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잠을 설쳤다. 뒤꿈치 통증 탓이다. 똑바로 누우면 뒤꿈치가 바닥에 눌려 심하게 아팠다. 말 그대로 전전반측, 옆으로 돌아누웠다가 바로 누웠다가를 반복하는 사이 새벽이 왔다.
아침에 일어나자 걷기는커녕 서 있기도 힘들다. 발바닥과 뒤꿈치의 고통이 심해 발바닥을 온전히 바닥에 디딜 수가 없었다.
엉거주춤 화장실을 다녀와 간신히 짐을 꾸린다. 주인 아주머니께 손톱깎기를 빌려, 어제 신발에 계속 눌리던 새끼발톱을 짧게 깎았다.
8시 30분에 여관을 나섰다. 통증을 근근이 견디면서 오늘은 무리하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어제보다 속도를 확 낮춰, 대략 시간당 3km 정도의 속도로 천천히 걸었다.
삼랑진에는 세 개의 철교가 지난다. 예전에 기차가 오가던 철교는 레일바이크로 활용되고 있다.
아침에 첫 길을 나설 때, 그리고 도중에 잠시 쉬다가 다시 출발할 때에는 어김없이 발바닥이 아프다. 하지만 20~30분 정도 걷다 보면 적응 혹은 마비가 되어 그런대로 걸을 만하다.
아침에는 통증이 심했지만 이날도 걷다 보니 그럭저럭 적응이 되었다. 그래도 무리하면 안 된다. 최대한 천천히, 조심조심 걸어 나간다.
왼쪽 : 자전거와 보행자를 위한 표식이 앙증맞다. 오른쪽 : 길 바닥의 '천천히'는 이날 나의 모토이기도 했다.
야트막한 제방을 오르자 왼편으로 자전거길이 분리되어 나갔다. 자전거길은 일반 도로에 비해 차량이 없어 걷기에 안전하다. 하지만 이렇다 할 볼거리가 없어 지루하다.
게다가 이날은 둑을 타고 올라오는 찬바람이 너무 심했다. 결국 잠시 걷던 자전거길을 돌아 나와 도로를 걷기로 했다.
강둑을 내려왔는데도 찬바람은 여전하다. 그러고 보니 사방에 바람을 막아 줄 만한 산지가 없이 내내 평지가 이어진다. 윈드브레이커 안에 패딩을 껴입고 모자를 뒤집어 썼다.
출발한지 한 시간쯤 되었다. 삼랑진 읍내를 벗어날 때까지 문을 연 식당이 없어 여직 공복이다. 바람을 피해 둑 아래 앉아 어제 산 빵을 하나 뜯었다.
밀양강을 건넌 후 지름길을 택했다. 양 옆으로 비닐하우스와 논밭이 이어지는 시골길로 접어들었다. 아스팔트가 아닌 시멘트 포장이 정겹다.
하지만 시골길이 조용하리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불쑥불쑥 짖어대는 개 소리는 정말 스트레스다. 조금만 한적하다 싶으면 느닷없이 '왈왈왈왈' 짖어 대는 통에 깜짝깜짝 놀라기 일쑤다.
게다가 시골에서는 개들은 풀어 놓고 기르는 경우도 종종 있어, 이 녀석들이 혹시 나를 덮치지는 않을까 계속 신경이 쓰였다.
이런 식으로 개들이 시도 때도 없이 달려들어 짖어댄다. 시골길을 조용히 산책하며 걷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어찌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저 멀리에 개처럼 보이는 형체만 봐도 움찔했다. 끈 풀린 개가 앉아 있구나 싶어 철렁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모터같은 장비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더니, 내가 정말 그랬다.
원 안에 들어있는 것이 개인 줄 알고 놀랐다. 실체는 오른쪽 사진과 같았다
그러나 농가에서 개를 많이 기르는 건 당연하다. 농업에 종사하는 분들에게 농가의 시설들은 회사이자 물류창고 혹은 금고이기 때문이다. 스쳐가는 나그네 놀라지 않게 하려고 개를 단속할 수는 없는 일, 그저 내가 조심스레 지나는 수밖에 없다.
