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30대 중반부터 신곡은 잘 듣지 않았다.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에 듣던 노래들이 나이가 들어도 전통의 강자로 남았다. 시기적으로는 90년대 초반부터 중반, 그 '찬란한 90년대'였다.
감수성 예민한 시기와 한국 음악의 르네상스가 겹친 것은 행운이었다. 워크맨으로 듣던 노래들이 MP3로, 스마트폰으로 기기를 옮겨가며 꾸준히 남았다. 워낙 명곡들이다 보니 레트로 붐을 타고 리메이크 되는 경우도 잦았다.
그럼에도 <이젠 잊기로 해요>는 예외였다. 사람들은 대부분 김완선을 댄스가수로만 알았고, 굉장한 음악적 완성도를 갖춘 이 곡을 아는 이조차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응답하라 1988>, <슬기로운 의사생활> 등 대박을 친 드라마에 삽입되면서 유명세를 탔다. 반갑지만은 않았다. 혼자 아끼던 맛집이 저녁방송 <생생정보>에 나온 기분이었다.
주제는 사랑했던 그대와의 기억을 이젠 잊기로 하자는 것이다. 전주부터 제대로 쓸쓸하다. 반주 없이 외줄로 퉁기는 기타 한 마디가 지나가면 여운이 긴드럼비트와화음 없는 멜로디가 흑백으로어우러진다.
가사에서 '이젠 잊어야 할' 항목은 네 가지다. '사람 없는 성당에서 무릎 꿇고 기도했던 것', '그대 생일 그대에게 선물했던 모든 의미', '술취한 밤 그대에게 고백했던 모든 일들', '눈오던 날 같이 걷던 영화처럼 그 좋았던 것'. 누구나 하나씩은 품고 있을 기억의 짤이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슬픈 부분은 노래 후반의 후렴부,'이젠 잊기로 해요, 이젠 잊기로 해요' 뒤에 나오는 기타 솔로다(3분 3초부터).가사가 없기에 절정이다. 저마다 가장 아련한 기억을 그 위에 투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열 여덟 살 조카는 리메이크로 이 노래를 알았다. 다 좋은데 한 부분이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사람 없는 성당에서 무릎 꿇고 기도했던 것'을 왜 잊어야 하냐는 것이다. 녀석에게 기도란, 아직은 도깨비 방망이같은 것이다. 그도 머잖아 알게 되겠지. 간절한 사랑이 기도가 되고, 잊지 못한 추억이 노래로 남는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