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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환 Jan 29. 2022

[讀한놈] <대논쟁! 철학배틀>, 하타케야마 소

표지가 야속해

 

 대학생 때 과외를 가려면 마을버스를 타고 성신여대입구역에서 지하철 4호선을 타야 했다. 항상 표지가 그럴듯한 책을 손에 들었다. <정치경제론>이나 <서양철학사> 따위가 제격이었다. 뒷문 근처 자리가 시선을 받기에 좋았다. 내리 깐 눈, 살짝 쥔 주먹을 인중에 갖다 대는 연출은 성신여대가 가까울수록 고조되다가, 내릴 때 '아니 벌써'라는 표정 연기로 절정에 이르렀다. 관객(승객)이 적을 때는 그냥 졸았다.


<대논쟁! 철학배틀>은 과외갈 때 가져갈 만한 책은 아니다. 일단 표지가 경박하다. 만화책으로 오해받지 않으면 다행이다. 표지만으로는 전혀 논쟁적으로도, 철학적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표지에 비해 내용은 상당히 알차다. 15개의 논쟁적 주제를 던져 좋고 동서고금 사상가들이 다투는 꼴을 읽어가다 보면 언젠가 한 번씩 들어봤음직한 개념들, 예컨대 '공리주의', '보이지 않는 손', '실존' 들이 쉽고도 명확하게 이해된다. 잠시 학창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은 덤이다. 그 옛날 암기위주의 학습이 남겨 준 반가움이다.



 칸트는 자신이 '철학'이 아니라 '철학하기'를 가르친다고 강조했는데, 최근 인문학은 철학의 개념을 적당히 끌어다 '응용하기'에 치우친 느낌이다. 그에 비하면 <대논쟁! 철학배틀>은, 비록 표지는 남보기 창피하지만 어지간한 인문학 나부랭이보다 '철학하기'에 가깝다. 자신의 주장을 개념화하고 논리로 맞서는 흐름 속에서 인간 사고의 광맥을 더듬어 가는 재미가 있다. 표지만 달랐다면 정말로 정거장도 놓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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