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차 : 충주에서 충북 음성 생극면까지

2018년 12월 23일

by 김정환


8시쯤 숙소를 나섰다. 일요일 아침 충주 거리는 한산하다. 충주천으로 흘러 들어가는 개천을 건넌다. 달천과 남한강, 충주호로 에워싸여서인지 충주는 물이 흔하다.



골목 언덕길에 계단이 촘촘하다. 부산에 있는 '40계단길'이 연상된다. 이곳의 이름은 '사과나무 이야기길'이다.


아래 보이는 사진이 부산의 40계단길이다. (사진출처 : 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산한 충주의 아침을 걸으며 오늘 일정을 구상해 본다.


길 건너에 빨간색 건물이 눈에 띈다. 충주 음악창작소 '뮤지트'다. 음악(music)과 아지트(azit)가 만나 멋진 이름이 되었다. 공연장과 연습실, 녹음시설을 두루 갖췄다고 한다. 유명한 뮤지션들도 이곳을 찾아 꽤 작업을 했던 모양이다.


이처럼 훌륭한 시설이 왜 하필 충주에? 싶기도 하지만 음악을 좋아하고 육성하는 데에 좋은 곳이 따로 있을 리 없다. 자고로 우리는 가무에 능한 민족이 아니던가.



시내를 벗어나자 달천교까지는 멀고 먼 직선길이다. 길의 좌우엔 넓은 평지가 펼쳐졌다. 달천이 만든 범람원이다.


범람원이란 홍수 때 하천이 범람하면서 토사가 쌓여 만들어진 평평한 지대를 말한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곳은 달천의 범람에 의해 만들어진 '달천평야'다.



달천교로 향하는 길에서 드디어 '서울'을 보았다. 부산에서 출발해 여기까지 오는 동안 처음 본 서울 표식이다.



달천평야를 가로지르는 직선길을 2km 넘게 걸어 달천을 건넌다. 다리에서 머지 않은 곳에서 달천은 남한강과 만난다. 미동도 없는 수면 위로 오리 두 마리가 미끄러지듯 나아가고 있었다.



일요일 아침엔 늘 배가 고프다. 간간이 보이는 식당도 오전에는 문이 닫혀 있기 일쑤다.


반갑게도 일찍 문을 연 곤드레밥집을 만났다. 주문을 하자마자 신발을 벗고 발을 주무르면서 밥이 나오길 기다린다. 갓 지은 돌솥밥으로 정말 오랜만에 제대로 된 식사를 했다.



배가 든든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한결 기운을 내어 국도를 걷는다. 문경새재에서 헤어졌다가 오랜만에 다시 만난 3번 국도다. 그때는 '문경대로'였는데 지금은 '중원대로'가 되어 있다.



충주는 사과 홍보에 적극적이다. 먹음직스런 사과 구조물도 재미있다.



하지만 국도는 역시 지루하다. 신양교차로에서 주덕읍으로 빠져 나왔다. 이러면 비교적 국도와 평행하게 가면서도 다시 국도로 올라설 때까지 13km 정도를 시골길로 걸을 수 있다.


주덕읍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에 보도블록이 깔려 있다. 어릴적 살았던 가리봉동 골목이 바로 이랬다.



읍내로 들어서자 시장통이 이어진다. 매우 쉽고 직관적인(?) 영어 간판은 이 동네에 외국인 노동자가 많다는 증좌다. 밀양의 비닐하우스 밀집지역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외국인들을 많이 만났다면 여기부터는 주로 공업 종사자들이다. 수도권이 가까워오고 있는 것이다.



일기예보에서 낮부터 바람이 많이 분다더니 정말로 12시에 주덕읍내를 벗어나자 바람이 심해졌다. 게다가 발이 몹시 아프다. 아침을 먹고 여기까지 한 시간 반쯤 걸었다. 버스정류장에 앉아서 신발을 벗고 발을 주물러 준다.


정류장에도 충주 사과를 선전하는 사진이 붙어있다. 어찌나 탐스러워 보이는지 나도 모르게 입맛을 다신다.



신니면 쪽으로 걷는 나를 향해 택시기사님이 태워주겠다고 손짓을 하신다. 돈을 안 받겠다는 제스처가 아니었어도 표정에서 이미 호의란 걸 알았다. 감사히 사양하고 꾸벅 인사드렸다. 날은 춥지만 사람들은 따뜻하다.


