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길, 특히 하우스나 축사 밀집 지역을 지나다 보면 사람보다 개를 훨씬 많이 만난다. 수많은 개와 마주쳐보니 이 녀석들을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었다.
1. 공격형
다짜고짜 짖고 보는 녀석들이다. 바람결에 외지인의 냄새를 맡았는지, 내 모습이 보이기 전부터 짖어대고 있다. 내가 시야에 들어오면 1.5배가량 소리 강도가 커진다. 혹시 내게 달려들면 어쩌나, 어느 날인가엔 진지하게 '방범봉'을 검색하기도 했다.
방범봉을 휘두르거나 '가만 두지 않겠다'는 위압적인 기운을 내뿜으면서 다가갔다면 녀석들은 조용해졌을지도 모른다. 살아있는 존재 사이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기(氣)가 흐른다고 하지 않던가.
한편 개의 공격성을 피할 다른 가능성도 있다. 무용가 홍신자 님은 <자유를 위한 변명>에서 들개떼에 포위됐던 경험을 소개한다. 개를 동정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춤을 췄더니 으르렁대던 개들이 조용해졌고, 자리를 떠나는 자신을 바라만 보더라고 했다.
국제정치의 관점에서 보면 '방범봉'과 '동정심'은 각각 힘을 중시하는 현실주의(realism), 그리고 상대를 어떤 존재로 간주하는지에 따라 관계의 성격이 구성된다는 구성주의(contructivism)와 연결된다.
석사 졸업 후 잊고 지냈던 국제정치학이 '개소리'에 부활했다. 다행히 서울에 가까워 오면서 맹견류의접촉빈도는 조금씩 줄어들었다.
공격형 개들에게 얼마나 시달렸는지, 저 멀리개처럼 보이는 물체만 봐도 가슴이 철렁했다는 얘기를 3일차 삼랑진~밀양 편에 쓴 적이 있다.
저 앞에 줄 풀린 개가 앉아 있는 줄 알고 움찔했던 경험.
2. 경계형
섣부른 액션에 앞서 일단 면밀하게 관찰하는 유형이다. 내가 하는 양을 빼꼼히 살피거나 한두 번 짖어 반응을 탐지한다. 간을 보고 있는 것이 표정에서도 드러나는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기만 하면 별 일 없이 '보내준다'. 반면 조금만 다가가거나 부스럭거리면 곧바로 '공격형'으로 돌변해 맹렬히 짖어댄다.
눈을 정면으로 마주치지 않고 슬쩍슬쩍 곁눈질하며지나가야 별 탈이 없다. 이것은 개의 습성을 이용한 것이다. 개는 인간이 눈을 보며 다가오는 것을 공격 신호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그러니 측면을 보이며 지나가는 것은 공격 의사가 없다는 뜻으로 읽힐 것이다.
어미가 나를 살피는 동안, 물정 모르는 새끼는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비글로 추정되는 녀석이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나를 노려본다.
3. 무념무상형
'네가 지나가든 말든 상관치 않겠다'는 도인들이다. 아예 하룻강아지이거나 워낙 사람 손이 많이 타는 곳에 매여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희한하다. 함부로 짖어대는 것보다야 낫지만 너무 조용해도 왠지 서운하다. 나의 존재감이 무시당했기 때문일까?
이것은 공공장소에서 애정행각을 벌이는 남녀에게 분노하는 이유와 같은 맥락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스킨십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둘만의 공간을 전제한다. 그런데 내 눈앞에서 과감한 짓(?)을 하다니, 이건 나를 자취방 거울 쯤으로 여긴 작태다. 이러한 '존재의 부정'이 인간에게는 분노로, 개에게는 서운함으로 드러났던 모양이다.
이 녀석은 아직 새끼다. '하룻강아지'이기에 무념무상일 가능성이 크다.
날 좀 봐 줘!
4. 두려움형
내재적 성향보다는 환경 탓이다. 개 농장에 갇힌 녀석들의 표정에서 두려움이 읽힌다.
물론 농장에도 끝없이 짖어대는 개들은 있다. 반면 다수는 '끽소리도 내지 않고' 나를 쳐다보거나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도사견 얼굴의 주름이 수심으로 더 깊어졌다.
5. 주눅형
주로 떠돌이 개들이다. 무슨 풍상을 겪었는지 하나같이 주눅이 들어 있다. 다가가면 고개를 땅에 박고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멀어진다.
이 녀석들도 일종의 '유기견'이다. 간혹 목줄이 남아 있다. 도시 지역에서야 '입양이냐 안락사냐'를 놓고 논쟁도 벌어지지만 얘들은 그런 관심에서조차 벗어나 있다. 이렇게 시골에서 떠돌아다니는 개들에겐 적절한 먹이를 주되 중성화 수술로 더 이상 수가 늘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다.
6. 호의형
마지막 유형으로 분류했으나수많은 개 중 단 한 마리, 빈지소 근처에서 만난 '회구(회색 개)'다. (3일차) 원래는 백구였겠지만 전혀 백(白)하지 않다. 짧은 목줄에 매였으면서도 반가워 어쩔 줄을 몰라 폴짝폴짝 뛴다. 가까이 다가가자 더 난리다.
견종 중에서는 골든리트리버가 이렇게 사람을 좋아한다고 들었다. 내가 아는 골든리트리버 견주 한 명은 '그래서 서운하다'고까지 말했다.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나 반갑다고 달려는 드는 꼴에 '애정을 독점하는 맛'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