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를 거치는 동안 엄마표 캐릭터 도시락도 발전을 했다. 현장 체험 학습을 가는 날에 주로 쌌다. 처음엔 그저 남기지 않고 다 먹고 오게 하는 게 목적이었다면 점차 아이의 요구를 성심성의껏 들어주는 것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다른 아이들 입에서 '와!' 소리가 나는 도시락을 만들어 주기란 쉽지 않았다. 출근 전에 도시락, 간식, 과일, 음료수를 챙겨 오밀조밀 예쁘게 싸는 일은 늘 분초를 다퉜다. 아침에 김을 오리고, 약병 뚜껑이나 빨대로 치즈를 뚫는 일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런 건 다 전날에 밑 작업을 해 둬야 다음 날 지각을 면했다.
엄마표 김밥이 최고의 도시락이던 시절, 엄마가 간호사인 영아는 유부초밥을 싸 왔다. 그때는 유부초밥이 흔하지 않았다. 무슨 맛일까 궁금했지만 영아는 다른 친구들과 바꿔 먹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공부 잘하는 영아는 소풍 도시락도 역시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영아의 얼굴엔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매일매일 눈부시게 빛나던 얼굴이 그날은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듯 컴컴했다.
새터민 어린이가 이곳의 현장 체험 학습 도시락이 뭔지 몰라 김밥천국에서 산 김밥을 까만 비닐봉지째 들고 와, 반 친구들에게 두고두고 놀림감이 되었다는 어느 동화가 내내 잊히지 않았다. 그러기에 행여 바쁘다는 이유로 대충 싼 도시락에 내 아이가 마음을 다치는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 도시락으로 아이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싶지 않았다.