비닐하우스는 상당한 설비들을 갖추고 있었다. 하우스 꼭대기에는 지붕 전체에 천을 씌웠다 걷었다 할 수 있는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일조량을 조절하거나 야간에도 온도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추측해 본다. 군데군데 통풍을 돕는 환기시설도 있다.
하우스 안에서 전화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동남아 쪽의 말인 듯하다. 이곳에서 일하는 분들 중 다수가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수도권의 공장지대뿐만 아니라 지방의 농업시설에도 외국인 노동자들은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었다.
농촌의 시골길은 중앙고속도로 아래의 개구멍을 요리조리 지나면서 북쪽으로 이어졌다. 길가에는 신발이나 바지에 붙어 씨를 널리 퍼뜨리는 이름 모를 종자들이 늘어서 있다. 언제라도 지나가는 이를 붙잡을 수 있도록 날카롭게 손을 내뻗고 있다.
어디에서 붙었는지 모르게 신발과 바지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이 녀석들을 보면 정말 치열한 생명의 힘이 느껴진다. 힘주어 털어내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않는다.
발의 고통을 견디고 찬바람을 맞으면서 한낮까지 걷다 보니 어느 순간 급속도로 피로감이 몰려왔다. 간밤 잠을 설친 것도 한몫했으리라. 결국 한적한 길바닥에 드러눕고 말았다.
등골이 서늘해질 때즈음 일어나 앉아 빵으로 요기를 한다. 아침부터 입때껏 논밭과 비닐하우스로 이어진 시골길에는 식사를 할 만한 곳이 아무것도 없었다. 어제 빵을 사 두지 않았더라면 낭패를 보았을 판이다.
그래도 이제 조금씩 밀양 시내로 접어드는 느낌이다. 멀리로 시내의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하지만 밀양의 외곽은 여전히 시골이다. 길 옆엔 버려진 폐가들이 드문드문 이어진다.
이발소는 20, 30년 전의 모습 그대로다. 서울 근교였다면 '시간여행' 식 홍보를 내세운 관광지가 되었을 법도 하다. 그러나 여기서는 볼거리로 다듬어지지 않은 현실 자체였다.
근처 복지회관에 할머니들이 끌고 오셨을 보행기가 사이좋게 서 있다. 복지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어린이집이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지방이라고 해서 노인들만 있고 아이가 없는 건 아니다. 지역마다 다소의 차이는 있겠으나 여행을 다닐수록 느끼는 건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비슷하다'는 통찰 또는 안도감이다.
다시 밀양강을 건너 밀양 시내로 접어든다. 영화 <밀양>의 주연을 맡았던 전도연과 송강호의 이름을 거리에 붙여 관광 효과를 기대하는 모습도 보인다.
다시 다리를 건너 조금 더 밀양의 중심부 쪽으로 향한다. 이렇게 강을 계속 건너는 이유는 밀양강이 이 지역을 굽이굽이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길가에는 오래됐지만 정겨운, 서울로 치면 1980~90년대 분위기의 건물들이 이어진다.
배가 몹시 고프다. 그도 그럴 것이 아침부터 빵 몇 조각으로 끼니를 때우며 아픈 발을 이끌고 16km 정도를 걸었다. 더 이상 걷기 힘들다고 느낄 즈음 식당 하나가 눈에 띄었다. 돈까스 전문점이다.
밀양에서 들른 이 식당은 이번 여행에서 만난 3대 맛집 중 하나다. 내가 먹은 메뉴는 김치찌개 돈까스로, 자작하게 끓인 김치찌개 위에 돈까스를 얹었다. 말하자면 '돈까스 김치나베'다. 이미 꽤 알려진 메뉴인 듯하나, 처음 먹어본 나로서는 상당히 맛이 있었다. 돈까스의 느끼함을 김치가 잘 잡아주었다.
