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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슴푸레 May 12. 2023

좋은 날 있겠지

  새벽 2시. 스탠드를 켜고 마감이 몇 시간 남지 않은 일을 빛의 속도로 하고 있었다. 빼꼼히 방 문이 열렸다. 눈이 마주침과 동시에 남편이 말했다.


좋은 날 있겠지?


  지금 내 표정이 저와 같을까. 턱 밑까지 내려온 다크서클에, 지친 두 눈은 짓무른 듯 아래로 아래로. 흡사 중력을 거스르지 못한 중년의 안간힘을 전면 거울로 보는 듯한 느낌. 뭐라 대꾸할 틈도 없이 남편은 너무 늦게까지 하지 말고 자라는 말을 하고 문을 닫았다. 부산히 움직이던 열 손가락이 몇초간 노트북 자판에 머물렀다.


난 지금도 좋은데.


  타이밍을 놓친,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 사레들린 듯 그제야 입 밖으로 나왔다. 이어서 '많이 힘들구나, 우리 남편.' 혼잣말이 뒤따라 나왔다. 한동안 남편의 표정이 잊히지 않았다.


  외근도 잦고 지방 출장도 많은 데다, 회사의 서비스 품질과 대응 속도가 늦어지고 경쟁업체와 점점 차이가 벌어지면서 거래처 미팅을 다녀올 때마다 남편은 매일 그만큼의 모래주머니를 차고 집에 돌아온다. 나눠 차고 달리면 좋으련만. 지금 나로서는 주어진 일들을 제 날짜에 맞춰 납기하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어쩌면 남편은 이 말이 하고 싶었을까.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


  그렇대도 우리를 '쥐'라고는 생각지 말 것. 시간은 점점 우리 편이 되어 줄 것이니(빵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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