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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환 Jul 29. 2019

[오늘의 私설] '폰집사' 그만 두려 시계를 샀다


 시계를 샀다. 실로 오랜만이다. 순전히 실용적인 목적이니 비쌀 필요도 없었다. 폭염을 고려해 플라스틱 줄에 얇고 가벼운 모델로 골랐다. 단순한 것이, 제법 마음에 든다.


 ‘남자는 시계’라는데 악세사리도 과시용도 아니라면, 요즘처럼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판에 시계가 무슨 소용이냐고 물을 수 있다. 바로 그 때문이다.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게 싫어서 시계를 샀다.


 나만큼 스마트폰을 단순하게 쓰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주된 용도는 음악 듣기, 카톡, 동영상 시청이다. 그 흔한 게임도 하지 않는다. 가끔 메모 기능도 쓰긴 하지만 모든 걸 합쳐도 하루에 폰을 쓰는 건 길어야 한두 시간이다.  


 그런데도 두 개 뿐인 내 손의 절반이 언제나 폰에 바쳐져 있었다. 딱히 폰을 쓰기 위해서도 아니다. 단지 폰을 모시기 위해서다. (감히 폰님을 한 손으로 쓰다니! 그럴 때는 두 손으로 받들어야 한다) 폰에 헌납된 손의 기능을 입이나 겨드랑이가 대신하기 일쑤였다.


 말할 것도 없이 폰은 인간의 편리를 위한 물건이다. 그런데 내가 폰을 쓰는 게 아니라 폰이 나를 쓰는 기분이 들었다. 종이 주인님 말씀을 놓칠세라 늘 안채에 귀를 기울이듯, 폰께서 언제 나를 부르시나 한시도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다. 진동모드를 쓰는 나는 '환청' 아닌 '환진동'도 자주 겪었다.   


 물론 어쩔 수 없이 폰을 자주 들여다보아야 할 때가 있다. 바로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시계를 보기 위해서'라는 그 핑계가 폰을 모시는 데에 앙큼한 자존심 노릇을 했다. 하지만 이래서는 안 된다. 이제라도 누가 주인인지 똑똑히 보여 주어야겠다. 시계를 손목에 차자마자 폰을 가방에 던져 넣어 버렸다.


 실은 아직 간질간질하다. 일종의 금단증상이다. 방 밖에 내 놓은 강아지마냥, 폰이 날 좀 봐 달라고 낑낑대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묘집사나 견집사도 아니고 '폰집사'까지 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앞으로 혹 응답이 다소 늦어지더라도, 부디 지인들께서는 한 인간의 자존 선언으로 이해해 주시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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