배가 든든하니 한결 힘이 난다. 식당에서 조금만 위로 올라가면 한 번 더 밀양강을 만나는데, 그 너머로 영남루가 보인다. 평양 대동강의 부벽루, 진주 남강의 촉석루와 더불어 3대 누각이라 꼽히는 건물이다.
영남루는 자태도 아름답지만 바로 아래 밀양강을 둔 데다 주변에 시야를 가리는 것이 없어 누각에 앉으면 호쾌한 전망이 가능하다. 올라가는 계단에 지그재그식 경사로를 둔 것도 재미있다. 누각 안쪽으로는 '영남제일루'라 쓰인 현판이 보인다.
사실 영남루를 찾은 이유는 조상들의 풍류를 느껴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영남루 아래의 '아랑사'가 궁금해서였다. 아랑사는 '아랑낭자'를 모신 사당이다.
아랑이란 이름은 낯설더라도 소복 입은 소녀의 '사아~~~또오~~~~'멘트는 익숙할 것이다. 그 섬뜩한 모습에 번번이 사또들이 놀라 죽어 나갔다던, 바로 그 소복녀가 아랑낭자다.
전설에 의하면 아랑은 밀양부사의 딸이었는데, 밤에 달구경을 나섰다가 괴한에게 몸을 더럽힐 위기에 처했고, 끝까지 저항하다 칼을 맞고는 대숲에 버려지고 말았다.
하여 아랑의 원혼은 자신의 억울함을 고하고자 사또들에게 나타났으나 사또들이 심약했던 탓에 줄줄이 물고가 났고, 한 담대한 사또가 아랑의 이야기를 들은 후 시신을 수습하고 괴한을 처벌하자 더 이상 원혼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이후 사람들은 그녀의 정절을 기려 사당을 세웠고, 지금도 밀양에서는 매년 '아랑규수 선발대회'가 열리고 있다.
아랑사에 모셔진 아랑낭자의 영정이다.
사실 아랑낭자의 전설은 이곳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다른 지역에도 유사한 이야기가 전한다. 예컨대 인천 검단지역에서는 정절을 지키려다 살해된 기생이 사또 앞에 나타난다. 시신을 찾아 범인을 처벌한 후 정조문을 세웠다는 결론도 유사하다.
시대가 순결과 정절을 중시했기에 비슷한 이야기들이 남았을 것이다. 능력주의와 자본주의가 맞물린 20세기에 '찢어지는 가난-피나는 노력-거대한 성취'의 공식을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만 여성의 정조를 생명보다 웃길로 두었던 가부장적 가치가 현대 사회에 어떤 의미가 있기에 아직도 아랑규수를 선발하는지 궁금하다. '아랑의 고귀한 정순정신'이란 무엇이고 그것이 왜 '숭고'하며 후인들에게는 대체 어떤 '귀감'이 되는 걸까?
자료출처 : 밀양시 홈페이지
이런 생각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아랑규수 선발대회가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은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참고기사 : "여성단체 "밀양 아랑규수 선발대회 즉각 중단하라"", <여성신문>, 2019. 05. 17.)
영남루 아래로 아랑사가 있고, 아랑사 아래 강변에는 '석화'라 불리는 기이한 무늬의 돌이 보호시설로 둘러싸여 있다. 표면이 마치 꽃무늬처럼 풍화된 암석이다.
언뜻 보아 쉽게 꽃이 연상되지는 않으나, 갈라지고 틀어진 모양새가 독특한 느낌을 준다. '꽃'보다는 일종의 화석같은 느낌이다.
밀양 시내와 영남루를 오가는 내내 햇볕이 정말 강했다. 밀양강을 끼고 있는데다 가까이에 산지나 높은 건물도 없다보니 밀양 어디라도 강한 햇볕이 붙어다녔다. 게다가 밀양강에 햇살이 반사되어 조도(照度)는 곱절이 되었다.