반면 신니면은 휑하게 나를 맞았다. 얼추 점심때도 되어 근처에서 점심을 해결하려 했으나 이렇다 할 식당이 보이질 않는다.



잠깐 길을 헤매다 만난 용원초등학교 앞에는 만세운동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다. 3.1 운동 직후인 4월 1일, 이곳 주민 200여 명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운동을 했는데 이를 기념하려 1985년 '신니면민 만세운동 유적비'를 세우고 2006년부터 만세운동 재현행사를 해 오고 있다.



점심을 거른 채 찬바람을 맞으며 아픈 발로 딛고 가려니 힘들다. 설상가상, 어느새 나타난 저수지로부터 찬바람이 무방비로 날아든다.


걷는동안 야놀자 앱을 통해 숙소를 예약하자 모텔 주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신은 제휴를 중단했는데 오류가 발생한 것 같다며, 야놀자 측에 전화해 예약을 취소해 달라고 했다.


내게는 숙소 확보가 가장 중요한 일이다. 힘겹게 도착했는데 방이 없다고 하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모텔 주인에게 현장 결제로 방을 잡을 수 있다는 약속을 받고 예약을 취소했다. 바람이 많이 불어 통화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저수지 옆을 지나는 동안, 찬 바람이 쉴 새 없이 밀려 온다.


시간은 세 시를 넘겼다. 간단한 요기라도 해야겠다. 마침 버스정류장이 있다. 먼지앉은 소파 대신 나무의자에 앉아 초코바와 사과를 먹었다. 잠시라도 바람을 피하면 좋으련만, 뻥 뚫린 벽으로 찬바람은 야속하게 몰아 닥쳤다.



지금 지나는 곳은 '모도원'이다. 지명상 여기도 옛날 원(院)이 있던 동네로 추정된다. 하지만 내게는 '일모도원(日暮途遠 : 해는 지는데 갈 길은 멀다)'으로 보인다. 4시를 갓 넘겼지만 동지 다음날이라 해는 벌써 기운을 잃어 간다. 무엇보다 바람 등쌀에 너무 춥다.



그 와중에 길 옆 당산나무가 눈에 띄었다. 나뭇가지에는 누군가 간절함을 담아 연등을 달아 두었다.


하지만 이건 '어색한 동거'다. 당산나무는 동식물에 영적 인격을 부여하는 토테미즘의 전형이다. 반면 연등이 상징하는 불교는 이른바 '고등종교'다.


종교학에서는 고등종교의 조건을 경전이 있는지, 그리고 '자기부정'을 하는지로 구분한다. 자기부정이란 자신을 비우고 성찰하는 태도를 말한다. 즉 고등종교는 유형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내면적 성찰을 지향한다.


토테미즘은 그렇지 않다. 신령하다고 여기는 동물 또는 식물에 가족의 건강, 로또 당첨, 월급 인상 등 무엇이건 자신이 바라는 '외부의 것'을 투영한다.


지극한 소원이 문제 될 것은 없으나 주소를 잘못 찾았다. 부처님은 소원성취의 비결을 가르친 바 없건만 엉뚱하게 나무에 매달려 사람들의 절을 받고 있다. 하긴,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라면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가는 사람(?)에게도 소원을 비는 게 세상 인심이긴 하다.


당산나무+연꽃의 조합은 아마도 불교가 오랜 시간 사람들의 삶 속에 같이 하면서 기복적 신앙과 결합한 결과일 것이다.
위 사진은 다음날 경기도 안성에서 찍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불교를 상징하는 만(卍)자와 소원을 비는 신령님이 함께 하고 있다.


이제 다시 국도를 타야 한다. 국도로 진입하기 전 급히 볼일을 보러 배수로로 내려갔더니 동물 사체 두엇이 나뒹굴고 있었다. 형상으로 보아 어디선가 죽은 후 여기로 내던져진 것 같다. 이럴 때는 날씨가 추운 게 다행이다. 무더운 여름이었다면 끔찍한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다시 올라선 3번 국도에는 일요일이라 그런지 차량이 많지 않았다.



국도에서 마을로 이어지는 계단이 재미있다. 자주 보지 못한 일종의 '국도 개구멍'이다. 복잡한 진출입로 없이 바로 마을로 이어지는 통로다.



