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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환 Jul 31. 2019

[오늘의 私설] 건강염려증을 벗어나려면


 건강염려증(Hypochondriasis)은 일종의 정신질환이다. 특별한 질병이 없는데도 병에 대한 공포나 강박에 시달린다.


 남 얘기인 줄 알았는데 언젠가부터 내 얘기가 되었다. 시작은 부모님과의 이별이었다. 두 분 다 치료를 하기에는 너무 늦은 상태로 암이 발견되었다. 진단 후 어머니는 일 년이 안되어, 아버지는 넉 달을 채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결정타는 그 뒤에 찾아온 나의 병이었다. 결과적으로 경미했다는 건 말 그대로 결과일 뿐, 검사와 수술로 이어지는 모든 순간에 내 삶은 관념이 아닌 현실적 죽음과 직면하고 있었다.  


 작은 증상에도 겁이 난 건 그때부터다. 설상가상으로 비슷한 시기 노화의 징후가 겹쳤다. 눈에는 작은 무늬가 떠다니고(비문증) 건강검진에서는 공복혈당이 높다고 하더니(내당기능장애) 얼마 전부터는 왼쪽 어깨가 뻑뻑하다. 주변 얘기로는 그게 바로 오십견이라는데, 이름만 믿고 방심하다가 당했다.


 늙어 본 적 없이 없었기 노화 증상은 하나같이 낯설고 두려웠다. 젊을 때는 비교할 경험이 없으니 몸이란 늘 그런 줄로만 알았다. 젊어도 보고 나이도 들어 본 이제서야 진탕 술을 마시고도 다음 날 생생할 수 있었던 것이, 하룻밤쯤 날밤을 새워도 거뜬했던 것이, 돈을 아끼기 위해 값싼 먹거리로 끼니를 때워도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이, 인생을 통틀어 특정 시기에만 누릴 수 있었던 몸의 사치였음을 비로소 알겠다.


 영화 '도둑들'에서 늙은 도둑은 '이 나이가 되니 안 아픈 데가 없다'고 푸념하면서도 '국산을 이만큼 썼으면 오래 쓴 거지'라며 자조 섞인 자위를 내뱉는다. 세상 만물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감가상각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몸도 예외는 아니다.


 문제는 그 몸을 어떻게 쓰느냐다. 아무리 건강을 염려하고 공을 들이더라도 몸은 차츰 삭아 내릴 것이고 언젠가는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붙잡을 수 없는 어제의 몸에 연연하면서 염려증을 키우기보다는, 노화를 받아들이고 그 붕괴의 과정을 어떻게 선한 힘으로 바꾸느냐에 집중하는 게 낫다. 결국 건강염려증을 떨어낼 방법이란, 하루하루 삭아 갈 수밖에 없는 몸을, 닳아 없어지 만큼 좋은 에너지로 세상에 발산하는  아닐까 다.


 오늘 목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뭔가 걸리는 느낌, 안쪽 어딘가가 부은 듯한 느낌으로 몇 달간 신경이 쓰였던 터다. 건강염려증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의사는 괜찮다고 하면서 다음번 검진까지 일 년의 '유예기간' 주었다. 그때 진료실 앞에서 오늘처럼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의연하게 순서를 기다릴 수 있다면, 내가 그 일 년을 제법 성실하게 살아왔다는 뜻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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