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환 Jul 09. 2019

[오늘의 私설] 첫사랑은 없다

모든 미련과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혜


 제주도 위미리에 가면 카페 ‘서연의 집’이 있다. 영화 <건축학 개론>에서 서연(한가인)이 첫사랑이었던 건축가 승민(엄태웅)에게 의뢰했던 바로 그 집이다. 누구나 간직하고 있는 첫사랑의 코드를 건드린 덕에 영화는 크게 흥행했다. 개봉 후 7년이 지났지만 카페를 찾는 발길도 여전하다.


 만약 현실에서 첫사랑을 다시 만난다면 어떨까?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세월 탓이 아니다. 애초에 첫사랑이란 ‘허구’이기 때문이다.


 불교의 중요한 가르침에 ‘무아(無我)’가 있다. ‘나’라고 할 만한 불변의 무언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는 아무개요’라고 한들 ‘아무개’는 그의 이름이지 그의 정체성은 아니다. 직업, 사는 곳, 가족관계도 마찬가지다.


 무아는 ‘나’라는 존재가 ‘관계’ 안에서 일시적이고 잠정적으로 규정될 뿐임을 시사한다. 학생 앞에서는 선생님이지만 은사 앞에서는 제자다. '나'란 고정 불변의 무언가가 아니다.


 ‘나’만 그런가? 내가 인식하는 ‘너’도 그렇다. 즉 ‘첫사랑’이라는 ‘너’ 또한 젊은 날 우리 사이의 관계 안에서 내가 만들었던 잠정적이고 일시적인 형상이다.


 그러니 오랜 시간이 지나 다른 맥락에서 만난 그 사람은, 비록 생물학적으로 같은 개체라 하더라도 내 마음속 첫사랑이 아니다. 첫사랑이라는 불변의 존재는 처음부터 없었다. 그래서 피천득 님은 수필 <인연>에서, 그리워하던 아사코를 만난 후 ‘아니 만났어야 했다’고 탄식했던 것이다.


 첫사랑뿐일까? 우리가 갖는 수많은 미련들도 결국은 내 머릿속의 집착일 뿐, 그래야 할 당위나 필연이 있는 게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무엇이든, 애초에 그럴 만한 것이 없었다는 것을 안다면 나는 언제 어디서나 더 자유로울 수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