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로시난테
며칠 전에도 도로 위 폭행이 청와대 청원까지 올랐다. 난폭운전에 항의하자 주먹질을 하고 폰을 빼앗아 던져 버린 사건이었다.
남의 얘기인 줄 알았다. 운전자는커녕 인간도 안 된 자들이 제 분에 못 이겨 난동을 부린다고 혀를 찼다. 그런데 바로 내가 그런 짓을 하고 말았다.
로시난테(내가 붙인 이름 : 할리데이비슨 팻보이)를 타고 분당에서 서울로 오는 길이었다. 좌회전을 하는데 왼쪽에서 같이 돌던 SUV 차량이 거의 20cm 간격으로 스쳐갔다. 오토바이 운전자에겐 생명에 대한 위협이나 마찬가지다.
직선 차로로 들어서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건 항의를 해야 한다! 차에 따라붙어 경적을 울리며 운전자에게 차를 세우라고 손짓했다. 누가 보면 교통경찰인 줄 알겠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일단 저 차를 세워야만 했다.
마침 빨간 신호등이 들어와 차량 앞을 막고 바이크에서 내렸다. 운전자 입장에선 철렁했을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도로 위 폭력이 뉴스에 나오는 세상이다. 그런데 바로 자기 앞으로 웬 덩치가, 헬멧도 벗지 않고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저벅저벅 다가온다. 짙은 선글라스, 가죽장갑에 부츠까지 신고서.
운전자는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아저씨였다. 내가 '나를 칠 뻔한 것을 아시느냐'고 하자 아저씨는 다소 겁먹은 표정으로, '개인택시가 앞을 가로막아서 경적을 울린 것'이라며 맥락에 닿지 않는 변명을 했다. 아마 내가 경적 소리에 화가 나서 쫓아왔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뒤이어 내가 뭐라고 항의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전방 주시의무 등을 따졌던 것 같다.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신 것 같진 않았지만, 아저씨는 연신 '보지 못해 미안하다'며 내게 사과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더 이상 할 말은 없었다. 아니, 애초에 항의를 해서 내가 얻을 것도 없었다. 단지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었다는 그 사실이 뒤이어 차를 쫒아 갈 이유가 되었을 뿐이다.
오토바이로 돌아와 앉자 곧 신호가 바뀌었고, 나는 와락 앞으로 달려 나갔다. 운전자와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화가 나서가 아니었다. 아니, 화는 어느새 나를 향해 있었다. 왠지 모를 부끄러움과 자책으로 애꿎은 로시난테만 갈겨댔다.
상황을 되짚어본다. 그분의 잘못이라면 진로를 방해하는 택시에게 경적을 울리고, 그 차를 피하느라 옆에서 돌던 나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연로하신 분이 그럴 수 있다. 물론 순간적으로 위험하기는 했지만 아무튼 무사하지 않았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이 길바닥에서 젊은 놈에게 봉변을 당할 만큼 잘못한 일은 아니었다.
사람은 완전하지 않다. 아무리 정신을 차리더라도 한 순간에 실수할 수 있다. 문제는, 자기의 실수는 '실수'인 줄 알면서 남의 실수는 '습성'이라 여기는 이중성이다. 그래서 나도 득달같이 따라붙었던 것. 하지만 본인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모른 채 사과를 하던 60대 노인 앞에서 나의 이중성이 드러나버렸다. 그것이 내 부끄러움의 정체였다.
햇빛을 등지고 선 나를 힘겹게 올려다보던 그 얼굴이 떠나질 않는다. 아마 이 글을 보실 일은 없겠지만, 아무래도 나는 그분께 진심으로 사죄를 해야겠다. 선생님, 공연히 불편을 드려 정말 죄송했습니다. 제가 어리석어 그랬습니다. 다시는 저와 남에게 이중잣대를 들이대지 않겠습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