증이 심해 발바닥에 들어가는 힘을 분산시키려 발목에 힘을 쓰다 보니 무리가 누적됐다. 하지만 방도가 없다. 파스 한 장을 돌려 붙이고 양말을 신었다.
8시 40분이 조금 넘어 방을 나선다. 어젯밤에는 보이지 않던 숲 속 풍경이 포근하다.
사무실에 열쇠를 반납하고 휴양림을 나섰다. 세미나를 온 듯, 사원증을 목에 건 채 숲 속을 산책 중인 직장인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내리막길 주변으로 찻집이나 펜션같은 위락시설이 눈에 띈다. 좀 더 아래쪽에는 '이화여대 고사리수련관'이 있다. '고사리'는 나물이 아니라 동네 이름이다.
<영남대로가 깨어난다>의 인터뷰에 의하면, 옛날 이 근처를 지나던 상민들은 주로 대안보 마을 또는 조령길의 역촌(驛村)에 묵었다. 그래서 양반들은 상놈들을 피해서 대안보와 역촌 '고 사이'에서 잤는데, 그게 '고사리'로 굳었다는 것이다. 장난끼 섞인 듯한 민간 어원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오랜만에 짖지 않는 강아지들을 만났다. 길게 철사를 매어 놓고 그 철사에 목줄을 걸어 행동반경이 꽤 넓다. 다만 줄이 얽혀 본의 아니게 동행이 된 탓인지,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예쁘게 지은 펜션건물 너머로 아침햇살을 받는 산자락이 싱그럽다.
언뜻 보아도 범상치 않은 나무가 있다. 호랑이가 쉬어 갔기에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로 영험을 얻었다. 바로 옆에는 어사또가 쉬어간 자리 표석이 있다. 백성 입장에서는 호랑이나 어사또나 비슷하지 않았을까? 둘 다 소원을 들어줄 수도,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존재들이다.
길은 '소조령길'로 이어진다. 낯이 익다. 자전거 국토종주 때 지났던 길이다. 오늘 여정은 당시의 자전거길과 많이 겹친다. 방향만 반대다. 길 위로 아침 그림자가 길게 드리웠다.
한 시간 가량 이어진 내리막의 끝에서 큰길로 접어들었다. 휴게소 간판이 보인다. 실은 조금씩 배가 아파오던 참이다. 어젯밤 짜게 먹은 라면과 맥주가 탈이 난 것 같다.
급한 일로 들른 휴게소는 의외로 색다른 매력이 있었다. 식당과 카페, 매점이 함께 자리 잡은 1층 매장에는 옷가지와 액세서리를 비롯, 다양한 물품들이 정연하게 배치되어 있는데 '매대'보다는 '진열장'의 느낌이 강하다. 과자마저 진열장 안에 차곡차곡 담은 정성에서 주인장의 철학이 느껴진다.
큰길을 벗어나면 '대안보 마을'이다. 배춧값이 폭락해 수확도 하지 않은 배추를 내버려 두거나 갈아엎는 곳이 많다더니 여기도 그랬다. 애써 기른 작물을 방치해야 하는 농부의 마음이 안쓰럽다.
대안보를 지나 언덕을 내려가니 수안보가 나온다. 온천으로 유명한 바로 그곳이다. 마을 입구(반대방향으로 본다면 마을 끝자락)에는 수안보 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마을 안쪽 모습은 여전했다. 자전거 국토종주를 할 때 이곳 식당에서 점심으로 올갱이국을 먹었다.
대로변 안쪽 붕어빵 가게 앞에 할머니몇 분이 모여 계신다. 주인 아저씨가 붕어빵을 굽는 동안 입심좋은 주인 아주머니는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도 슬쩍 끼어 앉아 붕어빵을 받아 들었다.
그러면서 사장님 내외와 이야기가 시작됐다. 오는 길에 수안보 성당을 보았다고 하자 아주머니는 자신이 천주교 신자라며 어렸을 때 성가대 활동을 했던 이야기, 수안보 성당에서 밀가루와 사탕을 나눠 주었던 이야기, 지금의 남편(붕어빵 사장님)도 신자라는 말씀 등 종교 활동에 대한 이력을 쭉 풀어내셨다.
그러다 불쑥 '팥죽을 좀 먹겠느냐'고 하신다. 마침 이 날은 동지였다. 아는 스님께서 매년 팥죽을 쑤어다 주시는데, 그 맛이 좋다며 한 그릇 권하신다.
