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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환 Jan 23. 2020

[오늘의 私설] 어느 군인의 성 정체성

 사진출처 : 공개석상 나온 성전환 하사 "육군에 돌아갈 때까지 싸울 것" (한겨레신문 2020. 1.23.)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25474.html



 성 정체성을 고민하던 ‘남성’ 군인 변 하사가 있었다. 결국 성전환 수술을 받았고, 여군으로 군대에 남기를 원했다. 군은 전역 명령을 내렸다. 당사자와 인권 단체들은 이것이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사회적 논쟁에서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맞거나 틀린 경우는 거의 없다. 사안을 둘러싼 구체적 조건을 고려하면서 잠정적 판단을 내리는 것이 가능한 최선이다. 이번 사건도 ‘트랜스젠더’라는 성의 측면, 그리고 ‘군인’(특히 우리나라 군대에서)이라는 직업의 특성을 따져 접근할 필요가 있다.


 세상의 직업은 성별 구분이 필요한지 정도에서 제각각이다. 예컨대 컴퓨터 프로그래머라면 성별이 별로 중요치 않다. 반면 목욕탕의 경우 여탕에는 여성 직원을 배치하는 게 자연스럽다.  


 군대는 어디쯤 위치할까? 변 하사를 지지하는 측은 '고환의 제거가 전차 조종수로서의 역할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안을 의도적으로 좁게 본 것이다. 문제는 한 개인의 퍼포먼스가 아니라 조직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군에 미칠 영향이다.


 첫째는 공동생활의 측면이다. 일상 업무라면 그가 어떤 성을 가졌는지 크게 중요치 않다. 그러나 공동생활을 해야 하는 한국 군대에서 성별은 민감한 부분이다. 남녀 생활공간을 엄격히 분리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변 하사의 경우 수술로 남성성을 거부했으나 그것이 하루아침에 ‘여성됨’을 의미한다고 볼 수는 없다. 남성 숙소에서는 그 자신이 견디기 어려워 나와야 했을 터이다. 그러나 그가 전입을 원하는 여성 숙소에서는 다른 동료들이 그럴 수 있다.


 누군가는 ‘전우’의 성별을 따지는 걸 후진적이라 비판할 것이다. 트랜스젠더도 당당히 복무하는 해외의 사례를 들어 한국을 성토하기도 한다. 하지만 성 소수자들에 대한 인식과 문화적 차이는 둘째로 하더라도, 집에서 출퇴근하는 군대와 전시(戰時)를 전제로 공동생활을 하는 한국의 입장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둘째, 조직 내 형평성도 문제다. 채식주의자를 생각해 보자. 개인의 선택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군에서도 이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게 원칙적으로는 맞다. 하지만 현실의 제약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채식주의 식단을 마련하려면 '일주일 내내 육식'의 입장도 들어주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트랜스젠더 복무자를 위해 호르몬 치료를 제공할 수도, 이들에게 별도의 숙소와 영내 화장실을 마련할 수도 있다 치자. 그렇다면 과체중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장병에게는 다이어트 치료를, 공중 화장실에서 도저히 용변을 못 보는 병사에게도 별도의 화장실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게 안 되는 건 현실의 제약이 그 어디쯤 있다는 의미다. 군대는 보이스카웃이나 걸스카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의 성 정체성이 인정받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의 인식을 뜯어고쳐야  일이지 전역을 시킬 일은 아니다'라고 목청을 높일 수는 없다. 사회적 인식의 변화는 시간을 들여 논의해 가야 한다. 방향이 맞을수록 반발이 적은 방법을 찾아야 한다.


 가장 좋은 그림은 우선 변 하사가 전역을 하고 성전환 수술을 받은 후 여군으로 재입대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트랜스젠더를 차별하는 법규가 있다면 문제를 제기하여 공론화해도 늦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당사자는 더 이상 견디기가 어려워 자신의 상황을 알리고 수술을 받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모든 개인의 상황을 수용해 주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군대는 그런 조직이 아니다. 군대뿐인가. '민간'이라 한들 자기가 원하는 대로 다 되는 꿈의 직장은 어디에도 없다. 아마 변 하사도 알고 있었으리라. 그래서 길고 지난한 싸움을 각오하고 있다고 기자회견에서 각오를 밝혔을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맞춰 성 정체성과 관련된 논의도 확대되어야 하는 건 사실이다. 어려서부터 국가에 헌신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던 변 하사의 눈물도 안타깝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단순히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냐 아니냐로 접근하면 불필요한 인신공격으로 빠지기 쉽다. 변 하사로서는 아쉬운 일이겠으나, 국가에 헌신할 수 있는 다른 영역도 많이 있다.

 


논쟁적 주제입니다. 이견이나 반론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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