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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환 Jul 25. 2019

[사진 없는 먹說] 한양대 앞 사철냉면 '냉면'


 사철냉면을 처음 안 건 한양대 91학번 막내 누나의 정보 덕분이었다. 막내 누나는 한양대 84학번인 둘째 누나에게 들었다고 했다. 그러니 사철냉면은 어림잡아 30년을 이어온 셈이다.


 허름한 미닫이 문을 열고 '냉면'을 주문한다. 대표 메뉴 '냉면'이라 하면 물냉면을 말한다.(비빔을 먹으려면 '비빔냉면'이라 해야 한다) 일반 평양식 냉면과는 조금 다른데, 양념장을 얹은 물냉면으로 보면 된다. 부산의 밀면과 비슷하다.  


 90년대 초반, 처음 먹었을 때가 3500원 전후였다. 지금은 6500원이다. 면요리를 어지간히 먹어 본 사람이라면 그릇이 놓인 순간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 면은 분식집에서 파는 공장식 면발이다. 오뚜기같기도 하고 CJ같기도 하다. 육수 위로 솟은 면발에는 양념장과 무김치, 오이가 고명으로 얹히는데 그 흔한 편육 한 조각 없다. 삶은 달걀 사분의 일이 6500원짜리 냉면 단백질의 전부다. 이쯤 되면 정체불명의 짙은 색 육수에도 오뚜기인지 CJ인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게 된다.


 하지만 이 집의 육수 맛은 3500원일 때부터 꾸준하다. 공장식 육수가 보편화되기 전이니 여기만의 손맛이라 믿을 만하다. 전문가 수준의 예리한 혀가 아니어도, 새콤 달콤 짭짜름한 육수가 오랜 역사의 비결인 건 알겠다.


 흔히 국물 맛을 표현할 때 '깊다'는 말을 쓴다. 용법의 외연이 넓어 푹 고아낸 곰탕부터 평양냉면의 맑고 슴슴한 느낌까지 다 깊다고 하는데, 곰탕이 진하고 깊은 맛, 평양냉면이 맑고 깊은 맛이라면 사철냉면의 국물은 '얕지만 깊다'.


 얕지만 깊다니? 육수는 나도 감지할 만큼 쉬운 맛들로 구성되어 있다. 마치 빨강 노랑 파랑의 삼원색처럼 새콤 달콤 짭짤하다. 단순하고 정직하다. 그런데 그 조합이 뛰어나다. 얕고 쉬운 맛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밸런스 덕분에 깊은 느낌을 준다.


 여기저기서 젓가락이 스텐레스 바닥을 긁는 쇳소리가 들려온다. 그릇을 채로 들어 '공기 반 육수 반'으로 입맛을 다시는 건 그 다음이다. 음악으로 말하자면 '후주(Postlude, outro)'인데, 그 시간이 면을 건져 먹던 본주에 육박하는 걸 보면 어지간히 미련이 남는 모양이다.


 나 역시 물로 입을 헹구고 입가를 닦고, 그런데도 다시 육수 한 모금을 들이켜고 입을 헹구기를 서너 차례 거듭한다. 결국, 실은 그러기 힘들 것을 알면서도 '조만간 또 와야지' 마음을 먹고서야 일어나게 된다. 오랜만에 찾더라도 늘 그 자리에, 그렇게 여러 철을 함께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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