천주교 신자인데 스님께 팥죽을? 반가운 마음에, '저도 천주교 신자이면서 불교 공부를 같이 합니다'고 하자 아주머니도 그렇다고 하셨다. 두 종교의 진리는 결국 같다는 점에서도 나와 생각이 일치했다.
밝은 모습의 아주머니는 뜻밖에도 자신이 말기암 환자라고 했다. 한 번 발병했다가 나았으나 재발해 지금도 치료 중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담하고 당당하게 이야기를 이어가는 모습은 오랜 신앙생활과 굳건한 투병생활의 산물로 보였다. '매일 잠드는 것이 곧 죽는 연습'이며, 다음날 감사히 깨어나면 그게 곧 죽음과 부활의 체험이라는 말씀에도 깊이 공감했다.
한때 관상 공부도 많이 했다면서, 내 얼굴을 찬찬히 보더니 '끈기가 있지만 때로는 없기도 하니 약해질 때마다 오뚝이처럼 살아가는 나(아주머니)를 생각하면서 힘을 내라'고 하신다.
말씀하시는 모습이 어머니와 많이 닮았다. 마침 아주머니의 세례명도 어머니와 같은 '세실리아'다. 어릴 적 성가대 활동을 했던 것도, 암을 겪은 것도, 하물며 말투나 풍채도 어머니와 비슷했다. 게다가 조용히 붕어빵을 굽다 한 마디씩 거들던 주인아저씨의 모습은 아버지와 많이 겹쳤다. 자꾸 그렁그렁 솟는 눈물을 밀어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모든 말씀에 동의가 된 건 아니다. '보조개가 있어 바람기가 있다'는 진단에는 갸웃했다. 하지만 '부족함은 없을 것이로되 물질에 대한 욕심을 너무 내려놓으려 하지 말라'는 말씀에는 크게 공감했다. 마침 이번 여행 중에도 비슷한 생각을 하던 차였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30분이 훌쩍 지났다. 이제 일어나야 한다. 꼭 다시 찾아뵙겠다는 인사를 드리고 사진을 청했다. 봄이 오면 모터사이클을 타고 찾아갈 것이다. 그때는 아주머니께 여름용 모자를 선물할 생각이다.
붕어빵과 동지 팥죽, 따뜻한 이야기 모두 뜻깊은 만남이었다. 두 분 내외께 깊이 감사한다.
달천의 지류를 따라 충주로 향한다. 날이 무척 따뜻하다. 이날 낮 기온은 거의 12도에 달했다.
길가에 웃는 낯으로 서 있는 공사안내 인형이 왠지 안쓰러워 잠시 친구가 되어 준다.
충주는 일조량이 풍부해 과일 재배에 유리하다. 남부지방에서 나던 복숭아도 최근에는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충주에서 많이 생산된다. 길 오른편으로는 복숭아, 왼편으로 사과밭이 이어진다.
그런데 사과나무의 모습이 애잔하다. 대부분의 사과나무는 그리 굵지가 않았다. 여린 몸에서 많은 사과를 생산하려니 무게를 지탱하기 어려웠을 터, 그래서 사과나무는 대부분 철봉에 몸을 묶어 버티고 있었다.
그 모습에 얼마 전 보았던 '강아지 공장' 동영상이 떠오른다. 서너 살밖에 되지 않은 강아지들이 좁은 우리에 갇힌 채 성기가 너덜너덜해지도록 새끼를 낳고 빼앗기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사과는 식물이라 괜찮은 것일까? 제 몸 하나 가누기도 벅차 보이는 사과나무를 철봉에 칭칭 묶어 사과가 주렁주렁 달리도록 하고, 이걸 똑똑 따 가는 모습에서 강아지 공장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면 내가 과민한 걸까?
인간의 측은지심이 동물까지 확대된 건 오래지 않은 일이다. 그러고 보면 언젠가 식물까지 아우르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조금은 몽롱한 기분으로 터벅터벅 걷는다. 아마 날이 따뜻해서 그런 것 같다.
여기도 사과밭이다. 꼭대기에는 일부러 따지 않은 듯 묵은 사과가 매달려 있다. '까치밥'이다. 까치나 까마귀들에게 베푼 인간의 인심이라 할 것이다...