생리교차로까지 왔다. 오늘의 목적지인 충북 음성 생극면으로 가려면 이 길을 계속 따라가도 된다. 하지만 여기에서 샛길로 빠지는 게 더 빠르다.



발이 너무 아파 국도를 벗어나자마자 길가에 주저앉아서 발을 매만졌다. 간간이 차가 오가는 조용한 길이지만 여기도 연말 도로공사를 피할 수는 없었다.



5시 40분경, 드디어 생극면이다. 해가 지는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홀로 우뚝 선 교회 첨탑이 어쩐지 경외롭다.



저녁을 먹으러 읍내로 들어섰다. 보이지 앉는 어둠 속에서도 개는 용케 짖어댄다.


골목을 지나자 '아시아 마트'가 보인다. 그렇다면 이 동네는 외국인 노동자의 밀집 지역임에 틀림없다.



발이 몹시 아프고 굉장히 지친 터라 당장 눈앞의 뼈해장국 식당으로 들어섰다. 식당에 손님은 나를 제외하면 다른 테이블에 앉은 남자 두 명이었다. 서빙을 보는 아주머니와 손님 두 명 모두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한국인은 나와 주인 아주머니 둘 뿐이다. 주방에 계신 분은 국적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외국인 노동자가 서빙하는 뼈해장국을 외국인 노동자들이 먹는다. 주문과 반찬 추가 요청은 모두 한국말이다.


그러고 보면 '세계화'는 지방이 더 앞서있다. 우리는 세계화라고 하면 백인부터 떠올리지만 186만에 달하는 우리나라 거주 외국인의 대다수는 외국인 노동자 또는 결혼 이민자들이다. 서울에서는 이들을 보기 쉽지 않다.


그리고 지방 소도시에서 외국인들은 '손님'이 아니라 대등한 '주민'이다. 노동자인 동시에 소비자다. 뉴스에는 간혹 악덕 업주 이야기도 나오지만, 그러니까 '뉴스'가 되었을 것이다. 이곳 식당 주인 아주머니도 국적과 관계없이 손님에게 친절하다. 원주민들은 외국인 노동자와 함께 살아간다. 세계화가 관념이 아닌 실체라면, 이곳이야말로 세계화의 살아있는 현장이다.


계산을 하면서 주인아주머니와 잠깐 여행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 '혹시 근처에 맛있는 치킨집이 있느냐'고 물었다. 오늘따라 치킨 생각이 간절했다. 아까 식당으로 오는 길에 언뜻 눈에 비쳤던 치킨집 때문이다.


전화번호를 받아 들고 식당을 나서는 나를 조심히 여행하라며 아주머니가 문 앞까지 배웅하신다. 감사하다.



편의점에서 맥주 두 캔을 사 숙소로 향한다. 가로등도 하나 없는 어두운 밤길을 조심스레 더듬어 간다.



7시가 조금 안되어 숙소에 도착했다. 이곳도 무인텔이다. 욕조가 있는 5만 원짜리 방을 잡았다. 다른 방엔 욕조 대신 안마의자가 있으나 내겐 온몸을 뜨겁게 확 풀어줄 욕조가 간절했다.


재미있게도 욕조가 방 안에 있다. 욕실에서 바디샴푸를 한 컵 받아다 TV를 보면서 느긋하게 거품목욕을 즐겼다.



아까 해장국집 아주머니께 받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치킨집 사장님의 개인전화다. '어떻게 번호를 알았느냐'기에 아주머니께 소개받았다고 했다. 그렇게 '인맥'으로 파닭 한 마리를 주문했다.


초인종이 울려 문을 열자 배달원에게 묻어 온 한기가 왈칵 밀려든다. 해가 지고 나서 더 추워졌다. 나도 모터사이클을 타는 입장이라 이 날씨에 배달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지 짐작되었다. 추운 날씨에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닭을 받았다.



파닭은 상당히 맛이 있다. 다만 혼자서 다 먹기에는 무리라 2/3쯤 먹고 덮었다.


오늘 대략 34km를 걸었다. 날이 춥고 국도가 길어 평소보다 더 힘들었다. 그래도 여정이 조금씩 막바지로 접어드는 느낌이다. 일정을 정리하고 자리에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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