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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환 Oct 06. 2019

[나의 생각 원칙] 1. 사람은 다 비슷하다


 조용하던 우리 동네가 ‘핫플’이 되었다.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검찰청 앞에서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렸다. 엊그제 개천절에는 광화문 광장을 태극기가 덮었다. '촛불'과 '태극기'가 한 합씩 주고받으며 세를 키워 간다.


 민주주의에서 집회는 유력한 정치 행위다. 그러나 편가름이 심할수록 이해의 폭은 좁아진다. '촛불'은 '태극기'를 수구 꼰대로, '태극기'는 '촛불'을 종북 좌파로 규정한다. 부모 자식뻘인 두 세대가 거리의 적수로 맞선다.


 하지만 사람은 다 비슷하다. 간혹 특이 케이스가 없는 건 아니지만, 대다수는 비슷한 정도의 합리성과 윤리의식을 공유한다. 그러니 저 사람의 행동 역시, 설령 내 눈에는 '또라이'로 보일지라도, 나만큼의 합리성과 도덕적 판단을 거쳤게 마련이다.


 부산역 광장에서 겪은 일이다. 코앞에 쓰러져 있는 노숙인을 외면한 채 하나님 나라를 외치던 설교자가 있었다. 그 위선을 째려보며 구급차를 불렀다. 하지만 전화기 너머 목소리도 심드렁했다. "혹시 노숙자 아입니꺼?" 부산은 인심도 야박했다.


 결국 구급차가 노숙인을 데리고 갔지만 옆에서 호박엿을 팔던 할머니는 혀를 찼다. "뭐하러 저런 놈을 도와주노?" 말씀을 들으니 근방에서 술 먹고 행패 부리며 드러눕길 예사로 하는 망나니라 했다. 그 순간 설교자의 위선을, 119의 무성의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또라이'가 아니었다.  


 상대방 비난에는 다른 종자 취급이 다. 그러나 십중팔구 오류다. 나는 식당 계산대에 각자 카드를 들고 선 애들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들 나름대로 익혀 온 밥 문화다. 예전엔 10원까지 나눌 결제 시스템이 없었기에 돌아가며 내는 게 편했을 뿐, 딱히 정이 깊은 것도 아니었다.


 사람이 다른 게 아니라 환경과 경험이 다르다. 촛불과 태극기도 그렇다. 내 눈에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모아 쥔 노인들이 우스꽝스럽지만 그 세대에게 ‘미국’은 목숨의 상징과도 같았다. 성조기 아래서 폭격을 피하고 밀가루를 받았다. 그러니 둘의 동거는 당연한 일이다. 내가 6.25를 겪었어도 그랬을 것이다.


 나의 행동에 나름의 합리성과 도덕성이 있듯 저 사람도 그렇다. 옳음과 그름은 그 '나름의 이유'를 이해한 후 따져도 늦지 않다. 나만 '시민'이고 저들은 '알바'라고 폄하할 수 없다. 손쉬운 매도에 안주하는 순간, 촛불이든 태극기든 무오류의 홍위병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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