... 그렇게 낭만적인 생각을 하다 화들짝 놀랐다. 사과밭 기둥에 까마귀 한 마리의 사체가 거꾸로 매달려 있다. 혹 줄에 엮여 실수로 죽은 것인가 자세히 보았더니 발목을 단단히 묶어 매단 흔적이 뚜렷하다.
그렇다면 의도는 분명하다. 이건 새들에 대한 '경고'다. 몽롱한 상태에서 까치밥의 낭만에 빠져 있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긴, 농민의 입장에서는 애써 기른 과일을 새들이 와서 쪼아 먹는 게 얼마나 속이 상했을 것인가. 그런데 과연 이 '경고'의 사인이 까마귀나 까치에게 정말 효과가 있는지, 몹시 궁금하다.
보는 사람에 따라 불편할 수 있어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
날은 따뜻하지만 미세먼지가 심하다. 저 앞으로 보이는 풍경이 뿌옇다.
두 시가 넘었다. 붕어빵과 팥죽 덕에 배가 아주 고프지는 않다. 그래도 한숨 돌릴 겸 도로변에 앉아 빵을 꺼냈다. 점촌에서 샀던 고구마빵이다. 사과를 곁들이니 그런대로 든든하다.
기운을 차리고 다시 걸은지 오래지 않아 '수주팔봉'이 나타난다. 이곳에는 말 그대로 꿈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조선 철종이 꿈을 꾸었다. 여덟 개의 봉우리가 있는 물가에서 발을 담그고 노는데 마치 신선이 된 것 같더란다. 꿈에서 깨어 실제로 그런 곳이 있느냐고 주변에 묻자, 영의정이 '충주의 수주팔봉입니다'라고 해서 왕이 친히 예까지 찾아와 물놀이를 즐겼다는 것이다.
원래는 병풍처럼 산이 늘어서 있었지만 일제가 지맥을 끊고 물길을 돌리기 위해 한 자락을 뜯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사라진 능선 위로 구름다리가 놓였다. 그 아래 물길을 '팔봉폭포'라 부르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수량도 상당하다.
길은 수주팔봉을 끼고돌아 반대편으로 이어진다. 맞은편에서 본 수주팔봉의 모습이다.
근처 언덕에 작은 마을이 있다. 풍광이 좋아 선비들이 과거준비를 하던 곳이다. 지금은 할머니들만 오가실 뿐이나 옛날에는 서원까지 들어섰던 선비의 고장이다.
할머니들께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넸더니 한 분이 '팔에 뭐가 그리 붙어있느냐'고 하신다. 홀씨들이 다닥다닥 붙었다. 잠깐 볼일을 보러 숲 속에 들어간 사이 묻어 온 모양이다. '감사합니다' 인사하고 옷을 벗어 하나씩 떼어 냈다. 마침 복슬복슬한 재질이라, 홀씨에게는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충주로 향하는 이 강의 이름은 '달천'이다. 물맛이 달아 그런 이름이 붙었다. '달래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이행이라는 사람은 물맛을 감별하기로 유명했는데,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물이 충주 달천이고 둘째가 한강의 우중수요 셋째가 속리산의 삼타수라 했다.
그런데 '달래내'라는 이름의 기원에는 다른 버전도 있다. 옛날 젊은 오누이가 이 근방에 살았는데, 하루는 누이가 강물에 빠져 흠뻑 젖었다.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난 누이동생의 모습을 오라버니가 보았겠다.
그도 남자였던지라 욕정이 솟구쳤는데, 여동생에게 그런 마음을 먹은 자신이 죄스러워 괴로워하다가 결국 낫으로 그곳을 잘라 자결하고 말았다.
그러자 누이동생이 슬피 울면서, "한 번 달래나 보지... 달래나 보지!"
그래서 달래내가 되었다는 것이다.
아침에 지나온 '고사리'급의 민간 어원일 것이나, 진위 여부를 떠나 조상들의 아재개그식 상상력이 흥미롭다.
달천을 따라 걷는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다. 해가 저물때쯤에야 충주 시내로 향하는 길로 올라선다.
오늘 숙소는 충주시내 성서동 '젊음의 거리' 인근 모텔이다. 4km 이상 시내로 들어갔다가 내일 다시 돌아 나와야 한다. 여러 번 지도를 들여다 보아도 다른 방도가 없다. 이럴 땐 시내 구경하는 셈 치고 마음을 편히 먹는 게 제일이다.
