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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환 Oct 30. 2019

[오늘의 私설] 내 호는 **이오


 듣기로는 내 이름이 꽤 비쌌다. 당대 최고 작명가 김봉수의 작품이다. '다스릴 정(政)'에 '빛낼 환(煥)'. 글자대로라면 정치를 빛낸다는 뜻인데, 이름값 덕분인지 전공까지는 정치학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나의 이름에는 내가 관여한 바가 없었다. "정환아"라는 소리에 고개 돌려 반응한 게 다였다. 석사까지 마쳤으나 지향하는 가치도 정치에 있지 않았다.


 옛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일까. 선조들은 ‘호’를 만들어 자신의 모습이나 이념을 담았다. 이황은 조정을 떠나 시골 토계(兎溪)머물렀는데, ‘토’를 ‘퇴(退)’로 바꾸어 자신을 '물러나는 자'로 새겼. 정약용의 당호는 '여유당(與猶堂)', 신중하고 삼가라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호에 담긴 상징을 일상의 지침(여유당)과 정체성(퇴계) 두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겠다. 내가 만약  호를 짓는다면 어떨까? 두 가지 측면 모두에서 떠오르는 것이 있다.


 일상의 지침으로는 '생각과 실천의 괴리'를 경계할 것이다.  생각이 실천보다 과하고 실행에는 게으르다. 말이 때로 조리 있기도 하나 행동할 용기가 없어 말 뒤에 숨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내게는 ‘구현(具現, 具顯)’정도가 아호로 적당하다. 행동이든 사물로든, 머릿속 관념을 으로 드러내라는 촉구다.


 정체성을 묘사한다면 무엇이 좋을까? 몇 해 전부터 ‘할 수 있는 한 주변에 선한 영향을 미치며 살기를 삶의 지향으로 삼았다. 그 뜻은 여전하지만 동시에 내 민낯이 얼마나 섭섭한지도 나는  안다. 머릿속 잡념, 드러나지 않는 행태로는 가히 '천하잡놈' 수준이다.


 그렇다면 나를 묘사하는 데에 ‘거름’만 한 것이 없겠다. 세상에 작은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로 그 자체는, 아주 그냥 푹 썩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니 ‘구현’이라 해야 할까, 썩은 게 틀림없으니 ‘거름’이라 해야 할까? 아니면 둘을 합쳐 ‘구름’이라 해 놓고 '자유로운 영혼'이라 짐짓 눙쳐볼까? 호를 궁리하다 보니 의도치 않게 나의 '' 또는 나의 '꼴'을 낱낱이 훑어보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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