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겪고 생각하고 기록한다
번외편(3) : 발
발이 중허다
by
김정환
Jun 29. 2019
우리 속담에 '내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라고 했다. 단언컨대 도보 여행에서는 '발이 구백 냥'이다. 종주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피로도, 추위도, 외로움도 아닌 발의 통증이었다. 발만 괜찮았다면 서울역을 돌아 다시 부산까지
되짚어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도보 여행을
위해서는
우선 신발을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 물론 수백 킬로미터를 걷다 보면 무엇을 신더라도 물집과 통증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신발에 따라 그 정도를 줄일 수는 있을 것이다.
당연히
가볍고 푹신해야 한다. 그러나 천으로 된 러닝화는 처음부터 제외했다. 발이 시려울 수도 있거니와 비나 눈에 젖으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신어보다 결국 모터사이클을 탈 때 신던 부츠를 택했다. 기본적인 방수가 되고 발목까지 보온할 수 있으며 바닥이 두꺼워 눈길이나 흙길도 견딜 만했다.
모터사이클을 탈때만 신느라 거의 새것이었던 신발 여기저기에 종주의 흔적들이 남았다.
하지만 쿠션이 충분치 않은 게 단점이다. 첫날부터 발바닥에 이상 징후가 왔다. 생각해 보니
이걸
신고
오래
걸어
본 적은
별로 없다.
'신발을 잘못 선택했나'
싶었지만
'옛날
사람들은
짚신 신고도 다녔는데 이게 어디냐'라고 생각하니 견딜 만했다.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
뭐든 마음먹기 나름이다.
양말은 두툼해야 한다. 신발과 발 사이 공간을 채워 발이 놀지 않게 잡아준다. 쿠션감도 중요하다. 첫날 두꺼운 양말로 갈아 신은 후(1일차 참고) 여벌로 챙겨갔던 얇은 양말은 싹 버렸다.
첫째 날 노점에서 구입한 두꺼운 양말
처
음 물집이 온 곳은 오른발 둘째 발가락 바로 밑이다. 둘째 발가락 아래에 있던 굳은살이 그 위쪽 피부를 밀어 올려 마찰에 노출시킨 것 같았다.
뜨겁고 쓰리다. 마치 돌조각이 박힌 듯하다.
2일차, 양산 스타벅스 화장실
발의 통증이 심할 때는 다른 데에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다. 눈은 앞을 보지만 주의는 온통 발바닥에 가 있다. 견문(見聞)을 위해, 혹은 사색을 위해 걷고 있는 여행자로서는 이 점이 가장 안타깝다.
출발부터
물집을 예상하고
반짇고리를 챙겨 갔다. 바늘에 실을 꿰어 물집을 관통시킨 후 압박을 가하면 물이 빠져 나온다. 잔여 진물이 배어나올 수 있도록 실을 남겨 놓은 채로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인다.
3일차, 밀양
오래 걷다 보면 발톱이 깨지기도 한다. 그것만으로도 꽤 아팠을 텐데 발바닥의 고통에 묻혀 깨진 줄도 몰랐다. 물집을 살피느라 양말을 벗었다가 '어? 이거 뭐야?' 하고는 대일밴드를 감아 붙였다.
8일차, 구미에서 상주가는 길
오른발이 왼발보다 통증이 심했다. 어떻게든 고통을 줄여보겠다고 다양한 시도를
한다
. 발바닥의 무게중심을
좌우로도, 앞뒤로도
옮겨
보다가
어느 순간
발을 가볍게 뒤로 차올리듯 걸으니 그나마
나은 것 같았
다.
그게 어떤 원리로 통증을 줄여주었는지 모르지만 아킬레스건에는 부담이 되었다. 세상에 공짜가 없는 것이다. 여행이 끝날 때까지 오른쪽 발목은 내내 부어 있었다.
걸을수록 물집의 범위는 넓어지고 위치도 깊어진다. 그런데
언젠가
부터 진물이 잘 나오지
않는
다. 여기저기 탐침봉(?)을 찔러야 간신히 한두 방울을 뽑아낼 수
있었
다.
그럴 땐
조바심이
난
다. 물을 짜내야 통증이 덜할 것 같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물이
고였
던
공간에
굳은살이
채워지는 중이었다. 사진을 비교하면 확연히 드러난다.
13일차
아침까지도
허옇게 떠 있던 물집 자리가
16일차
저녁에는 피부와 비슷한 색깔로 변해 있다.
위의 사진은 13일차(12월 24일) 아침, 아래는 집에 도착한 12월 27일의 사진이다.
걷지 않으면 통증은 금방 가라앉는다. 집에 도착한 다음 날부터 큰 불편이 없었다. 쿠션이 좋은 운동화로 갈아신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물집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는 한 달 가량 걸렸다. 마치 페스츄리처럼 굳은살과 껍질이 겹겹이 떨어져 나온다.
그 모습이 왠지 서운하다. 온갖 고통을 견디며 단련했는데 다시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위부터 아래로 1월 4일, 14일, 25일의 모습이다.
발은 나와 대지가 만나는 접점이다. 그리고 가장 밑바닥에서 묵묵히 나를 떠받치고 있다. 이번 여행의 모토가 '추상과 구체의 만남'이었다는 점,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도보로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발은 각별하다. 그리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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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집
도보여행
발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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