다음날 아침 식당 주인께서, 바로 그래서 밀양의 이름이 '密陽(빽빽할 밀, 볕 양)'이라 하기에 무릎을 쳤다. 햇볕이 잘 드는 지역은 이탈리아나 스페인처럼 사람들의 인성도 활달하게 마련이다. 생각해보니 밀양 출신의 지인도 그랬다.
오후 네 시가 넘어간다. 햇살은 여전했으나 오늘은 더 이상 무리하지 않고 밀양에서 일정을 마치기로 했다. 시간의 여유가 있어 일단 몸을 풀기 위해 사우나로 향했다.
발의 물집도 손본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물집에 실을 꿰어 놓으면 진물을 밖으로 계속 배출시킬 수 있어 통증이 덜하다.
사우나를 마치고 나서니 해가 졌다. 밀양강이 다리의 오색 불빛에 물들고 있었다.
다시 강을 건넌다. 오늘 하루만 밀양강을 도합 일곱 번 건넜다. 그만큼 밀양은 굽이굽이 흐르는 밀양강 주변으로 오밀조밀 자리를 잡았다. 지도를 검색해 모텔이 모여 있는 밀양시청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지방에서 모텔이 모여 있는 곳은 대개 두 곳이다. 하나는 역이나 터미널, 또 하나는 관공서 근처다. 그리고 관공서 근처의 모텔촌은 대부분 유흥가를 끼고 있다.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입지다.
밀양은 제법 큰 도시임에도 길에는 이처럼 을씨년스레 방치된 건물이 나뒹군다. 공포영화의 촬영에 아주 적격일 듯하다.
큰길에서 모텔촌으로 접어드는 길에 재미있는 바위를 만났다. '토끼바위'로 불리는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이다. 예부터 소원을 들어준다 하여 여인들은 아들을 낳기 위해 바위를 긁어 먹기도 했단다.
나중에 경기도 안성을 지날 때 만난 매산리 미륵석상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불상 뒤편에는 아들을 바라는 이들이 불상을 긁어대 움푹 패인 흔적이 남아 있다.
만약 그들이 끝내 아들을 얻었다면 돌가루의 영험보다는 돌도 씹어 삼키던 그들의 의지 덕분이 아니었을까. 자고로 '일체유심조'라 했다.
경기도 안성 매산리에 있는 석불입상의 모습이다.
숙소로 정한 모텔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선다. 예상대로 각종 술집과 노래방이 모여 있다. 자고로 공무원 접대에는 음주가무가 빠질 수 없다.
숙소는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아 깔끔했다. 특히 침구가 마음에 들었다. 간밤에 밤을 설친 나로서는 탄탄한 듯하면서도 안락한 매트리스가 매우 반가웠다. 가격은 5만 원으로 다소 센 편이었는데, 그나마 본래 6만 원인 것을 깎아 주셨으니 감사한 일이다.
저녁식사를 위해 마실을 나섰다. 식당에 들어서며 혼자라고 세워 든 손가락을 도합 여섯으로 오해했던 모양이다. 큰 테이블로 안내하기에 한 명이라고 했더니 경상도 사투리로 "진짜가?"라고 묻는다. 내게 하시는 말씀인데 잠시 당황했다. 표준어로 번역하면 "진짜야?"다.
갑오징어볶음과 제육볶음을 섞어 2인분을 주문했다. 맛은 만족스럽다. 점심식사였던 김치찌개 돈까스와 더불어 저녁식사까지, 밀양의 음식들은 내 입맛에 잘 맞았다.
식사를 마치고 맥주 한 캔과 내일 먹을 초코바 몇 개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비닐봉투는 유상이라던 편의점 종업원이 미소지으며 '그냥 드릴게요'라고 건네기에 또 한 번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 하루 20km 가량 걸었다. 아침에 발을 딛고 서지도 못했던 걸 생각하면 선방한 셈이다. 자리에 누워 <영남대로>를 읽으며 내일의 여정을 그려본다. 내일은 소싸움으로 유명한 청도를 목적지로 삼으면 될 것 같다. 이불을 덮고 누우니 금세 가물가물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