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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환 Feb 10. 2022

[오늘의 私설] 지하철에서 만난 신(神)


 비좁은 지하철이라 백팩을 다소곳이 앞으로 들었다. 마주 선 키 작은 여성분은 삼십대 중반 쯤이었다. 다운증후군이거나 약간의 지체가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들고 선 가방은 시커멓기만 한 백팩. 그런데 지퍼 손잡이를 눈여겨 보는 눈치다. 그러다 조심스레 손을 뻗어 손잡이 매듭을 살짝 만지더니 나를 올려다 본다.


 "..."

 "네?"

 "가방이... 참 예뻐요"


 실은 그 심상찮은 시선이 가방에 닿았을 때부터 나는 친절을 다짐하고 있었다. 천진하지 않은가. "고맙습니다" 마스크 안쪽에서 올린 입꼬리를 보일 수가 없어, 평소보다 눈매를 조금 더 초승달로 만들어 답했다.


 내 호의에 용기를 얻은 그녀는 지퍼를 조금 열었다 닫아보기도, 천을 덧댄 부분을 매만지기도 하다가 다음 역에 내렸다. 그런데 그 짧은 순간이 지나자 마음에 온기가 뿌듯이 찼다. 과장 없이, 신을 만난 느낌이었다.


 이 기쁨은 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녀는 그저 내 가방을 신기하게 들여다보다 갔을 뿐이다.


 짚이는 것이 있었다. 한없이 순진한 모습으로 그녀는 내가 '호의'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친절'한 사람이 된 기분을 맛보게 해 주었다. 그녀 덕에 잠시 나는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런 충만감은 그녀가 내게 준 것이 아니다. 내 안에서 불러 일으켜진 것이다. 종교적으로 말하자면 그런 기분은 일종의 은총인데, 은총을 '받은' 게 아니라 '받아 두었던' 은총이 자각된 셈이다.    


 사실 오늘 아침에도 나는 하느님에게 '이거 해 주소서 저거 해 주소서' 떼를 부리지 않았던가. 격조있는 높임말로 청구서를 들이 밀었다. 행복은 받아야 누릴 수 있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예기치도 않은 순간, 예기치도 않은 곳에서 선물을 받았다. 신은 진작에 기쁨의 향수를 주었다가, 그녀를 통해 뚜껑을 살짝 열어 주었다. 내 가방을 매만지던 그녀의 손길이 신의 손길이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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