이 날은 동지인 동시에 보름이었다. 멀리로 붉은색 보름달이 떠 오른다.
날이 어두워질수록 달은 한층 탐스러워졌다. 시내로 향하는 어느 언덕, 소박한 식당 골목 위의 보름달은 아련하면서도 정겨웁다.
발이 아파 버스정류장 벤치에 앉아 발을 주무른다. 해가 지면 통증이 더 심해지는 느낌이다. 그나마 외진 곳이 아니어서 걷기에 지루하지는 않다.
드디어 숙소 인근까지 왔다. 유흥가 밀집지역이다. 지도상으로 모텔이 밀집해 있기에 예상은 했다. 이 동네 유흥주점의 모토는 온통 '미시'다.
6시 15분쯤 숙소에 들어섰다. 이곳도 무인텔이지만 구조는 일반 모텔과 차이가 없다. 다만 주인이 직접 응대하지 않고 키오스크에서 방을 배정받아 올라가는 시스템이다.
나는 예약을 하고 온 상황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머뭇대고 있는데 다행히 주인아주머니와 마주쳤다. 키를 받아 방으로 올라간다.
근처 상가 밀집지역인 '젊음의 거리'('문화의 거리'이기도 함)로 저녁을 먹으러 나섰다. 토요일 저녁의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로 제법 붐빈다.
안쪽 공터에서는 방금 무슨 공연이 끝난 모양이다. 구경을 마친 청소년들이 삼삼오오 골목을 누비고 다닌다.
4D 입체 게임장의 유리 안쪽에 '사법적폐 청산하자', '양승태를 구속하라'는 시위용 피켓이 붙어 있다. 일반적으로 이런 오락 관련 영업장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인데, 그만큼 주인의 신념이 확고하다는 뜻이다.
8시 반쯤 되었다. 저녁 메뉴를 파스타로 정하고 식당에 들어섰다. 그런데 벌써 파장분위기다. 이번 여행에서 확실히 느낀 바, 지방은 대개 8시 반이 영업의 변곡점이다.
9시까지는 주문을 받는다기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변에는 학생들이 두어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다. 학생이 주 고객인지, 전반적으로 가격이 저렴했다.
가장 잘 나가는 메뉴를 추천받아 '로제스페셜 스파게티'를 주문하고 맥주를 한 병 곁들였다. 또띠아에 담겨 나온 스파게티는 가격(8,900원)대비 품질이 괜찮았다.
저녁을 먹고 나섰는데 아까 배회하던 아이들은 아직도 골목을 돌고 있었다. 깔깔대며 돌아다니는 것만도 좋을 때긴 하지만 한편으로 안쓰럽다. 우리나라 청소년은 여가 시간에 도무지 갈 곳이 없다.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며 오늘 일정을 정리했다. 곧장 숙소로 들어가기엔 왠지 허전하다. 마침 길가에 이국적인 느낌의 바가 눈에 띄었다. 맥주 한 잔만 할 요량으로 들어섰다.
가게 안쪽 벽에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수집해 온 기념품이 가득하다. 알고 보니 주인 아저씨는 대단한 여행가로,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게 취미라고 한다. (가게 이름인 '카오산'부터가 태국의 유명한 관광거리다.) 자연스럽게 여행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특히 놀란 것은 사장님의 사진이다. 벽면 곳곳에 전문가의 솜씨로 여겨지는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모두 사장님의 작품이었다. 특별한 이론 공부를 한 적도 없다. 그저 수많은 사진을 찍으면서 경험으로 모든 걸 터득했다는 것이다.
작품에 감탄하고 있노라니 화보집 한 권을 꺼내 보여 주신다. 세계를 누비며 직접 찍은 사진들을 모아 엮었다. '자식에게 물려 줄 것은 오직 이것'이라며 의미와 자부심을 가득 담아 말씀하신다. 사진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았다.
맥주 한 병의 짧은 시간동안 여행 이야기, 사진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공감대가 쌓였다. 아쉽지만 내일 일정을 고려해, 봄에 다시 찾아뵙기로 기약하고 일어섰다. '가게 3년간 본 손님 중 가장 에이스'라 하신다. 다음엔 맥주 열 병이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마음이 뿌듯하다. 수안보에서도 충주에서도, 오늘은 사람들과의 이야기가 참 좋은 날이다. 이런 게 바로 사서 하는 고생의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