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냐 뭐하냐는 말도 없이 다짜고짜 '이거 들어봐' 한다. 왁짜한 주점 너머로무슨 노래가 들릴듯 말듯 하다. 얼핏 멜로디 한 소절이 잡힌 순간, 뭉클한감동과함께안개걷히듯가사와음정이또렷하게 들리기 시작했다.주점의스피커와 나의머릿속에서 노래가 동시에재생되고있었다.
(사진출처 : https://ywpop.tistory.com/m/1525)
꽃다지를 안 건1993년이다. 한양대에서 열린 민중가요 공연에서였다. 대학3학년이던 막내누나의 초대로(누나는 한양대 노래패 '소리개벽'의 멤버였다) 한창 대학 문화를 접하던 새내기였다.
그 날 '꽃다지'라는 그룹을 처음 만났다.생소한음악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지만이노래는달랐다.잔잔한진행과 따뜻한노랫말에금세젖어들었다.
언제라도 힘들고 지쳤을 땐 내게 전화를 하라고 내 손에 꼭 쥐어준 너의 전화카드 한 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나는 눈시울이 붉어지고 고맙다는 그 말 한마디 다 못하고 돌아섰네
나는 그저 나의 아픔만을 생각하며 살았는데
그런 입으로 나는 늘 동지라 말했는데
오늘 난 편지를 써야겠어 전화카드도 사야겠어 그리고 네게 전화를 해야지 줄 것이 있노라고
당시에는 이런 노래들이 '불법'이었다. 음반도 레코드 가게가 아닌 대학가 서점에서나 구할 수 있었다. 그 날의 공연에 매료되어 구입한 꽃다지앨범의 첫 번째 곡이 '전화카드 한 장'이었다. 대학교 1학년에서 2학년 사이, 그때 친구 홍용기와 이 노래를 참 많이 불렀다.
26년 전이다. 3,000원, 5,000원 등 다양한카드가 있었다. 공중전화 한 통화에 30원인가 50원인가 했다. 3분이 지나면 깜빡깜빡 숫자가 차감됐다. 천 원 이상 남았으면 든든했고, 10원만 남아도 한 통은 걸 수 있어 좋았다. 전화카드는 상대방을 만나는 열쇠였다.
전화카드를 선물한다는 건, 나는 너와 언제든 이어져 있다는 뜻이다. 그 정도 값으로 그만한 의미를 담아낼 수 있는 선물도 없다. 삶의 행복과 기쁨은 '연결'에서 온다. 그리고 거기에는 그리 많은 돈이 들지 않는다. 26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이제는 누구나 폰을 들고 다닌다. 하지만 그만큼 서로에게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을까. 노래를 듣자마자 내 생각이 났다며 걸어 온 전화 한 통이 나를 여기저기로 이어준다. 소중한 친구와, 추억과, 그리고 그리운 나의 지난날들과... 그 뿌듯함은 여전히 재생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